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목적은 나의 목소리였고, 나의 원동력은 분노였다.” 소통과 자존감을 확고하게 드러낸 이 선언은 어느 철학자의 변론이 아니다. 놀랍게도 22살 된 금메달리스트 청년의 자기 서사였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와 구세대 간 갈등, 스타와 프로듀서의 분쟁, 스포츠 단체 내에서의 파벌 싸움 또는 각종 비리나 ‘꼰대 문화’의 문제점 등 여러 가지 관점에서 음미해 봐야 할 사안이기는 하다.
이번 올림픽 기간 여러 협회를 비교하고, 그 성과의 차이를 토론하는 분석이 이곳저곳에 많았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협회’나 비슷한 이름의 단체·집단이라는 한국 특유의 거버넌스 문제점과 그 미래에 대해 논의해 보고자 한다.
국내에서는 개인이나 기업 등의 집단이 있기 전에 협회를 구성했다. 1960년대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산업이나 기술, 문화, 체육 등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국가가 협회를 세우고, 협회가 개인이나 기업 집단을 향도(嚮導)했다. 전형적인 추격자 모델에 기반한 발전 전략이었다. 놀라운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전략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경쟁력의 요체가 급변하고 있고, 한국의 수준은 매우 높아졌으며, 무엇보다도 우리 개인이 성장하고 다양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회가 더욱더 강성해지려 하고 개인 위에 군림한다면 ‘파열음’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첫째, 대부분의 협회는 그 본질상 평균적인 수준을 향상시키고 그런 성과에 집착하는 경향을 갖는다. 일반 회원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뛰어난 전문성과 수월성을 창도하지는 못한다. 세계 1위를 만들 수도 없고, 멋진 괴짜나 혁신가를 창출하지도 못한다.
둘째, 협회는 교묘하게 진입장벽을 쌓아서 사회를 내 편과 남으로 나눈다. 그 결과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한다. 디지털을 매개로 한 통섭과 공유의 정신 및 가치 창출을 무력화한다. 한편 최악의 퇴출장벽을 갖췄다. 원해도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어째서 반드시 협회의 승인을 받아야만 국가대표가 되고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게 돼 있는가?
셋째, 규정과 벌칙을 강화해 협회 자체의 권력을 강화한다. 강화된 권력은 몇몇 카르텔로 분점된다. 이런 기득권 구조에서 새로운 것이 창발하기는 매우 어렵다. 넷째, 자체 혁신을 통해 많은 수입을 얻고 가치 있는 활동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편안한 수입원인 후원금이나 명망가의 지원에 의지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협회 리더들의 경쟁력과 소통 능력은 매우 뒤떨어진다. 또 협회를 통해 엉뚱한 경제적, 정치적 이득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출몰하기도 한다.
다섯째, 기업이나 직능인으로 구성된 협회들이 자기 독점적 권한을 유지하기 위해 정치적 로비를 하고 단체행동을 해서 수많은 부당이득과 불로소득을 창출한다. 이는 젊은 창업가들이 시도할 많은 기회를 원천부터 가로막는 것이다.
미래 문명의 토대는 발랄하고 책임감 있는 개인의 자존감과 자기의식에서 비롯된다. 그 개인이 비판의식도 높으면 그 문명의 경쟁력과 건전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다행히도 이런 자존감과 비판의식이 우리나라 청년들의 기본 자질임을 여러 차례 확인할 수 있어 기쁘고 든든하다.
청년들의 현재를 무력하게 만들고, 미래의 꿈을 처음부터 짓밟는 구시대적인 거버넌스와 사회적 통념이나 관행을 열심히 찾아내 빨리빨리 개선해야만 한다. 협회의 구태의연한 거버넌스를 혁신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진정한 역량이며 정부나 정치권이 고뇌해야 할 아젠다다. 기성세대가 남은 삶을 오래오래 누리는 방법이기도 하다.
부디 이런 문제를 제기한 선수가 사회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큰 상처를 받지 않고 또 그 멋진 실력에 손상 없이, 이 어려운 상황이 해결되기를 바란다. 최고의 선수로 오랫동안 기억되는 한편, 우리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멋지게 질문한 과감한 도전의 상징이 되기를 바란다. 그 도전의 결과가 쌓이다 보면 수없이 많은 세계 1위의 체육가, 아티스트, 프로듀서, 과학자, 엔지니어, 창업가들이 넘쳐나는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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