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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수출 진흥 주역' 금진호 전 장관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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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한국 기업의 수출 시장 확대를 주도한 금진호 전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21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금 전 장관은 1932년 경북 봉화군에서 태어나 대구 대륜고와 서울대 법대,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행정대학원을 수료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동서지간으로, 노 전 대통령 부인인 김옥숙 여사의 여동생 김정숙 씨와 결혼했다.

5·16쿠데타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 법사위 조사관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동력자원부 석탄국장, 특허청 항고심판소장, 상공부 중소기업국장, 섬유공업국장, 기획관리실장 등 상공부 관료로서 경험을 쌓았다. 전두환 정부 시절인 1980년 남덕우 국무총리 비서실장, 1981년 상공부 차관을 지냈고 1983년부터 1986년까지 상공부 장관을 맡았다. 당시 경제 부처에서 ‘금진호 마피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상공부 장관 시절인 1984년 미국이 ‘슈퍼 301조’를 내세워 한국 시장 개방을 압박하자 현대그룹 창업주인 정주영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구자경 럭키금성그룹 회장,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등 국내 간판 기업인과 함께 미국 주요 도시를 돌며 현지 정치권과 주정부 인사들을 설득한 일화가 잘 알려져 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국민의힘 전신) 후보로 당선돼 정치에 입문했다. 같은 해 열린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여당인 민주자유당 대통령 후보 선출을 앞두고 노태우 대통령이 김영삼 후보를 지원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6년 청조근정훈장을 받고 2013년엔 자랑스러운 서울법대인에 선정됐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 여사와 슬하에 금한태 텔코웨어 대표, 금한식 씨 등이 있다. 장례는 고인의 유지에 따라 외부인에게 알리지 않고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장지는 경북 영주 선산이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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