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17세기 정치 암투를 그린 '쇼군'이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 에미상 시상식에서 18관왕을 차지하는 이변을 연출한 가운데, "'쇼군' 유행 배경에 한국 드라마가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왔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16일 "(대사) 70%가 일본어인 드라마가 미국에서 흥행한 것은 한국 드라마 약진이 토양을 만든 것이 크다"면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게임'이 한국어 대사로만 만들어졌음에도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사례를 언급했다.
닛케이는 그러면서 "일반적으로 미국인은 외국 영화와 드라마를 더빙으로 보는 것을 선호하지만, 한국 드라마 성공을 계기로 영어 자막으로 보는 데에 대한 저항이 줄어들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영화 '기생충' 봉준호 감독도 아카데미 시상식에 앞서 진행된 골든글로브 수상 직후 "자막, 그 1인치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들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소감으로 자막을 꺼리는 미국인들을 설득한 바 있다. 올해 2월 아카데미 시상식에 입성한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셀린 송 감독도 "'패스트 라이브즈'는 한국어 대사가 많은 영화라 미국에선 (상영할 때) 자막이 뜨는데, 이런 영화가 대중적으로 사랑받을 길을 열어준 게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라고 밝혔다.
이후 '오징어게임'이 넷플릭스 역대 흥행 성적을 갈아치울 만큼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사랑받으면서 양질의 콘텐츠를 자막과 함께 즐기는 게 익숙해졌다는 평가다.
'쇼군'은 17세기 일본의 정치적 암투를 소재로 했고, 1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진행된 시상식에서 드라마 시리즈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주연상(사나다 히로유키), 여우주연상(사와이 안나) 등 18개 부문에서 상을 차지했다.
2년 전 '오징어 게임'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이정재에 이어 사나다 히로유키가 아시아계 배우로는 두 번째로 이 상을 받았다. 사나다와 사와이 모두 일본 배우 최초로 에미상 주연상을 받았다. 미 CNN 방송은 "'쇼군'이 비영어권 시리즈로 에미상 25개 부문 후보에 오른 데 이어 작품상 등 주요 부문을 휩쓸며 역사를 만들었다"고 의미를 짚었다.
'쇼군'은 제임스 클라벨의 동명 역사소설을 원작으로 삼아 제작됐으며, 미국 디즈니 계열인 FX 채널에서 자막을 달고 방영됐다. 제작자와 감독 등 주요 스태프 다수는 미국인이었지만, 출연진은 주연부터 조연, 단역까지 대부분 일본인이었다.
요미우리신문도 영화 저널리스트 사루와타리 유키 씨 견해를 인용해 "쇼군의 성공은 미국 엔터테인먼트 업계 흐름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백인은 백인 작품만 보고 싶어 하고 미국인은 자막을 싫어한다는 가치관이 대세를 이뤄왔다"며 '오징어게임'과 같은 작품이 인기를 모으면서 " 백인 이외 배우들이 많이 출연하는 작품에 대한 저항감이 사라지고 미국인이 자막이 있는 작품에도 익숙해졌다"는 설명이다.
한편 박찬욱 감독이 미국에서 처음으로 기획·연출·각본 등 제작을 총괄한 '동조자'는 조연배우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미니시리즈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은 하지 못했다.
탈북 관련 다큐멘터리 '비욘드 유토피아'도 다큐멘터리 영화제작 부문(Exceptional Merit In Documentary Filmmaking) 후보에 지명됐으나 수상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한국계 배우 그레타 리는 애플TV 플러스의 드라마 '더 모닝 쇼'로 드라마 시리즈 부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고배를 마셨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