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료 제조, 아이스크림 제조, 수제 햄버거 론칭, 와인 수입과 유통…. ‘재벌집 막내아들’ 한화 삼남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이 관심을 쏟는 사업들이다.
호텔·레저를 포함한 한화그룹의 유통 전반을 챙기게 된 김 부사장은 신사업으로 식음료(F&B)를 낙점하고 한화갤러리아의 홀로서기를 준비 중이다.
식음료 사업은 유통 본업인 백화점의 성장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결정이다. 명품 의존도가 높은 갤러리아는 경쟁사보다 경기 영향을 더 크게 받는 탓에 최근 전국 5개 점포의 매출 하락이 이어지고 있다. 점포 수도 적고 당장의 외형 확장도 쉽지 않다. 평생을 승마선수로 살아온 김 부사장은 이제 사업가로 변신해 갤러리아를 살리기 위해 나서고 있다.
◆ 승마선수에서 ‘유통 전문가’로
1989년생(35세)의 ‘젊은 리더’인 김 부사장은 20대까지 승마선수로 살았다. 여섯살 때 승마를 시작했으며 2006년 한화그룹이 창단한 갤러리아승마단 소속 선수로 알려졌다. 실력도 좋았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 17세의 나이로 출전해 최연소 국가대표 기록을 세웠으며 이후 김 부사장은 아시안게임 3연속 금메달, 인천 아시안게임 신기록 3등을 기록하며 한국 승마 마장마술의 ‘에이스’로 통했다.
그러던 그가 30대 들어서는 ‘사업가’로 변신했다. 한화그룹의 승계 작업이 시작되면서 막내아들 역시 사업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유통’이 바로 그것이다.
김 부사장이 본격적으로 유통 사업을 담당하기 시작한 것은 2021년 5월부터다. 2017년 개인 사정으로 한화건설을 퇴사한 김 부사장(당시 팀장)은 4년 만에 한화에너지의 상무로 복귀했고 6개월 만에 호텔앤드리조트 프리미엄레저그룹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유통산업에 발을 들였다.
김 부사장이 그룹의 유통사업을 총괄할 것이라는 예상은 그가 회사를 떠나 있던 시기에도 짐작 가능했다. 회사 복귀 전인 2019년 독일, 한국 등에서 레스토랑과 일식집을 운영하며 외식 사업에 관심을 공객적으로 드러냈다. 당시 김 부사장은 레스토랑 개업을 위해 몇 달에 걸쳐 현지 아시아 음식점 시장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업계에서는 김 부사장의 레스토랑 운영을 두고 향후 경영 복귀 시 유통사업을 맡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장남(방산, 항공우주 등)과 차남(금융)이 소속된 회사를 제외하고 그룹에 남아 있는 주력 사업이 유통밖에 없다는 점도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한화그룹 측은 개인적인 일인 만큼 회사 차원에서 입장을 발표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레스토랑 운영 2년 만에 한화그룹의 유통 계열사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이후 약 1년 만인 2022년 갤러리아의 신사업전략실장까지 맡으면서 한화그룹의 주요 유통 계열사를 두루 거쳤고 이 과정에서 ‘한화 유통은 삼남’이라는 인식을 심었다.
현재 한화는 그룹의 사업 부문을 크게 4가지로 나누고 있다. △우주항공·오션·방산 △에너지·소재 △금융 △유통·서비스 등이다. 이 가운데 현재 김 부사장이 담당하는 것은 유통·서비스로 △한화호텔앤드리조트 △한화갤러리아 △한화로보틱스 등이다.
이 분위기는 지분을 통해 확실시되고 있다. 김 부사장은 한화갤러리아 자사주 공개매수를 통해 보유지분을 16.85%까지 늘렸다. 8월 23일부터 9월 11일까지 매수한 주식만 2816만4783주(지분율 14.53%)에 달한다. 종전 보유지분 2.32%에서 16.85%까지 크게 뛰었다.
현재 한화갤러리아 최대주주는 (주)한화로 지분 36.31%를 보유 중이며 김 부사장은 2대주주다. 김 부사장은 추가 매수를 통해 지분을 19.8%까지 늘릴 계획이다.
◆ ‘점포’부터 ‘식음료’까지…절반은 성공
김 부사장이 성과를 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다. 그가 점찍은 신사업은 식음료다. 백화점, 호텔 등 오프라인 점포 중심의 사업을 외식으로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2023년 6월 서울 강남에 1호점이 생긴 미국 수제 햄버거 브랜드 파이브가이즈는 김 부사장이 국내 도입을 주도한 결과물이다. 김 부사장은 파이브가이즈 사업 구상 초기부터 적극 참여했다. 국내 오픈 전 진행한 홍콩 파이브가이즈 현장실습까지 다녀오는 등 열의를 보였다.
파이브가이즈는 1년 만에 5호점까지 확대했고 내년 하반기 예정인 일본 진출까지 한화가 담당하게 됐다. 파이브가이즈 사업을 담당하는 한화갤러리아 자회사 에프지코리아는 한국에서 2028년까지 15개 점포를 오픈할 계획이며 일본에서는 향후 7년간 2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또 지난해 6월 갤러리아 100% 자회사인 비노갤러리아도 설립했다. 프리미엄 와인을 수입·유통하는 회사다. 비노갤러리아가 직매입한 고급 와인을 백화점에서 판매해 시너지를 얻겠다는 구상이다.
9월 23일에는 음료 제조 시장 진출도 선언했다. 음료 제조사 ‘퓨어플러스’와 6개월간의 협상 끝에 계약을 마무리 짓고 인수를 확정했다. 인수 금액은 비공개다. 퓨어플러스는 건강음료, 유기농 주스, 어린이 음료 등을 생산하고 있으며 전체 매출 중 절반 이상이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410억원, 영업이익은 16억원이다.
김 부사장은 퓨어플러스의 생산 노하우와 제품 경쟁력을 앞세워 갤러리아의 음료 사업을 키울 계획이다. 한화갤러리아 관계자는 “북미와 유럽 지역의 경우 프리미엄 음료에 대한 수요가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며 “글로벌 시장을 중심으로 시장 경쟁력을 높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스크림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지난 5월 아이스크림 공장 설립안이 이사회를 통과했으며 갤러리아 측은 경기도 포천에 내년 말까지 공장을 세우기 위해 나서고 있다. 한화갤러리아 관계자는 “현재 정해진 것은 없지만 관련 내용을 계속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김 부사장은 식음료 사업에 진심”이라며 “요즘은 아이스크림에 꽂혀서 사업을 키우려고 한다. 관련 내용을 직접 챙길 만큼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고 전했다.
◆ 주가는 ‘애매’
다만 본업인 백화점 사업 부문의 경쟁력 약화로 주가는 부진하다. 한화갤러리아의 올 상반기 매출은 2484억원, 영업이익은 29억원이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6.9%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48.3% 줄었다. 백화점 등 오프라인 사업이 부진한 영향이다. 백화점 업계 전체의 상황이 부정적인 것뿐만 아니라 갤러리아의 점포 경쟁력도 약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한화갤러리아의 상반기 시장점유율은 6.5%다. 2년 전만 해도 8%대를 유지했으나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신채림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한화갤러리아의 성장성에 대해 ‘정체’라고 평가했다. 고물가 및 고금리 장기화, 높은 가계부담, 자산가치 하락 등에 따른 소비심리 회복 지연, 지방 사업장의 경쟁 심화 등이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화갤러리아는 지난해 3월 한화솔루션과의 인적분할 이후 재상장했다. 2021년 4월 한화솔루션에 흡수합병된 지 2년 만에 다시 분할됐다. 지난해 3월 31일 주가는 2650원이었으나 같은 해 10월 1000원 아래로 떨어졌다. 최근 들어 1300원대까지 올라왔으나 재상장 시점과 비교하면 여전히 주가는 부진하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