영국 출신 안토니오 파파노(65·사진)는 오페라와 관현악을 넘나들며 최정상급 수준의 지휘력을 뽐낸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마에스트로다. 2002년부터 20년 넘게 런던 코벤트 가든의 로열 오페라하우스 음악감독을 맡아 오페라에 대한 탁월한 해석으로 주목받았고, 2005년부터 지난해까진 이탈리아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겸임해 관현악에 대한 통찰력 또한 남다른 거장으로 인정받았다.
그가 이달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명지휘자 사이먼 래틀의 뒤를 이어 세계적 악단인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 상임지휘자로 취임하면서다. 파파노가 LSO와 함께 한국을 찾는다. 다음달 서울 세종문화회관(1일)과 롯데콘서트홀(3일), 경기 남한산성아트홀(4일), 대전예술의전당(5일) 등에서 아시아 투어를 연다.
공연을 앞두고 서면으로 만난 그는 “훌륭한 지휘자는 단원들과 함께 연주의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동시에 악단에서 ‘최고의 선생님’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며 “연주자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다양한 생각을 서로 연결 짓도록 도와주며,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도록 영감을 불어넣는 게 나의 의무”라고 했다. 이어 그는 “LSO와 함께 가능한 한 많은 작곡가, 작품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이들이 지닌 ‘영광의 소리’를 더 생생하게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파파노는 유명한 ‘완벽주의자’다. 최고의 소리가 나올 때까지 단원들을 훈련시키고 웬만한 연주로는 만족하는 법이 없어서다. 그는 “지휘자로서 욕심이 많은 편”이라며 “공격적인 단호함보다는 열정적인 단호함을 발휘하려고 한다”고 했다. “단원들을 매우 신뢰하지만 전 지휘자잖아요. 가끔 독단적으로 보일지라도 그들에게 음악적으로 원하는 바를 무엇보다 명확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음악가로서 청중에게 작품의 의미를 제대로 전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파파노가 이끄는 LSO는 이번 공연에서 말러 교향곡 1번 ‘거인’(1·4·5일), 생상스 교향곡 3번 ‘오르간’(3일),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1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1번(3·4·5일) 등을 들려준다. 그는 “오르간이 등장하는 생상스 교향곡 3번은 무대에서 자주 연주되진 않지만 지휘하는 걸 특히 좋아하는 작품”이라며 “이 곡을 현장에서 직접 들었을 때 밀려오는 감동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공연의 협연자로는 중국 출신 유명 피아니스트 유자 왕(37)이 나선다. 긴 드레스가 아니라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을 신고 무대에 올라 강렬한 타건으로 청중을 압도하는 연주자로 잘 알려져 있다.
파파노는 “그를 단순히 외적인 모습으로만 판단해선 안 된다”며 “타고난 음악적 재능과 뛰어난 테크닉을 겸비한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늘 안전한 길을 선택하지 않고 자신을 끊임없이 시험해온 그를 같은 음악가로서 존경한다”고 덧붙였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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