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리오는 대기업 일색인 세계 미디어 프랜차이즈 시장에서 기념비적인 업체로 불린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는 2022년 산리오 캐릭터인 헬로키티의 누적 수익을 845억달러(약 115조원)로 평가했다. 캐릭터 지식재산권(IP) 중 시장 가치가 닌텐도의 포켓몬스터 다음으로 컸다. 디즈니의 곰돌이 푸, 미키마우스 등을 제쳤다.
○50살 넘긴 캐릭터로 韓 B2C 휩쓸어
산리오는 9일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역대 최고가인 3622엔에 장을 마감했다. 이 회사의 시가총액은 9251억엔(약 8조6000억원). 유가증권시장에선 시총 상위 50위권에 들어가는 덩치다.
사업도 순항하고 있다. 지난 2분기 영업이익은 107억4600만엔(약 998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80% 늘었다. 영입이익률은 37%로 국내 최대 게임사인 넥슨과 같다. 정직원 692명으로 낸 성과다. 콘텐츠업계에서 산리오의 성공을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산리오의 핵심은 1974년 탄생한 헬로키티다. 당시 문구업체이던 산리오는 미국에서 개 캐릭터인 스누피가 인기를 끌자 고양이와 닮은 소녀로 헬로키티를 디자인한 뒤 동전지갑 캐릭터로 넣었다. 캐릭터 사업에 자신감이 붙은 산리오는 후속 캐릭터를 거의 매년 쏟아냈다. 지난해 1~8월 한국 관세청이 적발한 위조상품 수량 순위 2위인 마이멜로디, 4위 시나모롤, 5위 쿠로미 등도 산리오가 만든 작품이다. 명품과 스포츠 브랜드 위주였던 국내 ‘짝퉁’ 시장에 산리오가 미친 영향력이다.
유통업계에선 “산리오와 손잡으면 기본은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올해에만 신세계백화점, 세븐일레븐, 크록스 등이 헬로키티를 앞세워 팝업스토어를 내거나 신상품을 선보였다. 프로축구리그인 K리그는 지난달 구단마다 산리오 캐릭터와 짝지어 굿즈를 내놨다. 롯데호텔은 제주에 헬로키티로 꾸민 호텔 룸을 운영했다.
같은 IP 사업을 하는 넥슨, 넷마블마저 게임에 헬로키티를 넣으며 이용자를 끌어모았다. 해외에선 명품업계가 산리오와 손잡았다. 고양이 소녀를 넣어 발렌시아가가 가방을, 스와로브스키가 목걸이를, 세이코와 카시오가 시계를 내놨다.
○엔터 협업으로 ‘즐길 시간’ 늘려
콘텐츠업계는 산리오가 쓴 ‘반전 드라마’에 주목하고 있다. 이 회사는 2021회계연도(2020년 4월~2021년 3월) 영업손실을 보며 위기를 맞았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오프라인 활동이 위축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산리오는 헬로키티 굿즈에 의존하는 사업구조가 시장 변동성에 취약하다고 봤다. 2014회계연도엔 이 회사 해외 매출의 93%가 헬로키티에서 나올 정도로 의존도가 높았다.위기 탈출을 위해 산리오는 관련 콘텐츠에 이용자가 몰입하는 시간을 ‘산리오타임’으로 이름 짓고 이를 핵심성과지표로 삼았다. 굿즈 판매 대신 캐릭터에 대한 소비자의 긍정적 경험에 집중하자는 전략이었다. 테마파크, 영어교육, 스포츠, 게임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산리오는 외부 업체와 협업을 늘렸다.
넷플릭스와 손잡고 직장인의 애환을 다룬 애니메이션을 시즌5까지 내보내기도 했다. 공격적인 협업에 힘입어 산리오가 추정한 산리오타임은 2022년 4분기 누적 1억5000만 시간에서 지난해 4분기 4억 시간으로 266% 늘었다. 헬로키티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0%로 내려갔다.
일본 캐릭터 산업의 절대강자인 닌텐도도 올해 주가가 날아올랐다. 이 회사 주가는 지난달 11일 9100엔으로 종가 기준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날 기준 시가총액은 11조8176억엔(약 110조원)이었다. 국내 2위 규모 상장사인 SK하이닉스(약 123조원)와 어깨를 견줄 만하다.
주력 사업은 자체 플랫폼을 활용한 게임이다. 닌텐도는 포켓몬스터, 젤다의 전설, 마리오와 같은 자체 IP를 활용해 쉽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내놓는 데 집중해왔다. 고품질 그래픽이나 확률형 아이템을 통한 수익모델을 강조하는 국내 대형 게임사와 다른 부분이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