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주총 시즌에 가장 두드러진 주주행동주의 활동을 꼽자면 ‘소액주주 플랫폼’ 활동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기업 밸류업 바람을 타고 소액주주들이 대거 플랫폼에 모였다.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 원인 파악부터 잘못해 규제 일변도 처방만 내놓고 있으니 밸류업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오히려 이사 충실의무 확대를 위한 상법 개정 주도로 소액주주들의 기대만 잔뜩 부풀렸고, 소액주주 활동만 증폭시켰다.
회원 상호 간의 소통과 법률 및 회계 교육 등이 플랫폼을 통해 이뤄졌다. 기존 행동주의 펀드와의 연합도 불사했고, 이들과 공동전략을 수립해 기업에 의사를 전달했다. 주주 인증 기반 앱으로 구동하는 플랫폼에서 소액주주들은 전자 위임을 통해 모바일로 간편하게 총회 대리출석이 가능했다. 이 같은 플랫폼을 통한 주주들의 동시다발적 결집은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현상이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큰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기대가 있다.
플랫폼 액트는 올해 주주총회에서 31개 종목 1만9944명의 주주가 이 플랫폼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했다. 상장회사 주총에 주주제안 안건을 상정한 41개 종목 중 13개 종목(32%)에 주주제안을 했다고 밝혔다. 삼목에스폼에 감사위원 분리선임을 요구해 성공했고, 캐로피홀딩스와 연합한 DB하이텍의 감사위원 분리선임 요구가 받아들여졌다. 소액주주들은 액트를 통해 전 이화그룹 회장의 처벌을 요구하는 탄원서 서명 참여 캠페인까지 벌였다.
플랫폼 헤이홀더는 에치에프알과 삼보판지에 자기주식 취득과 소각, 감사 선임, 대표이사 보수한도 조정, 현금배당 증액 등의 의견을 냈으나 부결됐다. 플랫폼 비사이드코리아는 오코스텍에 정관 변경을, 블루콤에 감사 선임을 요구했다. 감사 선임안은 통과됐다.
소액주주 기반 플랫폼이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 수가 최대주주의 그것을 넘어서는 사례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반면 감독당국은 이들 플랫폼에 관심을 보인 적이 없다. 현재 이들의 활동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장치는 5% 이상 대량 보유 지분 보고 외에 없다.
기업 쪽에서는 당연히 우려가 나온다. 특히 ‘총주주의 이익’이나 ‘비례적 이익’, ‘이사의 공정의무’와 같은 프로파간다식 설익은 주장에 휩쓸려 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행동주의자들은 보통 지배구조 개선이 목표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대주주의 의결권이 제한되는 감사 선임을 통한 이사회 진입이 목적이다. 성공률도 높다. 이사 선임 시 집중투표 의무화, 자기주식 소각 결정권을 이사회에서 주주총회로 넘기라는 정관 변경 요구도 많다. 올해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지만, 내년에는 더 거센 캠페인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결과도 다를 것이다.
플랫폼 활동을 막을 수는 없다. 다만, 해묵은 이야기지만 차제에 한국도 감사 선임 시 대주주 의결권 3% 제한 룰을 폐지하고, 다른 나라와 비슷한 수준의 경영권 방어 수단을 마련해 공수(攻守) 균형을 맞춰야 한다. 이에 대해 일부 상법 교수조차 한국에 적대적 인수합병(M&A)은 시도된 적이 없으니 방어수단도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과거 70여 년간 국지적 총격전만 있었으니 전쟁 대비는 필요 없다는 주장만큼이나 한심한 주장이다.
기업은 실험 대상이 아니다. 전쟁이 터지면 이미 늦었듯이 적대적 M&A가 시도되면 이미 늦다. 국지적 전투 대응과 전쟁 대비가 서로 다르지 않듯이 적대적 M&A 방어수단과 경영권 방어수단이 서로 다른 게 아니다. 최소한 다른 나라처럼만 해 달라는 업계의 절실한 호소를 당국은 언제까지 ‘귀틀막’만 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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