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5년 영국의 작은 마을 링컨. 아홉 살 소년의 시신이 우물에서 발견됐다. 사고 원인은 불명. 순식간에 헛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 동네 유대인들이 종교의식의 제물로 아이를 희생시켰다는 것. 이야기는 마을 하나를 건널 때마다 살이 붙었고, 참상이 구체화할수록 전파 속도도 빨라졌다. 결국 유대인 19명이 살인죄로 기소돼 처형됐다. 여진은 계속됐다. 곳곳에서 유대인 집단 학살이 벌어졌다. 1290년엔 영국에 있던 모든 유대인이 추방당했다. 학살이 자행되는 동안 링컨이라는 마을엔 그날의 사건을 기리는 대성당이 지어졌다. 희생된 소년은 성인으로 추대됐다. 거짓 뉴스의 광풍은 영국에서 멈추지 않았다. 2차대전 중 벌어진 홀로코스트(유대인 집단 대학살)도 이 사건과 연원이 맞닿아 있다. 1955년 링컨 대성당이 “모든 이야기는 날조된 것”이라고 공식 부인할 때까지 거짓 뉴스는 무려 700년간 무고한 희생자를 양산했다.
문명화된 현대 사회는 어떨까? 이젠 이런 가짜 뉴스에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 현명해졌을까? 지난달 29일 영국 리버풀 인근에서 어린이 댄스 교실에 괴한이 침입, 3명의 아이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사건 피의자가 ‘웨일스 출신의 17세 남성’이라고만 밝혔다. 미성년 피의자의 상세한 신상은 비공개가 원칙이기 때문이다. 대중은 궁금했다. 가짜 뉴스는 이 틈을 곧바로 파고들었다. ‘17세 피의자’가 ‘무슬림 망명자’라는 근거 없는 소문이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곧바로 영국 주요 도시에서 ‘반이슬람, 반이민’을 주장하는 극우 폭력 시위가 이어졌다. 무슬림 이민자의 소행이 아니라는 정부의 공식 발표가 이어졌지만, 광기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영국이 유별난 걸까? 2016년 미국 대선에서도 가짜 뉴스는 횡행했다. 그중 하나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이끄는 인신매매 조직이 유명 피자 가게 지하에 어린이를 성노예로 감금해 놓고 있다는 것. 지극히 허황한 얘기였지만, 믿는 사람이 적지 않았고, 심지어는 총을 들고 해당 피자 가게에 쳐들어가는 사람까지 등장했다.
2016년 옥스퍼드대는 매년 연말 발표하는 올해의 단어로 ‘탈진실(post-truth)’을 선정했다. 감정이나 신념에 뒤틀린 정보가 객관적인 사실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더 쉽게 움직이고, 여론 형성에도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우려였다. SNS라는 정보전달체계가 탈진실의 파괴력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더해졌다.
매일 느끼는 것처럼 한국이라고 ‘탈진실 시대’의 청정지역일 리 없다. 오히려 더 심각한지도 모른다. 최근엔 대통령까지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 축사에서 “가짜 뉴스에 기반한 허위 선동과 사이비 논리는 자유 사회를 교란하는 무서운 흉기”라고 지적했다.
세상은 나날이 복잡해지고 있다. 이제 한 개인이 전체적인 틀을 이해하기엔 역부족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 쉽게 깨닫지 못한다. 소크라테스가 목이 쉬도록 ‘너 자신을 알라’고 외친 이유다. SNS라는 도구로 세상을 바라보는 요즘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로 가득한 ‘반향실’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전달되는 뉴스마저 편파적이다. 알고리즘이라는 괴물은 잘못된 지식과 의견을 더 강화한다. 왜곡된 믿음은 계속해서 공고해질 뿐 도전받는 일이 거의 없다.
세상에 거대한 ‘정화기’가 필요할 지경. ‘아니면 말고’ 식의 뉴스를 생산하고, 이를 악용해 이익을 챙기려는 세력부터 엄단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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