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OTT 업계 지각변동이 감지되고 있다.
지상파 실시간 생중계가 강점으로 꼽히던 웨이브에서 지상파가 빠지고, 티빙과의 합병은 흔들리는 모양새다. 웨이브를 떠난 지상파에겐 넷플릭스가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KT까지 나서 신규 OTT 사업을 논의 중이라고 밝히면서 국내 OTT 업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리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KT는 최근 세계적 컨설팅 기업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콘텐츠 사업을 중심으로 한 미디어 사업 전략 진단을 의뢰했다. 의뢰 내용에는 콘텐츠·미디어 사업 투자가 필요한지 판단과 함께 적정한 투자 규모와 사업 종류에 대한 조언과 OTT 사업 재추진에 대한 검토 등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KT는 2022년 자사의 OTT 시즌을 CJ ENM의 티빙에 합병시키며 OTT 사업에서 철수했다. 하지만 미디어 환경이 OTT와 유튜브로 개편되면서 IPTV·위성·케이블 방송 가입자 수 감소 등 업황 부진을 타개하고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 KT가 새 판을 짜려는 시도가 아니겠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KT는 꾸준히 자사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며 경쟁력을 시험해 왔다. ENA 채널에서 방영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기록적인 흥행을 기록한 후 꾸준히 자체 기획 드라마를 제작해 왔고, 현재 방영 중인 '유어아너'는 분당 최고 시청률 4%, 2분기에 방영된 '크래시'의 경우 최고 시청률 6.6% 등 선전을 보였다.
이들 작품이 인기를 모으면서 시청자들은 온라인을 통해 다시 보기를 요청했다. ENA 채널과 IPTV인 지니TV 등 KT 플랫폼에서 독점 방영권을 사들여 '밀어주기' 편성을 했음에도 "왜 온라인으로 보지 못하냐"는 반응도 나왔다. 장기적으로 TV보다는 OTT 사업에 재도전하는 게 지속할 수 있는 발전이 될 수 있으리란 판단을 KT가 하게 됐다는 것.
이 와중에 웨이브의 상황도 심상치 않다. 웨이브는 지난해 12월부터 공식적으로 티빙과 합병이 거론돼 왔다. 하지만 "논의 중"이라는 말만 나올 뿐 구체적인 진행 상황에 대해서는 양측 모두 말을 아끼는 상황이다.
웨이브가 다른 OTT 플랫폼과 가장 경쟁력이 있는 부분으로 꼽히는 건 지상파 실시간 방송 시청과 다시 보기다. 웨이브는 SK스퀘어(40.5%)가 최대주주로 있으며 KBS와 MBC, SBS 등 지상파 3사가 19.8%씩 지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상파 3사(KBS·MBC·SBS)와 웨이브와 콘텐츠 계약이 올해 9월에서 10월이면 만료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상파는 넷플릭스 등 외부 OTT에 콘텐츠를 지속 공급하겠다는 입장을 관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넷플릭스 등 다른 OTT에 공급할 수 있는 콘텐츠 수를 늘려달라는 것. 지상파의 이러한 요구는 티빙과 합병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방송사의 요구가 받아들여진다면 합병 후 출범할 OTT 콘텐츠 경쟁력이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독점 콘텐츠는 유료 이용자를 늘리고, 플랫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필수 요소로 꼽힌다. 특히 넷플릭스가 국내에서 강력한 지배력과 영향력을 발휘하는 상황에서 티빙과 웨이브가 꾸준히 자체 콘텐츠 개발 콘텐츠를 만들어 온 이유다.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점점 줄어드는 국내 시장 경쟁력 확보를 위해 지상파에 손을 내민 것으로 보인다.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넷플릭스 애플리케이션(앱)의 MAU는 2023년 7월까지만 하더라도 1311만2415명을 기록했으나, 2024년 7월에는 1122만7675명으로 줄었다. 1년 사이 188만4740명이 감소한 것.
제작 환경이 어려워진 가운데 넷플릭스까지 등판하면서 티빙·웨이브 주주들의 의견을 쉽사리 모으기는 힘든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 와중에 KT가 출사표를 던지면서 상황을 더욱 예측하기 힘들어졌다.
KT가 OTT 사업을 진행할 경우 웨이브, 티빙과의 협업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현재 KT 자회사 스튜디오지니가 티빙의 지분 13.54%를 보유해 2대 주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 비율은 1.6대1로 알려진 만큼, KT가 웨이브와의 합병 과정에서 보유 지분 확대에 나서지 않으면 티빙에 대한 지배력은 줄어든다.
또한 웨이브의 최대 주주 SK스퀘어로 SK는 그룹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인공지능(AI)·반도체 투자에 집중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KT의 콘텐츠, 미디어 사업에 접근 방식과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향후 이들의 사업 재편이 어떤 식으로 이뤄질지 관심이 지켜볼 일이다.
다만 KT 측은 공식적으로 OTT 사업 재개에 "국내 유료 방송 시장의 전반적인 침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입장이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