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서치센터장 인터뷰] 박영훈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미국 경기 침체 우려와 일본 금리 인상으로 인한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등 악재가 쏟아지면서 지난 8월 5일 국내 증시는 10% 이상 하락했다.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 모두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지만, 폭락의 쓰나미를 피해 가진 못했다. 일각에서는 다가올 경기 침체에 따른 대폭락의 전조라며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하지만 주식 시장 급락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경기 침체 우려가 다소 진정되면서 한국 증시도 반등세를 타고 있다. 특히 경기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정점을 지났다고 보고 주식 시장의 점진적인 상승세를 예측하는 의견까지 나온다. 박영훈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역시 국내 증시 폭락은 ‘과잉 반응’ 성격이 강하다고 지적하며, 하반기 증시에 대한 우려보다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박 센터장은 9월 금리 인하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 예상하며, 이에 대비한 투자 전략을 조언했다.
현재 주식 시장은 어떤가요.
“올해 상반기는 유동성이 아닌 실적이 주요 변수로 작용해 수출 증가율이 고점을 찍은 6월 말에 1차 변곡점이 나타났다고 봅니다. 하반기는 미국이 경기 침체에 빠지지 않으면서 금리를 인하하는 보험적 인하로 2차 상승이 가능할 것으로 보여요. 8월 초 주가 급락은 인공지능(AI) 과잉 투자에 대한 우려와 이로 인한 수익성 확보의 불확실성 이슈에 미국 경제 지표의 일시적 부진, 그리고 일본 금리 인상으로 인한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가능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요인도 급락을 명확히 설명해줄 수 없는 과잉 반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AI는 개별 기업을 넘어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장기간 성장할 산업이기 때문에 고점을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예요. 코스피 2600선은 매수 가능 구간이라고 봅니다.”
하반기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올해 코스피 예상 밴드는 2500~3000 수준이 될 것 같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하반기엔 U자형 시황이 될 거라고 봅니다. 최근 코스피의 시가총액이 1930조 원까지 감소했는데, 올해 예상 순이익은 192.1조 원으로 올해 주가수익비율(PER)은 10배 수준입니다. 같은 기준으로 2002년 이후 코스피의 평균 PER을 계산해보면 13.6배나 돼요. 상승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보는 이유죠. 금리 하락이 일단락된 다음 주식 시장이 강세로 전환할 텐데, 그때 금리 하락을 레버리지 할 수 있는 배당 관련주와 정보기술(IT), 조선 등이 상반기 상승세를 이어 갈 것으로 전망합니다.”
9월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하가 정말 시작될까요.
“9월 25bp(1bp=0.01%포인트), 12월 25bp 정도의 금리 인하를 예상합니다. 시장에선 경기 침체를 우려하지만 실업률 4.5%, 물가 상승률 2%대 정도가 Fed가 편안해하는 거시경제 환경이거든요. 물가, 경기, 금리는 한 방향으로 움직여요. 9월은 이런 지표들이 확인된 이후여서 실질적인 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는 시점이라고 보입니다.”
올해 톱픽이었던 AI, 반도체의 상승 여력은요.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분기 실적 발표에서 ‘기술 분야에서 이런 전환기를 겪을 때는 과소 투자가 과잉 투자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말을 하며 AI 투자를 줄일 생각이 없다고 언급했습니다. 비단 구글뿐 아니라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도 같은 입장을 밝힌 바 있어요. 다만, 주식 시장 참여자 입장에서 보면 투자만 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거둬들이는 모델이 명확하지 않은 것에 대해 캐즘(chasm: 일시적 수요 정체)에 진입했다는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AI는 일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인 투자 의지를 보이고 있는 분야이기에 장기적인 시각을 갖고 접근할 필요가 있죠.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다양한 분야로 확산하다 보면 어느 순간 급격한 팽창이 발생합니다. 단기적인 실망에 따른 낙폭 과대 시점마다 AI 산업에 대한 투자 비중을 높이는 것이 좋습니다. 글로벌 기준으로 미국의 데이터센터 비중이 60%에 달하죠. 현재 미국 IT 산업이 가장 많은 자금을 투자하는 분야가 바로 이 데이터센터 분야이기 때문에 아직은 속단할 수 없어요. 특히 성장 산업으로 인식되는 재생에너지나 전기차(EV)에서 중국이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로 글로벌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AI는 미국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분야입니다. 다만 AI 관련 투자가 매년 급격한 증가를 유지할 수는 없어요. 어느 시점에서는 투자 증가 속도가 정체되거나 꺾이면서 고점 논란이 다시 불거질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시점에서는 사업화나 수익화로의 방향 전환도 예상할 수 있어요. 이 분야야말로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에너지 시장에 늘 주목하셨는데, 하반기 유가를 전망한다면요.
“이란·이스라엘 간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유가는 배럴당 80달러 미만에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주식 시장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유가를 전망하는 것인데, 수요 측면에서만 본다면 수요가 가장 많은 중국의 올 상반기 원유 수입량이 전년 대비 2.4% 감소했습니다. 중국 CNPC 등이 전망하는 중국의 원유 수요 피크는 2026년 전후이기 때문에 수요 증가세는 점진적으로 둔화될 것으로 보여요. 인도 등의 수요 증가 속도가 높은 건 사실이지만, 중국 원유 수입량의 40% 수준인 인도의 수입 수요가 증가한다고 해도 중국의 수입량 감소 가능성을 감안하면 서로 상쇄되는 수준 이상은 아닐 것으로 봅니다.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의 실질적인 감산 정책이 올해를 끝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에 공급 물량 증가는 불가피하죠.
다만 전쟁 발발 등으로 단기 급변동은 발생할 수 있지만, 이란·이스라엘 간 충돌이 군대를 동원해 상호 영토를 침범하는 전쟁으로 전개될 가능성은 없기 때문에 OPEC 내 원유 생산과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려되는 점을 꼽자면 이스라엘의 이란 석유 생산·저장 시설에 대한 공격이죠. 하지만 미국이 대선을 앞두고 유가 급등을 절대 원치 않을 것임을 감안하면 가능성이 낮다고 봅니다. 이런 모든 상황을 고려할 때 하반기 유가는 배럴당 80달러 내외에서 유지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정유와 석유·화학의 업황 흐름은 어떨까요.
“두 분야 모두 공급 과잉에 직면한 상황이에요. 자동차 보급률이 높은 OECD 국가의 석유 제품 수요는 줄고 있고 그동안 수요 증가율이 높았던 중국은 석유 제품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전환되고 있거든요. 이에 따라 정제 마진이 부진한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석유화학 역시 과거 최대 수입국인 중국의 자급률 상승과 지속된 증설로 인해 향후 2년 내에는 회복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합니다. 글로벌 경기의 회복 속도가 관건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단기간의 시황 개선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당분간 힘든 시기가 지속될 것 같아요.”
그동안 정유와 석유 업계가 2차전지로 사업 재편을 꾀해 왔습니다. 2차전지 분야가 언제쯤 반등할 수 있을까요.
“중국을 제외하고 최근 글로벌 전기차 수요가 부진했던 이유는 2023년 유럽 국가의 보조금 축소·폐기, 새로운 전기차 모델 부재, 전기차 업체들의 소극적인 전기차 전략 등을 꼽을 수 있어요. 따라서 향후 전기차 수요가 반등할 수 있는 요인은 가격이든 기술력이든 경쟁력 있는 전기차 신모델 등장이 필수죠.
전기차 가격 인하와 전기차 인프라 확충 등 소비자들의 전기차에 대한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조치도 뒤따라야 합니다. 올해까지는 신모델 출시가 제한적이고, 정책적 불확실성이 높아 전기차 기업들도 선뜻 공격적인 전략을 취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미국 대선 이후 2025년에는 신규 전기차 플랫폼이 다수 출시될 예정이지만 대선 결과에 따라 미국의 정책 변화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동해 심해 가스전 관련주들도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개발 프로젝트가 가능할까요.
“아직 실질적인 탐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라서 가능성 여부를 논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존재를 확인하더라도 경제성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원유라면 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 등급의 원유인지 확인이 필요하고, 가스라면 구매권한(off-take)이 가능한 수준인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해요. 이 모든 것이 예상대로 이루어지더라도 수년이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외 하반기에 주목할 만한 섹터는 무엇입니까.
“여전히 밸류업 프로그램이 전반적으로 저평가돼 있습니다. 은행에 이어 보험, 지주 등도 밸류업 정책을 공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특히 밸류업 관련 세제 개편안이 통과될 경우 대주주들이 배당을 늘리게 하는 효과가 있어 트리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도 시장에 이미 반영돼 있는 것으로 보여 섹터는 작지만, 건설 등도 저평가된 상황이라 생각합니다.”
만약 여윳돈 10억 원이 있는 자산가에게 현재 투자 전략을 제안한다면 어떻게 조언을 하시겠습니까.
“미국 주식 25%, 한국 주식 20%, 채권 25%, 리츠 20%, 원자재·비트코인 등에 10%씩 투자하라고 권유하는 편입니다. 자산가들의 전략은 특정한 위기 상황에 빠지지 않으면서 인플레이션을 웃도는 수익률을 올리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포트폴리오를 급격히 바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6개 정도의 자산을 안정적으로 가져가는 게 좋습니다.”
김수정 기자
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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