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2022년 기준 약 4억t이다. 플라스틱은 비닐, 포장지 등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로 어디든 존재한다. 주로 일회용이어서 사용량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플라스틱이 폐기되는 양도 생산량과 비례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은 2022년 3억7000t에서 2060년 약 10억1000t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살면서)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다”는 격언에 빗대자면 플라스틱 역시 피할 수 없는 게 사람의 삶이다.
이로 인한 환경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다. 버려지는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기술이 중요한 이유다. 글로벌 각국의 규제도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기업이 원활하게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서라도 재활용 플라스틱 비중을 높이는 것은 필수 요건이다. 유럽연합(EU)은 ‘순환경제에 관한 행동계획’을 기반으로 플라스틱 제조 과정에서 재활용 기반 원료를 쓰도록 많은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한국도 지난해부터 재생원료 사용 의무 제도를 도입하고, 이를 다양한 소재로 확장하고 있다. 자동차, 가전, 식품 등 많은 산업에 재생 원료 사용이 확대되는 추세다.
○“재활용 플라스틱, 안 하는 기업이 없다”
재활용 플라스틱은 일반 플라스틱보다 가격이 비싸다. 회수에 들어가는 비용 탓이다. 당초 예상만큼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친환경 ‘바람’을 타고 계속 커질 것이라는 데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삼일PwC에 따르면 글로벌 플라스틱 재활용 시장 규모는 2019년 368억달러(약 49조원)에서 2027년 638억달러(약 85조원)로 커질 전망이다. 연평균 시장 성장률이 7.4%로 추산된다. 재활용 산업별로 보면 폐배터리(31.8%), 폐가전(11.9%) 다음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도 2050년 글로벌 재활용 플라스틱 규모가 600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폐플라스틱을 잘게 부수고 녹이고 가공해 다시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방식인 물리적 재활용이 있다.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플라스틱 선별하고 세척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고 품질이 떨어져 활용 분야가 제한적이다. 다음은 열적 재활용이다. 폐플라스틱을 소각해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각에 따른 대기 오염 문제로 친환경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기업들은 그동안 이 두 가지 방식을 주로 활용해왔다. 세 번째는 이제 막 설비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화학적 재활용이다. 화학 공정을 통해 폐플라스틱을 분해해 원재료로 되돌린 뒤 재생산한다. 품질 저하가 없을 뿐 아니라 재활용 횟수에도 제한이 없다. 플라스틱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한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석유화학 기업들은 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에 일제히 투자하고 있다. 안 하는 기업을 찾기 더 어려울 정도다. 한화솔루션, 한화토탈에너지스, LG화학, 롯데케미칼, SK지오센트릭, SK케미칼, SKC 등 국내 기업뿐 아니라 독일 바스프, 미국 이스트만, 사우디아라비아 사빅, 미국 다우 등이 시장 선점을 위해 경쟁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 중에선 석유화학 1위 기업인 바스프가 최초로 화학적 재활용을 상업화했다. 이후 많은 기업이 화학적 방식으로 플라스틱 재활용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2020년 기준 화학적 재활용 플라스틱 점유율은 6.6%였지만, 2030년엔 20.7%로 높아질 전망이다.
○‘도시 유전’으로 통하는 열분해유
석유화학 기업들은 화학적 재활용 가운데 열분해 방식을 주로 쓰고 있다. 고열로 폐플라스틱을 분해하면 ‘열분해유’라는 액체가 된다. 플라스틱을 만들기 이전인 원재료 상태(정유 제품)까지 되돌리는 것이다. 열분해 기술은 상용화한 지 오래됐지만 공정 기술의 한계로 수익성 확보가 어려웠다. 염소, 질소 등 다양한 물질이 포함됐기 때문에 저급 디젤이나 보일러 연료로 주로 썼다.기업들의 기술 개발로 현재는 이 열분해유를 정제할 수 있게 됐다. 한화토탈에너지스,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 LG화학 등을 비롯한 기업들은 열분해유 정제설비를 통해 이를 재생 나프타로 탄생시킨다. 이를 나프타분해설비(NCC)에 넣어 에틸린을 뽑아내고, 플라스틱으로 만들면 재활용 플라스틱이 되는 것이다.
복합소재나 오염된 플라스틱까지 재활용…흙에서 썩는 생분해 방식도 주목
열분해유는 ‘도시 유전’으로도 불린다. 산유국에서 가져온 원유로 석유화학 제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도시에서 쓰인 플라스틱이 다시 원료가 된다는 점에서다.
최근 플라스틱 재활용에 대한 수요가 늘며 열분해 기술에 투자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한화는 연속식 방식의 열분해 시스템 기술을 적용했다. 원료를 한 번에 투입하는 일괄 투입 방식과 달리 원료를 순차로 투입해 더 많이 가동할 수 있다. 또 무산소 상태에서 분해하는 터라 열분해유라는 기름과 비응축 가연성 가스를 분리하기 쉽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스는 시스템 가동에 이용된다.
화학적 재활용에는 해중합 방식도 있다. 고온에서 촉매, 유기용매 등으로 분해 반응을 일으켜 플라스틱 원재료로 만드는 방식이다. 원유에서 생산한 새 플라스틱 원재료와 동일한 품질을 뽑아낼 수 있다. 게다가 복합 소재를 적용한 플라스틱, 오염된 플라스틱, 색이 들어간 플라스틱 등 기존에 재활용이 어려웠던 폐제품까지 재활용할 수 있다. 가장 이상적인 방식의 재활용으로 불린다. 하지만 원유에서 원재료를 생산하는 기존 방식보다 더 큰 비용이 들어 상용화에 시간이 걸린다. 해외 기업들은 해중합 재활용 기술을 실증 단계까지 개발했다. 생산 비용을 낮추려면 에너지 효율이 높으면서도 가격이 저렴한 촉매 개발이 선행돼야 한다.
○생분해 플라스틱도 주목
친환경 플라스틱 사업에는 생분해 플라스틱도 있다. 토양에서 2년 내 90% 이상 분해되거나 설비에서 단기간 분해되는 플라스틱이다. 박테리아, 조류, 곰팡이 등 자연에 있는 미생물이나 효소 등에 의해 분해되는 것이다. 일반 플라스틱이 분해되려면 100년 이상 걸리는 데 비해 훨씬 빠르다. 옥수수 전분, 팜유 등 천연재료로 만들기 때문에 생산과정에서 일반 플라스틱보다 탄소 배출을 60~80% 줄일 수 있다. 소각하더라도 열량이 낮아서 유해물질이 덜 방출된다는 장점이 있다. 한화솔루션, LG화학, GS칼텍스, SK지오센트릭, SK리비오(SKC의 자회사), 롯데케미칼 등이 뛰어들었다.이 시장도 재활용 플라스틱과 함께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유럽바이오플라스틱협회에 따르면 2028년 전 세계 생분해 플라스틱 생산 규모는 460만5000t으로 커질 전망이다. 2022년보다 5.3배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다.
생분해 플라스틱은 사탕수수, 옥수수, 나무 등 식물성 원료의 함량이 50~70%여야 한다. 최근엔 100% 바이오매스를 함유한 생분해 플라스틱도 개발되고 있다. 이보다 낮은 20~25%를 적용한 바이오 플라스틱은 땅에서 썩는 것은 아니지만, 원유 기반의 플라스틱보다 탄소 배출이 줄어든다. 값비싼 생분해 플라스틱보다 경제성이 높다. 유럽 각국은 바이오 플라스틱 인증제도를 통해 이 같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티백, 포장지에 라벨을 붙여주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석유화학 기업들의 증설 러시로 범용 제품 가격이 바닥을 기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들 기업과의 격차를 벌리고 석유화학 기업이 살길을 찾으려면 친환경 제품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규 기자/도움말=한화그룹 소식지 한화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