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9월 금리 인하를 확인한 뒤 10월에 내린다.’
직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린 지난달 11일 이전까지 대다수 시장 전문가는 한은의 금리 인하 시점에 대해 이런 전망을 내놨다. 올 들어 물가가 둔화하고 내수 부진이 이어지는 것은 금리 인하 요인이지만 자본 유출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내리는 것은 한은이 부담스러워할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최근 들어 한은이 풀어야 할 ‘피벗(정책 전환) 방정식’은 훨씬 복잡해지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31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9월 기준금리 인하를 기정사실화했지만 수도권 중심의 부동산 가격 상승과 가계부채 급증에 외환시장 변동성 우려 변수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금리를 내리자니 부동산 폭등이, 동결을 이어가자니 내수 악화가 우려돼 한은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부동산 안 잡히면 인하 어렵다
한은은 1일 ‘FOMC 관련 시장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이 같은 딜레마를 언급했다. 유상대 한은 부총재는 “물가와 경기 상황에 따라 (글로벌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차별화가 뚜렷해질 것”이라며 “(한국엔) 수도권 중심의 주택 가격 상승, 가계부채 증가세, 외환시장 변동성 확대 등 금융안정 리스크가 있다”고 말했다. 2%대로 내려온 물가 상승률과 내수 부진 등 경기를 고려하면 금리를 인하할 수 있는 환경이지만 금융불안 때문에 쉽지 않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풀이된다.금리를 결정하는 금통위원들은 최근 부동산 가격 상승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최근 공개된 7월 통화정책방향 회의 의사록에 따르면 금통위원 전원이 부동산 가격 상승을 우려했다. 한 위원은 “금리 인하가 부동산 가격 상승을 촉발하는 계기가 돼서는 안 된다”고 했고, 다른 위원은 “주택 가격 상승이 주거비 증가로 이어져 물가 상승 압력이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한은 관계자는 “금통위원들이 부동산 상황을 밖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며 “주택 가격이 급등하는데 금리 인하 의견을 내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 내부적으로는 이 같은 분위기를 감안할 때 부동산 가격 상승세가 잡히지 않으면 연내 금리 인하가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환시장의 변동성도 조기 금리 인하를 꺼리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날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오후 3시30분 기준)은 전날보다 10원30전 하락(원화 가치는 상승)한 1366원20전을 기록했다.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가 달러화 가치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환율이 내렸다.
환율 안정은 금리 인하에는 긍정적인 신호지만 한은이 미국에 이어 곧바로 금리를 내릴 경우 금리 격차가 다시 유지되면서 환율이 반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본은행이 전날 금리를 인상하면서 한국과의 금리 격차가 좁혀진 것도 변수다. 이윤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일본과 한국의 금리를 비교해 투자처를 옮길 가능성이 있다”며 “이 경우 외환 유출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 금리 내려도 1년 후 영향”
하지만 조기 인하론도 만만치 않다. 고금리가 계속 이어지면 내수 부진이 심화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0.2%(전 분기 대비)였다. 1분기 1.3% 성장에 따른 기저효과로 역성장한 것이지만 소비와 투자 등 내수 부진이 우려되는 상황이다.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리를 지금 내리더라도 실제 효과는 1년 후에야 본격적으로 나타난다”며 “고금리가 더 이어질 경우 내수가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석 교수는 “물가 안정을 보면 한은이 8월 금리를 내려도 된다”고 강조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