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지수 손실 사태’ 데자뷔
6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발행 ELS 중 글로벌 주요 주가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상품의 미상환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33조8596억원이다. 미상환액을 기초자산에 따라 구분해 보면 S&P500지수 ELS가 10조4381억원으로 30.8%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유로스톡스50지수(30.0%), 코스피200지수(16.8%), 홍콩 H지수(16.2%), 닛케이225지수(6.2%) 등이 뒤를 이었다.이들 주가지수는 최근 증시 조정으로 고점 대비 10~20% 정도 떨어졌다. 최근 3년 내 고점 대비로 홍콩 H지수가 38.70%로 하락폭이 가장 컸다. 이어 코스피200지수가 고점 대비 21.13% 주저앉았고 닛케이225지수(-17.88%), 유로스톡스50지수(-10.38%), S&P500지수(-8.49%) 등도 큰 하락폭을 보였다.
ELS는 크게 ‘녹인(knock-in)형’과 ‘노녹인(no knock-in)형’으로 구분된다. 녹인형은 일반적으로 기초자산 주가지수의 값이 발행 당시 대비 50% 하락하면 손실 범위에 들어온다. 이들 상품은 손실 구간까지 여유가 있는 상태다.
문제는 노녹인형이다. 이 유형 상품은 기초자산 주가지수가 발행 당시 대비 35% 하락하면 손실 범위에 들어온다. 만기 때 기초자산 값이 그에 못 미치면 발행일 대비 하락폭이 곧 손실폭이 된다. 이미 대규모 손실 사태가 발생한 홍콩 H지수를 제외하고 고점 대비 하락폭이 가장 큰 코스피200지수는 녹인 구간까지 14%포인트 정도 남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손실 구간에 진입할 수도”
글로벌 주요 주가지수가 지난 2일과 5일 폭락했다가 이날 반등했지만, 아직 안심하기 이르다는 분석이 많다. 대규모 ELS 손실 사태를 일으킨 홍콩 H지수도 하루아침에 폭락하지 않고 2021년 2월 고점부터 2022년 10월 저점까지 약 2년 동안 지속적으로 우하향했다.이날 증시 반등도 추세 반전이 아니라 전날 폭락에 뒤따른 기술적 반등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강현기 DB금융투자 주식전략파트장은 “정보기술(IT) 거품이 붕괴할 때 코스피지수의 ‘12개월 확정 실적 기준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7배까지 내려갔는데, 이를 현재 상황에 대입하면 코스피지수가 2100 부근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며 “S&P500지수에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3000선도 위태롭다”고 했다.
코스피지수가 2100선까지 떨어진다면 코스피200지수는 280선까지 조정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고점 대비 30% 정도 떨어져 노녹인 상품의 손실 지점인 ‘35% 하락’에 근접한다. S&P500지수 역시 3000까지 떨어지는 경우 고점 대비 하락폭은 47.06%에 달한다. 이렇게 되면 이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는 노녹인 상품은 물론이고 녹인 상품까지 위태로워진다.
이런 우려가 과하다는 전문가도 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주요 주가지수가 고점 대비 35% 이상 떨어지는 건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흔치 않고 코로나19 팬데믹,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훨씬 큰 충격이 왔을 때나 발생한다”며 “그 정도 약세장이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