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9월 04일 09:45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종종 회사자랑을 하는 기사가 나갈 때, 혹은 가믐에 콩나듯 인스타그램 DM으로 오는 질문들이 있다. ‘대표님도 망한 적이 있나요?’ ‘실패한 이야기도 좀 해주세요.’
믿거나 말거나, 필자는 실패의 화신이다. IMF 때 집안이 폭상 망했고, 첫사랑에 거하게 실패하였으며 (끝이 중요하다 여러분), 군대를 못갈판큼 몸이 아파 의사의 꿈을 포기하기도 했다. 수많은 잡(job) 인터뷰에 떨어졌으며, 올해만 해도 수차례 딜(deal)을 놓쳤다. 그렇다, 김대표의 삶은 실패의 응집체이다!
그래서, 오늘은 어떻게 실패를 “잘”하는지 이야기 해보겠다. 잘한 실패야 말로 잭팟의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이모님이시다!
성공적인 실패의 필수 요건 (Do’s)
1. 준비된 실패를 하라
제일 고통스러운 실패는 불시에 당하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대비하지 않았다는 오만의 증거이자, 실패를 했을 때의 카운터 펀치 한방을 준비해 두지 못한 나태의 산물이다. 언제든 망할 수 있다는 각오로 플랜 갑을병정 기타등등을 준비하라. 만약, 신사업을 준비한다면, 실패를 하는 것이 base case가 되어야 한다.
지난 2019년 말 코로나가 습격했을 때, 오만한 필자는 한 1년 정도면 끝날 줄 알았다. 1년 정도 버틸 수 있도록 전세계 50여개의 포트폴리오 회사들을 탈탈 털어서 ‘집중 관리군’ 8개를 솎아 냈고, 주별로 현금 상황과 선제적 구조조정을 해 제꼈다. 1년을 버티니 다행히 2년차에는 요령이 생겼고, 그렇게 4년을 견디는 동안 다행히도 단 한개의 회사도 부도가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첫 1년을 어렵게 지낸 회사 두개는 아직도 비리비리 하다. 내가 만약 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더 적극적으로 대안을 찾았다면 아마 지금쯤은 정상화가 완벽히 되었으리라.
주식 투자를 한다면 중간중간 꼭 출금을 해두고, 경영을 한다면 CEO를 뽑을 때 꼭 그를 대체할 수 있는 차세대 경영진을 뽑아두라. 큰 똥을 요리조리 피해다녀야 살 수 있다. 결국 살아남는 자가 승자가 된다.
2. 작은 실패를 자주 해라
다들 알다시피 김대표가 존경하는 버핏옹의 투자 제1 (그리고 2) 원칙은 돈을 잃지 말라이다. 그런데 영원히 잃지 않는 건 불가능 하다. 그럴 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짧게’ 손절을 하는 것이다. 사업도 마찬가지. 필자가 기억하는 성공적인 스타트업의 공통점은 빠른 피벗팅 (즉, 사업을 해보다 아니다 싶으면 다른 걸로 바로 돌아가는)이다. 이제는 수조원대 자산가가 된 국내 가상자산 거래 플렛폼의 S의장도, 필자가 처음 만났을 떄는 온라인 증권거래 대행를 비롯하여 온갖 작은 사업들을 하고 접고하다가 결국 대박을 터트렸다. 필자가 거의 매일 이용하는 쿠팡 역시, 필자의 후배가 참여해서 처음 시작했을 떄는 할인 쿠폰을 모아 공동구매를 하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아닌 걸 빨리 접었을 때, 우리는 가장 소중한 ‘선구안’을 갖게 된다. 선구안이야 말로 훌륭한 투자자와 리더의 제일 큰 공통점이다.
지난번에도 이야기 했지만, 지난 19년 투자 역사상 내가 시도해본 신제품, 신사업의 생존 확률 (성공 확률이 아니다)은 약 30% 정도 된다. 그 중에 한 20-30%가 대박이 나고, 그게 훌륭한 투자 회수로 이어질 확률은 또 반 정도 된다. 즉, 4-5% 정도의 확률로 대박딜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최소한 10번 정도의 ‘시도’를 할 수 있는 배짱과 뒷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니다 싶으면 재빨리 다음 카드로 넘어가자.
3. 실패는 변화의 가장 큰 계기다
크건 작건 실패를 했을 때 원숭이 보다 다은 우리는 이를 통해 변화를 해야한다. 이성을 잃고 오기에 몰빵하지 마라. 아닌건 아닌 거다. 사업이 실패를 했다면 경영진을 갈고, 컨설팅을 받아 비지니스 모델을 재편하고, 사무실도 더 작은 곳으로 옮겨서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져보라. 필자도 투자가 잘 안 풀리면 좀 쉬어 본다. 책도 읽고 여행도 다니고 서핑도 하면서 코로 귀로 물을 많이 마시면 정신이 번쩍 든다. 필자도 말아먹은 투자가 나오면, 산업 사이클을 뒤돌아보고, 주주간 계약서의 구멍들을 정리하고, 경영진을 짤 때 하지 말아야할 실수들을 정리한다. 실패를 담담히 마주할 때, 나는 어제의 나보다 더 현명한 투자자가 되어 있다. 참고로 필자의 경우 두 번 실패한 산업은 절대 투자 하지 않는다. 전세계 어디에서도.
자, 그럼 실패를 잘 했다고 치자.
그럼 실패한 우리가 다시 일어나기 위해 절대 하면 안되는 것은 뭘까 ? (Don’ts)
1. 사업은 날려도 사람은 날리지 마라
실패한 사업 혹은 투자에서 우리가 다시 일어날 때 제일 중요한 것 두 개를 꼽으라면 신뢰와 인맥이다. 그 중에서도, 내가 코너에 몰렸을 때, 주변 사람들과 혹은 직원 동료와 절연을 하면서까지 자기 파괴적인 사업가들을 종동 보는데 (20대의 나를 포함하여), 이는 너무나도 어리석은 행동이다. 오잘공 드라이버 뒤 세컨샷이 생크가 나서 OB가 났을 때 나의 골프는 진정한 나의 바닥이 드러난다. 필자도 실패한 투자가 생겼을 때, 정신을 차리고 나를 믿어준 투자자들한테 가장 먼저, 가장 겸손하게 다가간다.
필자의 투자 인생에서 제일 후회하는 일을 꼽으라면, 10여년 했던 투자가 짧은 기간에 실패였던 것을 알아채고는 그 회사를 팔았던, 누나누나하며 따랐던 A사장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틀어져버린 것이다. 회사는 그 이휴 7년 넘게 개고생을 하며 돌려놓았지만, 수 년간 쌓았던 그분과의 인연은 영영 회복되지 못했다.
반대로 C라는 회사를 분할해서 운영하면서 시시콜콜 싸우고, 또 풀고, 또 싸우고, 또 풀고 하면서 회사를 키워서 상장하고 또 싸우다가 매각한 G그룹과는, 그렇게 첨예하고도 자잘한 감정싸움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이었던’ 투자의 추억으로 지금과도 회장님과 잘 지내고 있다. 우리가 같이 투자 했던 회사는 벌써 분할도 되고 회사명도 바뀌었지만, 이렇게 맺어진 인연이 10년 15년을 지나보면 큰 형님 작은 동생으로 은근히 불편한 마음 속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2. 본능에 의존하지 마라
버핏옹이나 잡스나 심지어 머스크 형님이나 본능적으로 보이는 천재 사업가, 투자자들과 나를 혼동하지 말라. 내가 인간이고, 그래서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나를 믿고 일하고 있는 직원들 그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중요한 의사결정이라면 당신의 알량한 ‘본능’에 의존하지 마라.
집단 지성은 절대적으로 실수를 줄이고, 경험이라는 시간의 가치를 돈으로 바꿔준다. 우리같은 전세계 모든 사모펀드들이 투자심의위원회라는 집단 의사결정 체계를 갖는 것도 같은 원리이다. 그러니 제발 4번 아이언을 잡지 말고, 캐디와 동반자들이 추천하는 것 처럼 피칭으로 물앞에 끊어가시라.
내가 존경하는 M회장님의 경우에는, 이러한 집단 지성의 힘을 빌리기 위해 사외 이사님들과 은행 PB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셨다. 또다른 그룹의 J회장님의 경우에는, 그룹에서 중대한 규모의 투자가 들어가는 사업을 마주할 때, 경영진을 뽑는다는 핑게로 헤드헌터들을 탈탈 털어 전현직 대표이사들과 임원, 그리고 경쟁사 임원들을 손수 인터뷰 하셨다. 대부분 인터뷰라는 명목으로 인수하고 싶은 회사에 대한 민감하고 깊은 정보를 꼬치꼬치 물어보셨는데, 그러다 아주 가끔 보석같은 인재도 찾아내고는 했다. 물론 ‘기사도’에는 벗어나는 방법이겠지만 나름 가성비가 아주 뛰어난 정보 채널이기도 하다.
3. 몇번의 실패에 좌절할 필요 없다
마지막으로, 쫄지 말고 좌절 말라. 일은 일일 뿐, 알량한 일이 나의 존엄을 결정할 수 없다. 투자가 맞지 않으면 다른걸 해라. 사업이 안맞으면 월급쟁이를 해라. 조직생활이 안맞으면 자영업 N잡러를 해라. 이도 저도 아니면 내가한 실패 사례를 묶어서 유튜버를 해도 좋다. 당신은 밥벌이 일보다 훨씬 소중한 존재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 포기 했을 때, 남들이 포기한 걸 헐값에 묶어서 돈을 버는 신비로운 방법이 또한 존재한다!
필자도 살아오면서, 그리고 투자를 해오면서 수많은 실패를 겪었다. 그 덕분에, 절대로 투자하지 않는 산업도 생기고, 절대 고용하지 않는 경영진도 생겼다. 20대에 겪는 수많은 이별은 40대의 그대들에게 귀여운 아이들과 사랑하는 가족을 만들어 줄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 말라. 하다 못해 멀리건이라도 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