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헷갈리는 도급? 파견?…계약서만 봐도 '답'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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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큰 인명 피해가 난 한 제조 사업장의 사고와 관련해 도급계약서가 문제된다는 보도가 있었다. 중대재해처벌법 등의 안전사고 이슈를 넘어 사망한 근로자들의 소속 또한 사고의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며, 소위 ‘가짜’ 도급계약서 논란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제조업 사업장에서 도급계약은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우리나라 파견법은 직접생산공정에 파견을 금지하고 있다. 아울러 파견이 허용되는 업종도 32개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산업현장에서는 금지되는 파견 대신 도급계약을 선택해 여러 직무에서부터 공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도급 법률관계를 형성해 오고 있다. 그런데 도급계약이란 형식에도 수급인의 근로자들이 도급인 산업현장에서 도급인의 관리자 등과 함께 혼재해 계속 근무함으로써, 여전히 파견관계와 진배없는 모습을 형성해 결국 도급계약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파견관계를 형성한 것이라는 이유로 허용되지 않는 업종, 직무에 대한 파견법 위반이 문제되는 것이다.

왜 이런 문제적 현상이 나타나는지를 살펴보면 단연코 눈에 띄는 현상이 하나 있다. 바로 도급계약서 자체가 이미 파견관계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도급은 일의 완성을 의미함에도 도급계약 내용 안에 수급인의 근로자가 도급업무를 수행함에서 도급인의 복무 기준을 준수하도록 하고, 수급인의 근로자가 일을 잘 못하면 도급인의 결정으로 바꿀 수도 있도록 규정하는 예가 상당수에 이른다. 도급이라는 ‘결과’ 중심의 계약을 무시하고 ‘과정’이란 파견 관계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다. 어떤 도급계약서는 도급인이 수급인의 근로자 자격요건을 규정하고 심사한다고 돼 있고, 직무교육조차 도급인이 시킨 대로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경우 이미 도급계약서 내용만으로도 파견관계를 확정하고 남을 정도다.

이 같은 현상은 대부분의 기업이 도급관계를 맺고 파견법에 문제없도록 한다는 목표를 갖지만 실상은 도급된 업무가 잘 돌아가는지, 수급인의 근로자들은 일을 잘하는지를 확인하고 또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도급업무가 아니라 직접 담당해 수행해야 했던 업무가 아닌가 싶을 정도인 사례도 있다.

기업이 불법파견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도급과 파견의 구분을 명확히 한 도급관계에 맞는 적법한 법률관계를 형성하고 또 지속적인 관리를 해야 한다. 그 시작점은 바로 도급계약서의 철저한 점검과 관리다.

첫 번째로 도급업무를 규정함에 있어서는 명확하고 한정된 업무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 도급인 관리자들이 혹여 몰라 더 시킬 일이 있을까봐, 혹은 ‘도급인이 정한 모든 기타 업무’ 등의 표현들은 이미 수급인과 수급인 근로자가 도급인이 시키는 대로 일을 다해야 한다는 도급인 사업장으로의 편입을 자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도급계약 기간도 구체적으로 정하고 종료, 갱신의 기준을 정해 규정해야 한다. 계약이 사실상 매년 갱신되도록 규정하는 것은 일의 완성이 없는 계속적인 파견관계를 추정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도급업무 수행에서 수급인의 독립적 계획 수립과 독자적인 업무수행을 포함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수급인이 어떠한 권한과 책임도 없이 단순히 소속 근로자들을 데리고 도급인 사업장에 와서 도급인의 관리를 받지 않는다는 법률관계를 계약에서부터 명확히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도급인 관리자는 무엇을 합니까?” “수급인은 애초에 그럴 능력이 안되는데 의미가 없는 것 아닙니까?” 하는 현장의 볼멘소리가 있는데, 이는 모두 “우리는 파견관계라서 도급 관리자는 수급인 근로자를 관리해야 하고, 그 이유는 수급인은 도급업무를 도급인 관리 없이는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를 자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도급업무의 단가는 품목이나 서비스를 기준으로 규정해야 함이 원칙이고 실제로도 이 기준으로 철저히 계산돼야 한다. 도급비에서는 수급인 차원의 손해를 보지 않겠다며, 투입한 근로자들의 근로시간 기준의 계산이나 최소 보장 금액을 요구하는 예가 더 많다. 이 또한 수급인 스스로 이윤 창출과 손실 초래의 위험을 안고 독립된 사업을 하지 않겠노라 선언하는 아쉬운 대목이다. 도급인으로서는 경쟁입찰과 계약관리를 통해 적법하고도 사업에 도움이 되는 도급관리를 해나가야 한다.

수급인의 근로자는 도급인의 근로자가 아니다. 몇 명으로 일을 하는지, 누가 어디에서 일을 하는지 알려고도 하지 말고 알 수도 없어야 한다. 도급인은 오로지 일의 완성으로서 서비스 품질과 만족, 또는 상품의 상태를 통해 도급관계를 조율해 가야 한다. 수급인도 실패를 통해 도급의 완성도를 높여갈 기회가 있다. 그 기회를 보장해 수급인 스스로가 일의 완성 중심으로 자신의 인력을 운영해 갈 수 있도록 촉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런 내용이 도급계약에 명확히 규정되면, 도급인 소속 관리자 역시 도급계약을 준수하기 위해 실태에 있어서도 이 도급계약 내용에 따르도록 해야 한다. 최근 생산관리프로그램(MES) 등 전산프로그램의 이용을 이유로 한 불법파견 관계가 성립한다는 판결을 살펴보면, 프로그램 이용 이전에 이미 도급계약의 문제에서부터 도급인의 수급인 소속 근로자에 대한 지휘, 감독적 사실관계가 상당함을 알 수 있다. 도급관계는 그 계약에서부터 아날로그적인 접근을 해야 적법한 도급관리가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기세환 태광노무법인 대표 공인노무사

이 글은 한국경제신문 좋은일터연구소가 발행하는 ‘한경 CHO Insight’ 뉴스레터에 실린 기고입니다. ‘한경 CHO Insight’는 한국경제신문이 인사·노무 분야를 담당하시는 임원, 최고경영자께 드리는 뉴스레터입니다. 넘치는 현안과 복잡한 이슈 중에서 핵심 내용을 정리하고 인사이트를 담아 매주 수요일 아침 구독자를 찾아갑니다. 구독을 원하시면 QR코드를 찍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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