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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떠나는 나라엔 기업·일자리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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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돈만 많으면 살기 좋은 나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교통·통신 인프라를 갖추고 있고 치안도 좋으니 돈만 있으면 뭐가 걱정이겠느냐는 얘기다. 그런데 꼭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영국 투자이민 컨설팅 기업 헨리앤드파트너스 보고서를 보면 올해 한국에서 유동 자산 100만달러 이상인 부자가 1200명 순유출될 것이라고 한다. 왜 부자들은 한국을 떠나려 할까. 부자가 떠난 나라의 경제는 어떻게 될까.
부자가 떠나는 나라의 공통점
헨리앤드파트너스가 발표한 부자 순유출 상위 10위권 국가엔 공통점이 있다. 권위주의 정부가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치안이 불안하거나 부정부패가 만연한 나라라는 점이다. 중국, 인도, 러시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나이지리아 등이 그런 나라다.

눈에 띄는 예외가 2위 영국과 4위 한국이다. 이 두 나라만의 공통점이 있다. 부자에게 세금을 많이 부과한다는 점이다. 영국은 32만5000파운드(약 5억7000만원)가 넘는 자산을 물려받는 사람에게 초과분의 40%를 상속세로 부과한다. 영국보다 더한 나라가 한국이다. 한국은 상속 재산에 최고 60%의 세율을 적용한다. 한국에는 다른 나라에는 없는 배우자 상속세도 있다.

부자들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하면 정부 세입이 늘고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나기 쉽다. 부자들이 세금을 피해 다른 나라로 가버리기 때문이다. 노르웨이는 2022년 자산 2000만크로네(약 25억원) 초과 구간에 적용되는 부유세율을 1%에서 1.1%로 높였다. 단 0.1%포인트의 세율 인상에 30명이 넘는 자산가들이 노르웨이를 떠났다.
부자가 사라진 나라의 모습
1700년대 초반 영국에서 활동한 네덜란드 출신 의사이자 사상가 버나드 맨더빌은 저서 <꿀벌의 우화>에서 부자가 사라진 세상을 묘사했다. 그는 “엄청나게 돈을 써 대던 그런 놈들이 떠나자 그들 덕에 먹고살던 수많은 놈들이 마찬가지로 떠나야 했다”고 썼다.

맨더빌에게서 영향을 받은 사람이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에는 ‘어리석은 지주’ 얘기가 나온다. 이 지주는 사치와 과소비를 일삼는다. 자기가 가진 것을 남에게 베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하지만 그의 까다로운 입맛과 취향을 맞추기 위해 여러 가지 상품과 서비스가 만들어지고 그것을 생산하기 위한 일자리가 생겨난다. 부자의 소비가 경제 성장과 고용으로 연결된다는 점을 설명한 것이다.

부자들이 떠나면서 성장이 정체된 나라의 실제 사례는 많다. 스웨덴은 한때 부자에게 가혹할 만큼 높은 세금을 부과했다. 1970년대 중반 소득세 최고세율이 87%에 달했다. 그러자 대기업이 본사를 외국으로 옮기고 부자들이 이민을 가기 시작했다. 1970년대 유럽 5위 안에 들었던 스웨덴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90년대 17위까지 밀려났다. 부작용을 절감한 스웨덴은 2000년대 들어 상속·증여세, 부유세, 주택 재산세를 폐지했다.
부자가 몰려드는 나라의 공통점
세계 여러 나라가 부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한다. 부자들이 세금을 덜 내더라도 그들이 돈을 쓰고 사업을 벌이게끔 하는 것이 나라 경제에 이롭다고 보기 때문이다. 헨리앤드파트너스 보고서에 나온 부자 순유입 1~5위 국가 중 아랍에미리트(UAE), 싱가포르, 캐나다, 호주에는 상속세가 없다. UAE에는 개인소득세가 없고, 싱가포르엔 배당소득세가 없다. 2위 미국은 상속세가 있지만, 공제 한도가 1170만달러(약 160억원)로 매우 높다.

맨더빌은 부자들이 부리는 사치를 “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악덕”이라고 비꼬았다. 그러나 바로 그 악덕이 “시장을 돌아가게 하고 가난뱅이에게 일자리를 줬다”고 했다. 부자들을 내쫓는다면 소비와 투자, 일자리와 세금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유승호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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