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이슬’, ‘진로’ 등의 소주 브랜드를 보유한 하이트진로는 현재 베트남에 첫 해외 소주 공장을 짓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소주가 큰 인기를 끌자 급증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하이트진로는 베트남에 면적 8만2083㎡(약 2만4830평)로 축구장 11배 크기의 대규모 공장을 짓는다. 2025년 1분기에 첫 삽을 떠 같은 해 3분기부터 생산설비를 설치하고 2026년 2분기 말까지는 생산이 가능하게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베트남 소주 공장은 하이트진로의 소주 세계화 사업에 있어 교두보 역할을 할 것”이라며 “이를 앞세워 2030년까지 소주 수출액 5000억원을 달성하겠다”고 했다. 올해 목표치(1585억원)의 세 배가 넘는 금액이다.
‘종갓집’ 브랜드로 국내 김치 시장을 석권한 대상도 해외 사업 확장에 나섰다. 이미 미국, 베트남 등에서 김치 생산 공장을 운영 중인 대상은 최근 유럽으로까지 눈을 돌렸다. 유럽 전역에서 김치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자 폴란드에 김치 공장을 짓기 시작한 것이다. 대상의 폴란드 김치 공장은 내년 상반기 완공 예정이다. 이곳에서 2030년까지 연간 3000톤 이상의 김치를 생산해 유럽 전역에서 판매한다.
‘한국 식품’(케이푸드)이 세계인의 식탁을 빠르게 점령하고 있다. 식을 줄 모르는 ‘한류 인기’에 힘입어 ‘열풍’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만큼 케이푸드의 인기가 치솟는 모습이다.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이미 넘어선 상품도 많아 식품업계에서는 더 이상 케이푸드가 한국인만의 음식이 아니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케이푸드의 인기에 편승해 국내 주요 식품기업들도 해외 생산기지를 늘려나가며 글로벌 식품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케이푸드 수출액 매년 ‘사상 최대’
해외에서 케이푸드의 인기가 날로 거세지고 있음은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케이푸드 인기에 힘입어 국내 농식품의 수출은 매년 새로운 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다. 지난해 식음료 등을 포함한 국내 농수산식품은 해외로 약 121억 달러를 수출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금리, 고물가 등 악재로 전체 수출이 7.5% 감소한 가운데 이뤄낸 성과다.올해는 이보다 수출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 올 상반기 농식품 수출액의 경우 지난해보다 5.2% 증가한 62억1000만 달러를 달성하며 다시 한번 신기록 향해 달려가고 있다.
현재 수많은 케이푸드가 해외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상품은 한국인의 소울푸드로 불리는 라면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라면 수출은 매년 급증하며 지난해에는 약 9억52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24.4% 증가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보였다.
농심, 삼양식품 등 주요 한국 라면 기업들은 국내보다 국외에서 더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을 만큼 해외 비중이 높다. 특히 삼양식품의 경우 대표 상품인 불닭볶음면을 앞세워 전체 매출의 70%가량을 해외에서 올리고 있다.
혀가 얼얼하게 매운맛을 내는 이 라면을 먹는 영상이 유튜브에서 유행처럼 번지면서 불닭볶음면은 세계적인 히트상품으로 등극했기 때문이다. 라면의 원조로 불리는 일본 닛신식품도 불닭볶음면을 베낀 ‘미투 상품’을 만들 만큼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자랑한다.
김도 한국을 대표하는 케이푸드로 주목받으며 해외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다. ‘검은 반도체’라고 불릴 만큼 수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김의 지난해 수출액은 7억9000만 달러를 기록, 한화로 처음 1조원을 돌파했다. 참치를 제치고 국내 수산물 수출 1위 품목으로 등극한 상태다.
김 수출 규모는 2007년만 해도 6000만 달러에 불과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해외에서 급격하게 인기를 끌며 수출액도 빠르게 늘어났다. 무엇보다 김은 전량이 국내 연안에서 생산되고 있어 지역 어촌 경제에 많은 보탬이 되는 품목으로도 꼽힌다.
소주도 빼놓을 수 없다. 소주는 지난 2021년 수출이 감소했다가 2022년부터 반등에 성공했다. 그 결과 지난해 처음 수출 1억 달러를 돌파했다. 하이트진로가 최근 베트남에 첫 해외 소주 공장 설립을 결정한 것도 빠르게 늘고 있는 글로벌 소주 판매량 추이를 보고 내린 결정이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한국 술인 소주가 케이푸드에 곁들여 먹기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판매량이 빠르게 늘고 있다”며 “베트남 공장 완공 이후 현지에서 생산된 소주를 동남아 지역으로 공급할 것”이라고 전했다.
편의점·프랜차이즈까지 ‘낙수효과’
김치와 한국 과자도 올해 들어 빠르게 해외 수요가 늘고 있다. 김치는 올해 상반기 총수출액 82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를 보였다. 김치가 잘나가자 전체 김치 수출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대상은 해외 생산거점 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 베트남 등에 김치 공장을 지은데 이어 현재는 폴란드에까지 생산공장 건설에 나서며 급증하는 수요 잡기에 나섰다. 대상 관계자는 “해외에서 발효식품인 김치의 면역력 강화 효과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김치 판매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한국 과자도 올해 들어 수출이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상반기 전년 대비 14% 급증한 4억2400만 달러의 수출을 기록했다. 해외에서 한국 과자가 좋은 반응을 보이면서 국내 대표 스낵 기업인 오리온은 올 상반기 창사 이래 가장 높은 실적을 올렸다.
케이푸드가 이처럼 잘나가게 된 것은 한류 열풍 덕분이다. 전 세계에서 한국 콘텐츠와 음악이 선풍적 인기를 끌며 한류 스타들이 여럿 탄생했다. 그러면서 자연히 이들이 유튜브나, 드라마, 영화 등에서 맛있게 먹는 한국 음식이 보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영화 ‘기생충’에 나온 ‘짜파구리’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나온 달고나 과자 등이 대표 사례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서 호기심으로 케이푸드를 접했다가 그 맛에 빠져 ‘한식 마니아’들이 대거 생겨났다”며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들은 더 다양한 한식을 맛보고 SNS 등에 입소문을 낸다”며 케이푸드의 인기가 급증한 이유를 분석했다.
자연히 과거 아시아 변방 취급받던 케이푸드의 위상도 크게 높아졌다. 글로벌 조사기관에서도 케이푸드를 떠오르는 트렌드로 주목하고 있다. 예컨대 미국 식음 트렌드 컨설팅 업체 에이에프앤드코(Af&co)는 올해 초 ‘2024 식음료 트렌드’ 10가지를 꼽으면서 이 중 가장 먼저 한식을 언급해 화제를 모았다.
네덜란드 기반의 식품 컨설팅업체 푸드바이디자인도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케이푸드를 ‘식물 단백질’의 부상, 인공지능(AI) 생성 레시피 등과 함께 식품업계에서 주목해야 할 트렌드로 지목하기도 했다.
케이푸드의 인기로 ‘낙수효과’를 누리는 기업들도 생겨났다. 한국에서 영토 확장에만 주력하던 국내 프랜차이즈와 편의점들을 예로들 수 있다. 이들은 케이푸드 인기를 무기 삼아 빠르게 글로벌 점포를 확장 중이다. 문 여는 곳마다 해당 점포들은 현지인들로 북적이며 활발하게 그 수를 늘려나가고 있다.
CJ제일제당을 비롯해 농심, 대상, 하이트진로 등 한국 주요 식품기업들도 다양한 케이푸드를 앞세워 글로벌 기업으로의 전환을 선포하고 있다.
글로벌 생산 거점 마련을 위해 해외 공장을 늘리고 있으며 자사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글로벌 마케팅에 큰돈을 투자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미국 프로농구 명문 구단인 LA 레이커스와 스폰서십을 체결하기도 했다.
구체적인 금액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레이커스의 구단 가치가 약 6조원임을 감안하면 거액을 건넸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팀 소속인 세계적 농구 스타 르브론 제임스가 CJ제일제당의 한식 브랜드 ‘비비고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코트를 누비는 이유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