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파트너스·영풍 연합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의 경영권 분쟁이 가열되면서 고려아연 주가가 MBK 연합 측이 제안한 공개매수 가격을 넘어 치솟고 있다. 최 회장 측이 MBK 연합 측에 맞서 지분 매집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가 번지면서다. 현 주가 수준이 유지되면 MBK 측은 공개매수가를 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0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MBK 연합 측은 고려아연 공개매수 방침을 발표한 뒤 3일째 주가가 공개매수가를 넘어 고공행진을 이어가자 내부적으로 다양한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 공개매수가 상향, 매수 기간 연장 등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고려아연은 3.96% 오른 73만5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MBK 연합이 제시한 고려아연 공개매수가인 66만원보다 11.4% 높은 가격이다.
영풍정밀은 MBK 연합이 공개매수를 선언한 뒤 3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이어갔다. 이날 공개매수가인 2만원을 뛰어넘어 2만550원에 거래를 마쳤다. 최 회장 측이 대항 공개매수에 나서거나 MBK 연합이 공개매수가를 올릴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된 결과다.
공개매수 기간이 끝나는 다음달 4일까지 고려아연과 영풍정밀의 주가가 공개매수가보다 높게 유지되면 MBK 연합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MBK 연합은 오는 24일까지 공개매수가를 높일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
백기사 포섭한 최윤범…고려아연 '경영권 수싸움' 치열
고려아연·영풍 급등 예의주시…MBK "기관, 공개매수 응할 것"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백기사 포섭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최 회장 측이 고려아연 지분 매입에 나설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를 높여 주가를 공개매수가 위로 치솟게 만들려는 목적이다. MBK 연합의 부담을 키울 수도 있다. MBK 연합이 고려아연과 영풍정밀의 공개매수가를 10%씩 높이면 이들은 최대 2133억원을 추가로 부어야 한다.고려아연·영풍 급등 예의주시…MBK "기관, 공개매수 응할 것"
○MBK 연합, 24일까지 결단 내려야
MBK 연합은 공개매수가를 상향하려면 오는 24일까지 정정해야 한다. 자본시장법에 따라 공개매수 종료일까지 열흘 이상 남으면 공개매수 기간 연장 없이 공개매수가를 올릴 수 있다. MBK 연합은 최 회장 측에 대응할 시간을 최소한으로 주기 위해 추석 연휴와 국군의날 임시공휴일, 한글날 등 휴일이 낀 시점을 공개매수 기간으로 설정한 만큼 공개매수가를 상향한다면 24일까지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24일 이후 공개매수가를 올리면 공개매수 기간을 10일 연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최 회장 측이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셈이다.
MBK는 지난해 말 한국앤컴퍼니를 대상으로 공격할 때도 공개매수 기간을 늘리지 않고 공개매수가를 상향할 수 있는 마지막 날에 가격을 20% 높였다. 다만 MBK파트너스는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는 입장이다. 당시에는 시장에서 MBK의 공개매수 성사 가능성을 낮게 본 탓에 주가가 공개매수가 아래를 맴돌아 공개매수를 독려하기 위해 상향한 것이었다.
MBK 연합은 현재 고려아연 주가는 극소수 소액 개인투자자 간 손바뀜으로 형성된 비정상적 가격이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고 보고 있다. MBK 연합 관계자는 “과거 사례와 달리 고려아연은 주가가 공개매수가보다 높게 형성된 상태로 매수 기간이 끝나더라도 공개매수에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지분 97.7%를 보유한 기관투자가는 당장 주가가 높더라도 향후 경영권 분쟁 이슈가 끝나면 주가가 원상 복귀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공개매수에 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여러 선택지 놓고 고민 중인 최 회장
국내외 사모펀드(PEF)를 만나는 등 백기사 포섭에 공들이고 있는 최 회장은 언제든 대항 공개매수에 나설 수 있다.업계에선 자금력이 뒷받침되는 MBK 연합이 상황에 따라 공개매수가를 높임으로써 2조원이 넘는 자금을 단시간에 확보해야 하는 최 회장의 백기사 포섭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카드를 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MBK 연합이 공개매수를 하는 동안 최 회장이 반드시 대항 공개매수에 나서야 하는 건 아니다. MBK 연합의 공개매수가 실패로 돌아간 뒤 대항 공개매수를 해 MBK 연합을 짓누르는 것도 가능하다. 지난해 초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을 놓고 하이브와 카카오가 공개매수 경쟁을 벌일 때 카카오가 이런 방식을 택했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일단 MBK 연합의 공개매수가 실패하도록 유도한 뒤 시간을 벌어 우군을 확보한 다음 최 회장이 공개매수에 나서는 것도 방법”이라며 “MBK 연합의 공개매수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최 회장이 경영권 장악에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백기사를 포섭하는 것과 동시에 고려아연 지분을 가지고 있는 현대자동차와 한화, LG화학 등을 확실히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작업도 이어가고 있다. 재계 마당발인 최 회장은 오너들과 친분이 깊지만 이들 기업이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목적으로 시장에서 추가로 지분을 사들이거나 의결권 공동 행사 계약을 맺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선 이들 기업이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는 방식으로 최 회장을 간접 지원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이 의결권을 포기하기만 하더라도 MBK 연합으로선 고려아연 의결권 과반을 장악하는 데 어려움이 가중된다.
박종관/하지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