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올 하반기엔 직원들에게 야근 수당을 주기 어렵다는 방침을 정했다. 올들어 금융시장에서 주요 사안이 잇따르면서 직원들의 추가 근무가 급증한 탓에 올해 배정된 시간외 근무수당 관련 예산이 동났기 때문이다. 금감원 안팎에선 이미 진행중인 젊은 직원 이탈이 가속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감원 시간외근무 수당 예산, 상반기에 다 털었다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 5일 직원들에게 더이상 야근 수당을 주기 어렵다는 취지의 내부 방침을 각 부서에 안내했다. 꼭 필요한 경우에만 시간외 근무를 하고, 시간외 근무를 한 경우에도 수당 대신 대체휴가를 신청하라는 게 주요 내용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일과 생활의 균형을 위해 일을 보다 효율적으로 하자는 취지에서 야근을 줄여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차원의 안내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간외 근무는 법적으로 금전 보상이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선 휴가 보상을 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며 "올해는 시간외 근무 예산이 빠르게 소진돼 예산상의 제약이 있다 보니 휴가 보상을 할 수 있다고 안내한 것이지 임의로 휴가 보상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올해분으로 배정한 초과근무수당 관련 예산을 상반기 중 거의 소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인건비 예산에서 급여 등 반드시 금전으로 지급해야 하는 항목만큼의 금액을 뺀 나머지 예산으로 초과근무수당 등을 지급한다.
금감원 안팎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금감원 직원들의 시간외 근무량은 전년동기 대비 16%가량 늘었다. 올들어 태영건설을 비롯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위기, 불법 공매도 전수 조사와 공매도 거래 전산화, 티메프(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 등 주요 사안이 줄줄이 터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한 금감원 직원은 "어느 국, 부서를 특정할 것 없이 전반적으로 업무량이 늘었다"며 "특히 올들어 나온 주요 사안 대부분은 장기전이 아니라 시급한 대응이 필요한 것들이었기 때문에 야근이나 주말근무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핀테크와 가상자산 등 금융시장 신규 분야가 늘어나면서 임직원 수가 작년보다 많아진 영향도 있다는 게 금감원 측의 설명이다. 금감원 임직원은 작년 9월 2056명에서 지난 6월 2155명으로 약 100명 늘었다. 같은 기간 인건비는 약 125억원 증가했다. 예산 내 인건비 비중은 작년 59%에서 올해 59.3%로 비슷한 수준이다.
연내 추가 예산 확보도 어려워
금감원이 연내에 시간외 근무수당 지급용도로 예산을 추가 배정받기는 어렵다는 게 금융당국 안팎의 중론이다. 각종 절차에 걸리는 최소 기간이 있는데다가 금감원의 예결산을 통제하는 금융위원회 등이 쉽사리 승인을 내줄 가능성도 높지 않다는 이유에서다.금감원의 예산은 금융회사 등으로부터 조달하는 감독분담금을 재원으로 편성해 금융위원회의 검토와 승인을 받아 정해진다. 공공기관이 아니지만 공공기관에 대한 예산지침을 적용받고 있다. 당해 인건비는 전년도 인건비에 공공기관 예산지침상으로 잡힌 임금 상승률을 곱하는 식으로 책정하는 식이다. 조직 규모 변화나 업무 상황 등을 고려해 인건비를 추가 운용하기 힘든 구조라는 얘기다.
금감원은 올해 인건비 상승률을 공공기관 예산지침에 따라 2.5%로 적용받았다. 2022년 소비자물가는 5.1%, 작년은 3.6%만큼 올랐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인건비는 워낙 엄격히 통제를 받는 항목이라 금감원이 추가 책정을 할 방법이 실질적으로 없어 보인다"이라며 "시간외근무에 대해선 금전 외에 휴가로도 보상할 수 있다는 법 조항이 있다보니 예산 추가 편성을 요청하기도 어려운 상황일 것"이라고 했다.
직원들은 울상…"일 많아서 야근하는데, 휴무로 대가를 받으라니"
금감원 내부에선 불만이 커지는 분위기다. 처리해야 할 주요 사안이 산적해 시간외 근무가 불가피한 와중 야근과 주말근무에 대해 사실상 보상을 받기 어려워져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감원 직원은 "일이 많기 때문에 주말까지 시간외 근무를 하는 것인데, 시간외 근무에 대해 휴무로 대가를 받으라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라며 "사안에 대응을 해야하는 만큼 앞으로도 시간외 근무를 계속 할 것이다. 다만 일은 일대로 하고, 보상은 받지 못하는 '공짜 노동'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이번 조치로 가뜩이나 빨라진 젊은 직원들의 이탈이 가속화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시간외 수당이 없어지면서 사실상 기존 대비 처우가 나빠져서다.
금감원은 한때 한국은행, 산업은행 등과 함께 고학력·고(高)스펙(자격) 취업준비생들의 선호가 높은 곳으로 꼽혔다. 하지만 최근엔 20~30대 직원들의 퇴사 규모가 급증하는 분위기다. 올 상반기엔 20~30대 직원 13명이 퇴사했다. 금감원 사상 20~30대가 가장 많이 퇴사했던 작년 한해 기록을 이미 상반기에 채웠다. 비슷한 스펙으로 갈 수 있는 금융투자·은행·보험·회계·가상자산업계 등에 비해 연봉 수준은 낮은 반면 근무강도는 높은 것이 주요 퇴사 원인으로 꼽힌다.
금감원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한 한 직원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은 커녕 격무에 대한 보상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상사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젊은 직원은 없다"며 "주변 동기들도 '사명감이나 자부심만으로 일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고 털어놨다. 금감원은 기존에도 국장급 등 보임 직원에 대해선 주말근무 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조직 내 갈등과 사기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고연차 금감원 직원은 "사안에 대응하느라 초과근무가 몰리는 국이나 팀 구성원들이 그렇지 않은 내부 조직 등에 대해 볼멘소리를 하는 사태도 걱정된다"며 "일단은 구성원들의 마음을 다독일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