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와 신라는 한때 세계 면세점 순위 1위를 넘봤다. 2019년 롯데가 2위, 신라가 3위까지 상승했다. 중국인이 몰려와 화장품과 명품을 쓸어 담은 덕분이었다. 코로나19 사태로 관광 교류가 사실상 중단됐을 때도 그런대로 버텼다. 중국인 보따리상(따이궁)의 대량 구매가 관광객의 빈자리를 메웠다. 중국인의 해외 여행이 작년부터 본격 재개되면서 또 한번 도약할 기회가 오는 듯했다. 하지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중국발(發) 호황은 오지 않았다. 롯데, 신라는 글로벌 면세업계 경쟁에서 점차 밀려났다.
2일 영국 면세 전문지 무디데이빗리포트가 발표한 글로벌 면세점 매출 순위에 따르면 국내 면세점 순위가 줄줄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면세점의 작년 매출은 38억4300만유로(약 5조7000억원)로, 전년 대비 11.9% 감소했다. 이 탓에 글로벌 면세점 순위가 4위까지 밀렸다. 신라면세점은 6위로 ‘톱5’에도 들지 못했다. 작년 매출은 20.4% 감소한 30억7200만유로(약 4조5600억원)로 집계됐다.
반면 스위스 아볼타(옛 듀프리) 매출은 21.6% 증가한 92억800만유로(약 13조6300억원)로 중국 CDFG를 제치고 세계 1위 자리를 탈환했다. 중국 CDFG는 2020년 코로나19 사태 이후 3년간 1위에 올랐다가 이번에 2위로 내려앉았다. CDFG의 작년 매출은 86억1800만유로(약 12조7500억원)였다. 3위는 프랑스 라가데르(매출 52억유로), 5위는 미국 DFS(34억유로)였다.
문제는 올 들어 영업 상황이 더 안 좋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롯데면세점은 올 상반기 46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적자로 전환했다. 신라면세점은 올 상반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3% 급감한 1조6730억원에 머물렀다.
국내 면세산업의 위기는 중국인 관광객의 소비 패턴이 달라진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올 들어 상반기까지 방한 외국인은 약 770만 명으로 작년 상반기 대비 73.8% 증가했는데, 이 가운데 41%인 317만 명이 중화권 국가(중국, 홍콩, 마카오, 대만)였다.
관광객 수 회복에도 면세점 매출이 늘지 않고 있다. 중국 럭셔리 트렌드 전문매체 징데일리는 중국인의 한국 관광은 늘고 있지만 면세 쇼핑의 중심이 한국에서 일본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최근 분석했다. 지난 5년간 위안화 대비 엔화 가치가 40%가량 하락한 영향이다. 이에 비해 원화 가치는 약 15% 낮아지는 데 그쳤다. 한국 면세점이 일본 면세점과의 가격 경쟁에서 밀리면서 중국인의 쇼핑이 일본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인이 구매하는 상품도 달라졌다. 코로나19 사태 이전까지 LG생활건강 ‘후’, 아모레퍼시픽 ‘설화수’ 등은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메디힐, 클리오, 닥터지, 리쥬란 등 중소형 가성비 화장품 브랜드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 브랜드는 CJ올리브영, 다이소 등 면세점이 아니라 가두점에서 주로 팔린다.
중국 정부가 자국 면세점산업 육성에 나서면서 국내 면세점 업황은 더 악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달 27일 중국 정부는 베이징, 상하이 등 6개 지역에서 운영 중인 시내면세점을 광저우, 청두, 선전 등의 도시로 확대하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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