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느다란 구리 선으로 점과 점 사이를 잇는다. 텅 빈 공간이 어느새 점과 선의 운명적인 조우로 채워진다.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조각가 존 배(86·사진)의 ‘철사 조각’이 제작되는 원리다.
무(無)의 공간에서 유(有)를 창조해내는 건 그의 작품만이 아니다. 작가가 걸어온 길이 그랬다. 국내 예술인의 인지도가 해외에서 전무하다시피 한 시절부터 미국 뉴욕에서 한국미술의 첨병 역할을 했다. 1937년 서울에서 태어난 작가는 독립운동가 아버지를 따라 12살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재능은 타고났다. 1952년 첫 개인전을 열었을 당시 15세에 불과했다. 뉴욕의 명문 사립미술대학인 프랫인스티튜트에 4년 장학생으로 입학했고, 졸업 직후 모교 역사상 최연소 교수로 임용됐다.
작가는 뉴욕 한인 예술가들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백남준, 김환기, 김창열, 백건우 등 이름난 화가와 음악가가 그의 집을 거쳐 갔다. 오는 9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 기간 그의 작품이 한국을 찾는다. 서울 삼청로 갤러리현대에서 그의 1960년대 초기 철 조각부터 철사로 제작한 근작까지 3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10월 20일까지.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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