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수수색 직전 아파트 창문 밖으로 던진 '불법 촬영물 외장하드(SSD)'가 증거능력이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유류물(버려진 물건)에 해당하는 이상 압수의 대상·범위가 한정된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지난달 25일 성폭력처벌법·청소년성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일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8일 밝혔다.
A씨는 2017년 말부터 2018년 5월까지 22차례에 걸쳐 미성년자들과 성관계를 하며 불법촬영을 한 혐의 등을 받았다. 랜덤채팅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만난 미성년자와 성매매를 한 혐의도 적용됐다.
1심은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1심을 맡은 서울서부지법 12형사부(부장판사 이정민)는 2020년 6월 대부분의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며 이같이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수사기관 조사에서 변명으로 일관하며 범행을 부인하고, 압수수색 영장 집행 과정에서 컴퓨터저장장치를 고층 아파트 창문 밖으로 던지는 등 죄질이 나쁘다”고 지적했다.
2심에선 징역형의 집행유예로 감형이 이뤄졌다. 2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9형사부(부장판사 한규현)는 2021년 1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핵심 증거인 SSD카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는 이유였다.
형사소송법상 위법한 방법으로 수집한 증거는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이른바 ‘독수독과(나무에 독이 있다면, 나무에서 나온 과일도 독이 있다)’ 원칙이다.
2심 재판부는 “A씨는 압수수색 영장 집행 직전 아파트 20층에서 바깥으로 SSD카드가 들어있는 신발주머니를 던졌고, 주차장에서 신발주머니가 본인 소유임을 부정했다”며 “경찰이 SSD카드를 유류물로서 압수한 것을 위법하다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다만 “경찰은 SSD카드를 탑색하는 과정에서 영장 집행과정과 마찬가지로 피고인의 참여권을 보장하고, 영장과 무관한 파일을 발견할 경우 별도의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해 발부받아야 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며 “유류물이라는 사정만으로 아무런 제한 없이 탐색할 수 있다고 볼 순 없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원심(2심) 판단에 대해 법리를 오해했다고 지적했다. 2심과 달리 SSD카드의 증거능력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유류물의 압수수색엔 이러한 관련성의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다”며 “정보저장매체를 소지하던 사람이 그에 관한 권리를 포기한 경우 압수의 대상·범위가 한정되거나, 참여권자의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럼에도 증거 능력을 부정한 원심 판단엔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2심 판결을 깨고, 다시 판단하도록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