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 많이 가는 캐나다 밴프에서 조금만 눈을 돌려도 캐나다에는 경이로운 자연경관과 이국적 풍경으로 한 번 꼭 가보고 싶은 지역이 정말 많다. 캐나다 동북부, 애틀란틱 캐나다 지역에 있는 노바스코샤주 핼리팩스도 그런 곳 중 하나다.
애틀랜틱 캐나다는 대서양을 마주하고 있는 여러 주를 일컫는 말로 뉴브런즈윅과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 뉴펀들랜드 래브라도, 노바스코샤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번 캐나다 여행의 목적지는 노바스코샤주의 핼리팩스. 토론토 공항에서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3시간 30분 남짓을 더 가야 한다. 한국에서 직항 항공편은 아직 없다. 물론 여행이라는 전제가 깔리면 공항을 경유하는 일도 모험이고 낯선 경험이라 그마저도 즐겁고 색다르다. 호젓한 캐나다 동북부 여행이라니. 토론토 공항에서 치아바타로 간단히 한 끼를 때우고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도 지루하지 않다.
핼리팩스는 캐나다 동부 대서양 연안의 노바스코샤주에 있다. 노바스코샤라는 이름은 '새로운 스코틀랜드'라는 뜻. 지금도 스코틀랜드계 사람이 거의 30% 가까이 산다고 했다. 15세기 프랑스 지배령이었으나 나중에 이 땅에 발을 디딘 영국과 영역 다툼이 생기며 전쟁의 상흔이 남은 유적지도 다수다. 이후 두 나라 문화는 자연스럽게 섞여 지금은 가게 간판도 사람들의 언어도 영어와 프랑스어를 같이 쓴다.
그 이전에는 원주민이던 미크맥족(Mi'kmaq) 족 거주지였다는데 그들의 문화 역시 지역민들의 존중을 받으며 건재하게 이어지고 있다. 수천 년 넘는 시간 동안 이 지역을 터전으로 살아왔던 미크맥족 문화는 케지마쿠지크 국립공원이나 핼리팩스의 노바스코샤 박물관에서 자세히 알 수 있다.
핼리팩스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거창하지 않다. 해안가를 따라 산책하거나 조용한 등대 마을을 거닐고 잘 조성된 정원을 방문하는 것 정도. 하지만 해안가의 풍경은 평화롭고 곳곳의 작은 상점은 아기자기 소박한 멋을 풍겨 그곳에 머무는 며칠이 그 어떤 휴양지보다 마음에 여유를 찾게 해준다. 저녁에는 트렌디한 레스토랑에서 해산물 풍부한 핼리팩스의 음식을 맛보고 특색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찾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다.
항구도시의 매력, 활기차게 때로는 느긋하게
핼리팩스 공항에서 다운타운까지는 차로 20~30분가량 걸린다. 미리 렌트를 신청해 놓으면 공항 픽업 장소에서 바로 찾을 수 있다. 공항이 복잡하지 않아 헤맬 염려도 없다.사람들이 핼리팩스 시내에 가면 제일 먼저 들려보라 권하는 곳이 시타델 국립사적지다. 18세기 중반 영국군이 건설한 요새로 현재는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매일 정오에 대포 발사 행사가 열리는데 이 풍경이 또 볼거리다. 견학 투어 프로그램도 있어 신청하면 핼리팩스 역사 설명과 함께 사적지 곳곳을 둘러보는 것도 가능하다.
이른 아침의 시타델은 느릿느릿 산책하기 좋다. 낮은 구릉 같은 형태의 길로 조깅하거나 벤치에 앉아 사색을 즐기는 사람이 띄엄띄엄 보인다. 정상에서는 멀리 항구도 눈에 들어온다. 잘 정돈된 도시는 깨끗하고 마주치는 사람들은 낯선 이방인에게도 스스럼없이 눈인사를 건넨다. 캐나다 사람들은 본인들 스스로가 "세상에 이렇게 친절한 나라도 없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친절하다.
현지인처럼 시타델 산책로 한 쪽에 한참을 앉아 커피 한잔 마시는 아침의 여유를 누리고 구릉을 따라 천천히 해안가 쪽으로 내려가는 사이 조깅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낮시간 워터프런트는 산책과 쇼핑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워터프런트 보드워크를 따라 걷다 보면 길거리 공연이나 동네 상점이 군데군데 있어 구경하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캐나다 현지 예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노바스코샤 아트 갤러리'도 가까이 있다.
워터프런트 옆 푸드트럭에서 해산물 샌드위치 정도 되는 랍스터 롤로 요기하고 해안가 벤치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동안 눈앞으론 하얀 요트와 관광객들의 팝송 '떼창'이 이어지는 유람선이 지나간다. 벤치에 앉아 사람 구경하는 여유만으로도 이번 여행의 목적은 이미 충분히 달성한 기분이다.
기념품 가게에 들러 5달러(캐나다 달러) 정도 되는 핼리팩스 기념 티셔츠를 하나 사고 근처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러 체리 맛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달지 않고 양도 넉넉하다. 핼리팩스에는 로컬 아이스크림 가게가 많고 제각각 특색도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핼리팩스에서 그 흔한 스타벅스를 한 번도 구경하지 못했다. 대신 캐나다 브랜드인 '팀홀튼'은 자주 눈에 띈다. 한국에서 한 집 건너 하나이던 편의점도 없다. 길거리 상점 모두 로컬 브랜드라 기웃거리며 걷기만 해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캐나다를 알아 나가는 방법, 등대마을과 캐나다 이민 박물관
핼리팩스의 자연경관은 도시의 또 다른 자랑거리다. 그중에서도 페기스 코브는 꼭 가봐야 한다. 바위 위에 세워진 아름다운 등대와 거친 해안선의 조화가 인상적이다. 대서양의 파도가 만들어내는 장관은 한참을 넋 놓고 바라봐도 질리지 않는다. 60여 가구만 사는 작은 마을은 캐나다 사람들도 즐겨 찾는 관광지라 식당과 기념품숍도 많다. 핼리팩스 시내에서 차로 45분가량 이동하는데 바로 앞에 달리는 차도 보이지 않던 안개를 뚫고 서서히 드러나는 마을의 아담한 주택과 작은 항구가 그림 같은 풍경을 마주하면 마치 다른 세상으로 들어간 것 같은 신비함마저 감돈다.
등대를 지탱하는 기괴한 바위 위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기념품 숍에서 작은 공예품이나 타탄 무늬 랍스터 인형을 둘러보는데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다음 행선지는 캐나다의 문화를 속내까지 가장 잘 알 수 있는 캐나다 이민 박물관이다. 1928년부터 1971년까지 캐나다로 들어온 100만 명 이상 이민자들이 입국한 핼리팩스의 피어21(Pier 21) 에 자리를 잡고 있는 박물관은 캐나다가 어떻게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며 살게 됐는지 이해를 돕는 곳이다.
박물관 투어를 돕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캐나다 이민 역사를 들여다보는 시간은 새로웠다. 박물관에는 당시 이민자들이 가방에 넣어온 수많은 가재도구며 살림 하나까지 잘 복원해 전시하고 있었다. 왜 도대체 이 먼 길을 떠나오면서 집에서 쓰던 그릇 하나까지 챙겨오는지를 이해해보려는 마음과 무슨 사연으로지구 반 바퀴를 돌아 길고 긴 항해의 고통을 견디며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서는지 짐작해보려는 의구심을 품고 전시장 곳곳을 둘러봤다.
박물관은 이민자들이 캐나다에 와서 느꼈을 생소함과 감동도 한 쪽 전시관에 일일이 기록해 놓았다. 한 일본인 이민자는 캐나다에 주거지를 마련하고 낯선 문화에 두려워하고 있을 때 가장 큰 힘이 된 것이 캐나다 국기였다는 일화를 적어놓았다.
"집 앞에 캐나다 국기가 걸려 있다는 것은 정부가 새로 정착한 우리 가족을 보호한다는 의미였다."
일본인 이민자의 당시 심정을 적은 글에서 캐나다의 서로에게 열린 마음이 읽혔다. 더 먼 과거 프랑스와 영국으로부터 멀리 떠나와 그들 스스로가 새로운 땅에 정착하며 겪었을 어려움을 알고 있기에 나오는 배려는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캐나다는 세계 난민들에게도 손을 뻗는다. 그들을 돕기 위해 초콜릿을 만들어 기부하는 단체도 있다. 1층 기념품 가게에서 난민을 돕는 단체가 만든 초콜릿을 집어 들었다. 누구에게든 보탬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여유와 온화함, 나 아닌 타인에게도 마음을 열 수 있는 포용력이 캐나다 이민 역사를 알아나가는 시간 동안 저절로 자라나 있었다.
이선정 한국경제 매거진 기자 sj_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