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표현하는 춤이라는 것은, 한데 고정돼 있어서는 안돼요. 자신을 버리거나, 변형할 수 있어야 진정한 춤꾼이라 할 수 있거든요.
한국 현대무용의 대가, 영국 옥스퍼드사전에 등재된 인물, 대학교 3학년 때 창작물 ‘뿌리’로 프랑스에 초청받은 무용가…. 안무가 안애순(63)을 수식하는 말은 많다. 20년 전 이미 굿판을 현대무용으로 재해석하는 등 시대를 앞서가는 선구안을 지닌 그였다.
그런 그가 최근 논란의 작품을 들고 관객 앞에 섰다. 지난 8월 29일부터 사흘간 서울 국립극장에서 선보인 국립무용단의 ‘행 +-(플러스마이너스)’. 공연 이후 더 뜨거운 관심을 받은 작품이었다. 한국 고유의 정체성을 춤으로 탐구해온 안애순이 국립무용단과 처음으로 호흡을 맞춰 만든 무대이기도 했고, 그가 한국 무용의 움직임을 낱낱이 쪼개 무용수에게 맞는 움직임을 찾아줬기 때문이다. 객석에서는 호응과 비판적 시선이 동시에 존재했다. 공연이 끝난 뒤 그를 만났다.
“논란은 창작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에요. 관객의 호응과 냉담 등 반응이 함께해야 이 작품의 기준이나 평가를 내릴 수 있으니까요. 논란이라는 말을 저는 아주 좋아합니다.”
비판적으로 보는 시선이 있었지만 안애순의 이번 무대가 한국 무용이라는 정형화된 움직임 속에 있던 단원들을 바깥으로 꺼내 그들 하나하나를 관객에게 소개한 무대였다는 점에선 이견이 없었다. 안애순은 왜 한국 무용을 이토록 해체해 재해석하고 싶어했을까.
“몸으로 표현하는 춤은 한데 고정돼 있어서는 안 돼요. 이전에 습득된 자신의 춤에 매어 있으면 좋은 예술가가 되기 어려워요. 자꾸 튀어 오르려는 고착화된 자신을 최소화하거나 버리거나 변형할 수 있어야 진정한 춤꾼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안애순은 국립무용단원들을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이 춤에 대한 고정관념에 많이 사로잡혀 있었다고 회상했다. “당신은 이렇게도 움직일 수 있다고 계속 말하는 게 저의 역할이었어요. 그러면서 장식적인 움직임, 화려한 기교와 본질을 혼동하지 않도록 가르마를 타주는 일도 했어요.” 자신만의 움직임을 찾는 작업이 어느 정도 정돈되자 안애순은 무용수들에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무대를 구상했다.
“사흘간 공연했지만 한 번도 똑같은 적이 없었어요. 각자 약속된 틀에서 개성 있는 움직임을 더 보여주는 등 변주가 일어났죠. 그게 한국 춤인 것 같아요. 그때그때 신명이 들어와 몸을 움직이게 되는 것. 어떤 날에는 무릎을 꿇고 상체 움직임만 보여주던 무용수가 어느 날에는 점프를 하면서 날아올랐어요.” 약속된 움직임에서도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몸짓이 바로 그가 추구하는 무용이다.
안애순은 춤에 관해 자기 몸을 잘 운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 그리고 사회에 던질 수 있는 메시지가 있어야 좋은 안무라고 강조했다.
“저는 안무가를 작가라고 생각해요. 내가 무엇을 얘기할지, 얘깃거리를 가지고 무대가 끝날 때까지 말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 능력을 가져야 하죠. 하지만 그 얘깃거리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어야 해요.”
춤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를 더 풍부하게 하기 위해 안애순은 다른 장르 예술가와도 활발하게 교류한다. 영화감독 김지운은 그의 공연이 있을 때마다 공연장을 찾는 고마운 지기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안애순은 무용과 다른 예술 장르 간 경계를 없애고 섞어버리는 시도를 좋아한다. 그는 “무용과 여러 예술 장르가 섞이는 무대, 시간을 초월해 전통무용과 현대무용이 만나는 실험을 지속적으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순이 훌쩍 지난 지금도 열의가 넘친다. 자신의 창작물인 ‘어린왕자’를 복원해 전국 공연을 하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현대무용에 막연한 어려움을 가지는 분, 서사가 있는 무용을 선호하는 관객을 위해 대중적인 대표작으로 순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서울 바깥만 벗어나도 무용을 접하기 힘든 환경이기에 제가 직접 방방곡곡에 계신 관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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