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 세계 바다 지도의 표준을 정하는 국제기구를 유치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신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해도가 확산하고 있어 국제기구 유치에 성공할 경우 지역 경제와 관련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이 기대된다.
22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해양수산부는 이르면 내후년 5월 개최될 제4차 국제수로기구(IHO) 총회에서 IHO 산하에 신설될 ‘S-100 인프라센터(인프라센터)’를 한국에 유치하겠다는 안건을 의제로 올릴 계획이다.
내년 총회서 디지털 해도 본부 유치 결정
IHO는 국제 수로 정책을 수립하고 이와 관련된 국제 기준을 제정하는 정부 간 기구다. 회원국은 1921년 19개국으로 시작해 현재 100개국으로 늘었다. 인프라센터는 새 디지털 해도 표준(S-100)의 상용화에 필요한 연구와 운용 테스트 등 업무를 수행한다. 사실상 ‘디지털 해도 본부’ 역할을 한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인프라센터 설치 안건은 IHO 회원국 투표로 결정된다. 회원국들은 인프라센터를 한국에 두는 방안에 대체로 우호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의 국립해양조사원이 과거 10여년 동안 IHO의 디지털 해도 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어서다. 인프라센터 유치 지역은 부산, 인천, 목포 등 바다와 인접한 도시들이 거론된다.
"세계 해양지도 韓서 결정"
대양을 오가는 선박들은 20세기 중반까지도 종이 해도를 활용했다. 바닷길을 통한 교역이 늘어나면서 대형 해난사고가 빈번해지자 북유럽 해운국 중심으로 디지털 해도에 관한 연구가 본격화됐다. 한국에선 1995년 전남 여수시 소리도 부근에서 발생한 유조선 씨 프린스 호 침몰을 계기로 디지털 해도 개발이 본격화됐다.
현재 선박에서 사용하는 디지털 해도는 종이 해도를 온라인에 띄워놓는 수준이다. 앞으로 개발될 디지털 해도엔 해류 흐름이나 해저 지형, 기상 정보 등 동적 정보가 입혀진다. 특히 AI와 빅데이터, 자율주행 등 신기술이 활용되면서 디지털 해도 중요성은 나날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29년부터 수주하는 선박에 디지털 해도를 반드시 탑재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인프라센터가 한국에 설립되면 세계 해도 표준을 규정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영향력은 더 커질 전망이다. 지난해 한국의 지배 선대 선복량은 10만262?으로, 그리스와 중국, 일본에 이어 세계 4위 수준이다.
인프라센터의 상주 인력은 수십명으로 많지 않지만, 센터가 설립되면 디지털 해도 표준 개발을 위해 국제회의가 잇따라 열리고 관련 기업들의 투자도 늘어날 수 있다. 정부와 관련 기업 입장에선 해도 작성과 관련된 정보를 빠르게 확보할 수 있다. 해수부 관계자는 “역사상 한국이 세계의 지도를 결정하는 데 깊숙이 관여한 적이 없었다”며 “해도 작성 과정에 한국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상징적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해묵은 ‘동해·일본해 논쟁’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디지털 해도는 각 해역을 문자와 숫자로 구성된 고유식별번호로 정립한다. 이렇게 되면 동해, 일본해처럼 국가의 정체성이 들어간 이름을 쓸 필요가 사라진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