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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 철강재가 계속 수출 시장으로 밀려 나오면서 건설, 조선, 자동차, 제철 등 연관 산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산 철강재가 저가로 쏟아지는 것은 자국 경기 침체로 수요가 주춤하고 있어서다. 중국 철강 기업들은 자국 경기 침체에도 생산량을 줄이지 않고 있다. 고부가가치 제품 시장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하며 해외 제철 기업들을 상대로 치킨게임을 벌이는 형국이다. 국내외 주요 제철 기업에는 대형 악재다.
반면 철강재를 공급받는 기업들은 상당한 이익을 얻을 전망이다. 글로벌 철강 수요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중국 내수 위축으로 철강재 가격은 더 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대형 선박 발주 증가로 호황을 맞은 국내 조선업계엔 큰 호재다. 철근 등 자재값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건설업계도 수혜가 예상된다. 철강재 가격 인하는 자동차·부품 기업의 이익률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철광석값 t당 40달러로 내린 10년 전 상황 재현되나
5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이달 초 북중국 철광석(FE 62%) 현물 가격(CFR)은 톤(t) 당 102.9달러 선에서 거래됐다. 시카고상품거래소의 철광석 선물도 104달러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현물 기준으로 t당 143.9달러 수준이었던 연초에 비해 30% 가까이 낮은 수준이다. 싱가포르의 네비게이트코머더티의 아틸라 위드넬 상무는 전문매체 마이닝닷컴과 인터뷰에서 "중국의 '끔찍한' 국내 수요와 풍부한 공급으로 인해 철광석 가격이 t당 40달러 이하로 떨어졌던 10년 전 시장 상황을 연상시킨다"며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수요가 주춤한 가운데 철광석 공급은 호조를 보이고 있다. 세계 최대 광산기업 BHP는 최근 2분기 서호주 철광석 생산량이 7680만t으로 예상치 7540만t을 뛰어넘었다고 발표했다. 서호주 철광석 광산의 작업 병목 현상을 해소하는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덕분이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광산기업 미네랄리소시스는 새로 개발한 호주 필바라 지역의 온슬로우 광산에서 나온 철광석을 지난 5월 처음으로 중국 제철 기업 바오우 그룹에 수출했다. 온슬로우 광산은 조만간 연 3500만t 정도의 생산량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부터는 리오틴토와 중국려업(chinalco)이 합작한 기니의 시만두 광산에서 철광석 생산이 시작될 예정이다. 맥쿼리그룹에 따르면 내년 500만t을 시작으로 2028년에는 연간 9000만t까지 생산량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치킨게임' 열연코일 등 철강재 가격 급락
경기 침체로 자국 수요가 줄어들고 있지만 중국 제철 기업들은 생산을 멈추지 않고 수출 시장으로 제품 밀어내기를 하고 있다.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중국은 올해 상반기에 전년 대비 24% 증가한 5300만t의 철강을 수출했으며, 연간으로는 2015년 기록한 사상 최고치인 1억1000만 t에 근접할 전망이다. 중국의 철강 제품 수출도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옮겨가고 있다. 건설용 철근의 경우 중국 수출은 2015년 3000만t에서 지난해 600만t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반면 열연 강판은 지난해 2000만t을 넘어서며 같은 기간 40% 이상 늘어났다. 지난해부터 쏟아진 중국산 홍수 속에서 국내 열연코일(3.0x4x8mm) 가격은 t당 88만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작년 6월 약 108만원에 비해 가격이 20% 가까이 내렸다. 시카고상품거래소의 열연코일 선물 가격도 작년 말 1000달러를 넘었던 것이 660달러 수준까지 급락했다. 지난해 국내에서 t당 80만~85만원 정도였던 철근 시세도 중국·일본산 수입 가격 하락의 여파로 내림세다.
신일본제철과 포스코 등 주요 제철 기업들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신일본제철은 지난 5월 해외 시장의 철강재 가격 하락으로 2024 회계연도 영업 이익이 전년에 비해 900억엔(약 8363억원)이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포스코홀딩스는 지난 2분기 영업이익(연결기준)이 7520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43.3% 급감했다. 현대제철도 2분기 영업이익이 980억원으로 작년보다 78.9%나 줄었다. 정부는 중국산 철강재 일부 제품 반덤핑 조사를 검토중이며, 미국과 EU 등 주요 선진국 뿐 아니라 중남미와 동남아시아 등에서도 관세 부과를 추진 중이다.
호황 맞은 조선업계 '겹경사'
몇 년 치 수주 물량을 쌓아놓은 조선 업계에선 철강재 가격 인하로 이익이 대폭 증가할 전망이다. 국내 철강 업계와 조선사는 최근 후판 공급 가격을 소폭 인하하는 데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후판은 두께 6㎜ 이상의 두꺼운 강판으로 주로 선박 건조나 교량 등에 쓰인다. 선박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20%에 달한다. 건설 업계의 경우 철근 등 철강 자재 가격 하락에 일부 수혜를 입을 전망이다. 그러나 시멘트 등 다른 자재 비용과 인건비 상승으로 총공사비 인하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5월 국토교통부 발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시멘트 가격은 42%나 급등했다. 전기 요금과 친환경 설비 부담 등의 영향이다. 레미콘은 ㎥당 7만1000원에서 9만3700원으로 32% 상승했고, 골재(부순골재) 역시 36% 올랐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