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지도부가 이달 말 국회 본회의에서 전세사기 특별법 등 민생 법안을 처리하기로 한 건 반가운 일이지만 시급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 처리를 미룬 건 아쉬운 대목이다. 현재 국내에는 사용후 핵연료를 영구 저장할 수 있는 고준위 방폐장이 없다.
고준위 방폐장은 건설에만 30년 이상 소요된다. 지금 당장 착수해도 빠르지 않다. 국내에선 현재 26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고 4기가 건설되고 있다. 정부는 여기에 더해 3기의 신규 원전과 1기의 소형모듈원전(SMR) 건설 계획도 밝혔다. 인공지능(AI) 붐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할 전망인 데다 온실가스 배출도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원전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런데도 고준위 방폐장 건립을 미루는 건 ‘화장실 없는 아파트’를 방치하는 꼴이다. 체코 원전 수주에 이어 원전 수출을 늘리기 위해서도 고준위 방폐장은 필수다. 유럽연합(EU)은 원전을 ‘녹색 에너지’로 인정하는 조건으로 2050년까지 고준위 방폐장 확보 계획을 요구하고 있다. 고준위 방폐장이 없으면 유럽 원전시장 공략이 힘들어진다. 이미 핀란드는 내년에 세계 최초로 고준위 방폐장을 가동할 예정이고 스웨덴 프랑스 일본 등도 고준위 방폐장 건설에 착수했다.
고준위 방폐장 건립은 지난 21대 국회 막판에 정부·여당과 야당이 합의한 사항이기도 하다. 당시 여야는 정부·여당이 원하는 고준위 방폐장법과 야당이 해상풍력을 늘리기 위해 요구한 해상풍력특별법을 연계 처리하기로 했다. 원전과 함께 재생에너지도 확대해야 하는 게 국내 현실이다. 그런 만큼 연계 처리에 반대할 이유는 별로 없다.
다만 야당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신규 원전 건설 반대’를 조건으로 고준위 방폐장법을 처리하는 건 곤란하다. 21대 국회 때 여야가 고준위 방폐장의 저장용량을 40~60년인 원전 설계수명을 기준으로 정하는 쪽으로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보다 유연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면 80년까지 원전 운영기간을 늘리는 게 세계적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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