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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프리즘] "당신 자녀, 공대에 보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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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걱정을 많이 하는 걸로 치면 기업인도 정치인이나 관료 못지않다. 업종 불문, 규모 불문이다. 누군가는 “규제를 내버려두면 기업들의 탈(脫)한국은 가속화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다른 이는 “정부가 인센티브 없이 방치하면 산업 붕괴는 시간문제”라고 거품을 문다.

여기까지는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듣던 얘기 그대로다. 요즘 만난 기업인들은 하나를 더 붙인다. 사람이다. 안 그래도 저출생 여파로 대졸자 수가 확 줄었는데, 그나마 똑똑한 인재는 죄다 의대로 가니 마음에 쏙 드는 이공계 출신을 들이는 게 너무나 힘들어졌다고 하소연한다. 공들여 키운 엔지니어마저 돈에 이끌려 해외 기업으로 옮기니,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대한민국호(號) 침몰은 피할 수 없을 거란다.

얼마 전 만난 정보기술(IT) 기업 최고경영자(CEO)도 이직 얘기가 나오자 한숨부터 쉬었다. “미국 빅테크들이 연봉 3억~4억원 정도를 내밀 때만 해도 젊고 똑똑한 인공지능(AI) 엔지니어들은 ‘주판알’을 튕겼어요. 언어장벽과 고위직 승진 가능성, 높은 물가 등이 마땅치 않다고 생각한 많은 이들이 한국에 남았죠. 하지만 ‘AI 인력 쟁탈전’이 불거지면서 완전히 달라졌어요. 10억원을 준다는데, 무슨 수로 막습니까. 사실상 연공서열제에 묶인 우리는 잘해야 1억~2억원인데….”

그러고 보니 삼성전자건, SK하이닉스건 특급 기술을 개발한 젊은 엔지니어에게 깜짝 놀랄 만큼의 ‘파격 보상’을 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평등’을 외치는 노조와 목소리 큰 일반 직원들의 눈치를 본 탓인지, 다들 똑같이 적용받는 임금인상률과 사업부별 실적 및 개인 고과 등을 감안한 성과급이 전부다. 올 상반기에만 20억원 이상 거머쥔 차·부장급 직원이 여럿 나온 증권가의 확실한 개인별 성과보상 시스템은 IT 천재들에겐 남의 나라 얘기다.

그나마 IT 인재들이 받는 특급대우를 다 더해봤자 메타(페이스북 모기업)의 평범한 직원 급여보다 한참 적다. 7만 명이 다니는 메타의 지난해 연봉 중간값은 5억원이 넘는다. 전체 직원의 절반이 5억원 이상 받은 만큼 한국에서 건너간 특급 엔지니어는 그 이상 받을 터다. 더 나아가 ‘AI 인재’로 분류되면 30억원으로 수직상승한다. 국내에선 치열한 경쟁을 뚫고 50대에 고위 임원이 돼야 만질 수 있는 돈이다.

그러니 ‘현명한’ 이과생들에게 의대는 당연한 선택이다. 입학만 하면 부와 명예가 보장되는 면허증이 나오는데, 굳이 험난한 길에 도전해야 할 이유가 있겠는가. 사석에서 만난 다른 대기업 CEO는 “임원들에게 ‘자녀에게 공대에 가라고 권하겠습니까. 의사가 되는 것보다 우리 회사 엔지니어로 입사하는 게 낫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다들 우물쭈물하더라”며 “지금 한국 기업들이 맞닥뜨린 현실”이라고 했다.

이공계를 기피하는 나라가 ‘국가 대항전’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기술전쟁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우리의 맞상대가 돈으로 전 세계 인재를 끌어모으는 미국과 정부의 강력한 ‘기술 패권 드라이브’에 힘입어 매년 수백만 명의 엔지니어를 쏟아내는 중국이란 점에서 더욱 그렇다. 중국 수재들의 1순위는 의대가 아니라 공대다.

우리가 미·중과 승부하려면 머리가 팽팽 도는 인재들이 기업에 들어가 혁신을 주도하는 방법 외엔 없다. “천재 1명이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말 그대로다. 그러려면 ‘엔지니어 천국’ 실리콘밸리처럼 강력한 성과보상제부터 도입해야 한다. ‘세상을 바꾸는 건 엔지니어’란 자부심도 심어줘야 할 테다. ‘돈으로 보나, 명예로 보나 엔지니어가 의사보다 낫다’는 게 증명돼야 인재들이 공대를, 기업을 찾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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