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신상 공개도 OK”
1980년대에는 ‘3저(저달러·저유가·저금리) 호황기’를 맞아 인력 시장이 활짝 열렸다. 1957년 삼성이 국내 기업 최초로 공개채용 제도를 도입했으나 ‘대규모 정기 공채, 범용형 인재 채용’이 대세를 이룬 것은 1980년대 들어서였다. 졸업생 수를 정부가 정하는 ‘졸업정원제’가 폐지되자 대졸 인력이 노동시장으로 쏟아져 나오며 ‘그물망 채용’이 시작됐다.인력 수요와 공급이 많다 보니 ‘특이형’ 인재보다 팀워크에 도움이 될 ‘협력·인화·성실’ 덕목을 갖춘 범용 인재가 잘 팔리는 시기였다. 단순 이력서 겸 자기소개서 한 장만 보던 기업이 태반이던 1970년대에 비하면 자소서가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워낙 대규모 채용이 이뤄지다 보니 자소서의 영향력 자체는 크지 않았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학력은 물론 가족 관계, 가정환경 등 ‘출신 성분’도 자신을 알리는 수단이 됐다.
급격히 팽창하던 대졸 취업시장은 1990년대 말 위축됐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기업들이 채용 때부터 구조조정을 염두에 둬 ‘소수 수시 채용’으로 흐름이 바뀌었다. 필기시험은 축소됐고 공채 전형은 서류와 면접으로 구분되기 시작했다. 자소서가 면접 기초 자료로 활용돼 서류전형이 합격에 차지하는 비율이 30%에 이르는 등 중요성이 더 커졌다. 이전에 자유 형식으로 작성하던 자소서에 점차 ‘항목’이 도입됐다. 지금 흔히 볼 수 있는 ‘성장 과정’, ‘성격’, ‘지원 동기’ 등 자소서 목차가 이때 등장했다. ‘직무 역량’ 개념이 떠오르기 전인 만큼 자소서는 ‘업무 적응 능력(융화력, 친화력)’을 평가하는 기능으로 쓰였고 기업마다 질문은 대동소이했다.
2000년대 들어 ‘스펙’ 등장
본격적인 고도 산업화 시대가 열린 2000년대에는 지식 기반 산업이 급부상했다. 다만 저성장·고비용·저효율·저고용 시대를 맞았고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취업시장이 급격히 위축됐다. 이미 외환위기를 겪으며 대규모 구조조정을 경험한 기업들은 신입 공채에서 ‘소수 우수인재 선발’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다 보니 다른 지원자에 비해 자신을 부각할 수 있는 ‘스펙(Specification)’이란 단어가 등장했다. 자소서에 화려한 스펙을 담는 데 힘을 쏟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2014년 이후부터는 ‘소수 수시채용’ 시대다. 기업들이 직무에 필요한 ‘즉시 전력감’을 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직무 역량’ 평가가 채용 여부를 가르는 기준이 됐다. 지원 직무와 관련 없는 스펙은 점차 평가 대상에서 제외됐다.
지원 직무와 관련한 ‘경험’이 경쟁력이 됐고 이런 경험을 드러낼 기회인 자소서의 중요성이 여느 때보다 커졌다. 자소서에 담긴 ‘이력’ ‘경력’ ‘직무 지식’이 서류전형 합격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됐기 때문이다. 정부가 주도한 국가직무능력표준(NCS) 등 핵심 직무 역량 평가 모델도 이런 변화에 기름을 부었다. 배경 대신 직무 능력만 본다는 취지의 ‘블라인드 채용’까지 등장했다.
하반기 공채…직무능력 어필해야
대규모는 아니지만 2024년도 하반기 대기업 공채가 시작됐다. 잡코리아가 지난달 6일 기업 인사·채용 담당자 285명을 대상으로 하반기 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 45.6%는 ‘미정’이었고 12.3%는 ‘하반기 채용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채용하겠다’는 응답은 42.1%에 그쳤다.취업 플랫폼 자소설닷컴이 하반기 대기업 신입 채용 공고와 자소서 작성자 수를 분석한 결과 최고 인기 기업은 ‘전통의 명가’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였다. 지난 9일 기준 공고 조회수는 현대차가 19만5197회로 가장 많았다. 하나은행이 14만6460회로 2위였다. 현대카드가 14만5673회, LG전자가 12만6420회, 에쓰오일이 10만4391회로 뒤를 이었다. 자소설닷컴 관계자는 “자신이 지원하는 직무 분야를 철저히 분석해 맞춤형 답안을 써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곽용희 기자
■ 잡리포트 취재팀
백승현 경제부 부장·좋은일터연구소장
곽용희 경제부 기자·이슬기 경제부 기자
권용훈 사회부 기자·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