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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유명 유튜버들의 '급발진' 공포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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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전남 고흥군에 있는 외진 도로. ‘45년 운전 경력’의 A씨(68)가 모는 차량 속도가 내리막길을 만나자 점점 빨라졌다. A씨는 차를 멈추기 위해 옹벽 쪽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속력을 이기지 못하고 저수지로 추락했다. A씨는 ‘차량 급발진’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고 차량에 설치된 페달 블랙박스에 담긴 진실은 달랐다. A씨가 내리막길 진입 전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뗐다가 다시 올리는 모습이 담긴 것. 추락 직전까지 A씨의 발은 가속 페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2020년부터 올해 6월까지 접수한 364건의 급발진 의심 신고 차량을 분석한 결과 차량이 완전히 파손돼 분석이 불가능한 사고(43건)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사고(321건)의 원인은 페달 오조작이었다. 국과수는 차량에 부착된 사고기록장치(EDR) 데이터를 분석해 이런 결론을 내렸다. EDR은 사고 시점 이전 5초 동안의 각종 데이터를 모아 저장하는 장치다.

따지고 보면 ‘급발진’이라는 용어는 한국에서만 사용하고 있다. 차량에 결함이 있다는 걸 전제로 한 단어다. 미국에서는 ‘의도하지 않은 가속’이라는 가치 중립적인 단어를, 일본에서는 ‘페달 오조작 사고’라는 운전자의 실수를 바탕에 둔 용어를 주로 쓴다.

자동차업계는 유독 국내에서만 급발진 논란이 불거지는 원인 중 하나로 유명 유튜버들을 꼽는다.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이 “굉음과 함께 흰 연기가 나는 현상은 급발진 증거”라는 식으로 아무런 과학적 근거 없이 시청자를 현혹한다는 이유에서다.

자극적인 교통사고 영상과 괴담 수준의 주장을 강하게 펼칠수록 조회수는 급격하게 늘어난다. 급가속 주장 영상을 많이 만드는 유튜버 중에는 페달 블랙박스 판매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사람도 있다. 그러고는 “페달 블랙박스를 달면 급가속 여부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고 은연중에 얘기한다. 소비자의 불안 심리를 자극해 이익을 챙기는 ‘공포 마케팅’인 것이다.

한번 공포 마케팅이 퍼지면 과학이 들어설 공간이 사라진다. 고령화로 인한 운전 미숙 이슈가 우리보다 먼저 불거진 일본은 2021년부터 페달 오조작 방지 시스템을 도입했다. 시스템 도입 후 유사 사고 비율이 10년 전 대비 절반 가까이 줄었다는 분석 결과도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서울 시청역 인근 역주행 사고로 16명의 사상자를 낸 운전자 B씨(68)에 대한 공판을 진행 중이다. B씨도 처음에 급발진을 주장했지만, 경찰과 검찰이 모두 페달 오조작으로 결론 내린 사안이다. 이제 급발진 괴담은 거둘 때가 됐다. 대신 페달 오조작을 근본적으로 막을 방법을 논의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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