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팔이 며칠 새 저리고 아파서 퇴근길에 한의원에서 침을 맞았다. 저녁 약속을 취소하고 곧장 집으로 갔다. 은행에 다닐 때다. 일찍 귀가한 나를 본 아버지가 대뜸 왼쪽 팔이 아프냐고 물었다. 어떻게 아셨느냐고 되묻자 “왼쪽 어깨가 처지지 않았느냐? 네 눈에는 보이지 않느냐. 거울에 비춰봐라. 한눈에 봐도 어깨가 내려앉은 게 보인다”라며 아픈 왼쪽 어깨를 쳤다. 팔이 떨어져 나갈 듯이 아파 눈물이 났다. 아버지는 서랍을 열어 흰색 알약을 하나 꺼내주면서 바로 먹으라고 했다. 의자에 앉자 아버지는 양손으로 손깍지를 껴보라고 했다. 오른손 엄지가 편하게 위로 올라왔다. 손을 바꿔 왼손 엄지가 위로 올라오게 깍지를 껴보라고 했다. 어색했다. 이번에는 팔짱을 껴보라고 했다. 자연스럽게 오른손이 위로 올라왔다. 왼손이 위로 올라오게 반대로 팔짱을 껴보게 했다. 역시 어색했다. 이어 다리를 평소대로 꼬아보라고 했다. 오른쪽 다리가 익숙하게 왼쪽 다리 위로 올라가자 그 반대로도 해보라고 했다. 왼쪽 다리가 오른쪽 다리 위로 올라오는 건 둔했다. 아버지는 “거울에 비춰봐서 알아챘겠지만, 네 몸은 눈에 띄게 왼쪽으로 기울었다. 중증이다”라며 간단한 검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어제오늘에 생긴 질환이 아니라고 단정 지었다. “비뚠 자세가 병을 키운다. 삼십수 년을 그렇게 미세하지만 바른 자세를 취하지 않아 병이 생긴 거다. 바른 자세에서 건강이 나온다. 네 몸 네가 망친 거다”라고 질책했다. 아버지가 벼루를 내줬다. 양말을 벗고 발에 먹물을 묻혀 흰 종이 위에 앉았다가 일어서라고 했다. 난생처음 풋 프린트(Footprint), 발도장을 찍었다. 오른쪽 발은 안쪽으로 반밖에 찍히지 않았다. 왼발은 바깥쪽으로 반만 찍혔다. 양쪽 발 모두 뒤꿈치 자국은 희미했다. 아버지는 “기어 다니던 인간이 직립보행하면서 자세가 흐트러졌다. 무거운 머리는 일곱 개 목뼈가 받치고 있다. 몸의 중심축 역할을 하는 척추 24마디는 골반이 받친다. 골반이 튼튼해야 몸의 중심인 척추가 바르게 된다. 골반이 틀어지면 여러 장기가 뒤틀리거나 눌려 소화기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라며 “원인을 모르는 병을 안고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어 “다리는 땅의 지반이고 골반은 인체의 초석, 척추는 대들보다. 다리와 골반의 어긋남으로 인해 등골이 비뚤어지고 척추가 변형된다. 신체균형 파괴는 물론 모든 질병은 거기서 시작된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히포크라테스도 ‘걷기는 인간에게 가장 좋은 약이다’라고 했다. 기울어진 자세로 걸어 다니고 있으니 스스로 병을 키우고 있는 거다”라며 자세를 바로 할 것을 주문했다. 아버지가 왼팔을 들어보라고 했다. 아프지 않았다. 아버지가 준 약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통증이 신통하게 사라졌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알약은 전상을 입어 다리를 절단한 아버지가 상비약으로 가지고 있던 강력한 진통제였던 거 같다. 아버지는 이내 똑바로 앉고 일어서고 걷는 연습을 한참 동안 시켰다. 왼팔이 아프지 않으니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 데 불편하지 않았다. 내 몸이 왼쪽으로 기울어졌던 걸 확연하게 느꼈다. 이어 아버지는 “곧은 자세와 균일한 보폭으로 걸어라. 무게중심을 뒤에 두고 허리와 등을 쭉 펴고 어깨를 조금 뒤로 젖히는 자세가 좋다. 목과 팔로 이어지는 어깨 통증은 근육이 과도하게 오랜 시간 수축해 있을 때 나타난다. 어깨 힘을 빼라. 양쪽의 균형을 맞춰라”라며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아버지는 “바른 자세도 1시간 이상이면 독이다. 몸을 자주 풀어줘야 한다. 오랜 시간 같은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근육과 관절이 긴장하기 때문에 좋지 않다. 오늘 연습한 것을 반드시 기억해 수시로 교정해라. 인간은 편한 대로 몸을 쓰게 되므로 잠시 방심하면 이전의 비뚤어진 자세로 이내 돌아간다”라며 주의를 당부했다. 고사성어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를 인용했다.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다’라는 말이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몸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효경(孝經) 개종명의(開宗明義)장에 실린 공자(孔子)의 가르침이다. 공자가 제자 증자(曾子)에게 “무릇 효란 덕의 근본이요, 가르침은 여기서 비롯된다. 사람의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이것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身體髮膚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몸을 세워 도를 행하고 후세에 이름을 날려 부모를 드러내는 것이 효의 끝이다. 무릇 효는 부모를 섬기는 데서 시작하여 임금을 섬기는 과정을 거쳐 몸을 세우는 데서 끝나는 것이다”라고 설명한 말에서 나왔다. 비록 전쟁 중에 다쳐 오른쪽 다리를 잃긴 했지만, 아버지는 “내 몸 하나 올바로 간수 못 했다. 부모님께 죄책감을 평생 느낀다”며 불효자라고 자책했다. 아버지는 “내 몸 하나 제대로 돌보는 작은 책임도 감당하지 못하면서 뻔뻔하게 직장의 여러 큰 책임을 맡을수 있냐"고 묻고 몸가짐을 바르게 할 것을 주문했다. 이어 “네 몸은 네 것이지만, 네 몸을 준 내 분신이기도 하다. 네 몸이 아프면 나는 더 아프다. 함부로 굴려서는 안 된다. 흔한 감기도 걸려서는 안 된다. 몸을 준 부모가 걱정하지 않게 몸을 돌보는 일은 너의 책임이다.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게 하려는 마음이 효심이다”라며 책임감을 강조했다. 손주들에게도 일찍이 일깨워 물려줘야 할 최고의 인성이다.<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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