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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면 죽는 병인 줄 알았는데"…7번째 완치 사례 보고됐다 [건강!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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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면 죽는 병'.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증에 대한 대표적 편견이다. 에이즈로 세상을 떠난 그룹 퀸의 리드보컬 프레디 머큐리가 HIV에 감염되던 1980년대만 해도 이 질환은 극복 불가능한 병이었다. 하지만 의학기술이 발전해 이젠 평생 약을 먹으면서 만성질환처럼 관리하는 시대가 됐다.

최근 HIV 치료에 또다른 전환점이 될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독일 베를린에서 세포 이식 치료를 받은 HIV 환자가 완치하면서다. 에이즈 증상이 1981년 처음 보고된 뒤 40여년 간 완치 사례는 이 환자를 포함해 일곱명 뿐이다.
3900만명 중 일곱번째 완치 사례 보고
27일 의료계에 따르면 독일 베를린대 부속 샤리테병원 연구팀은 지난 24일 뮌헨에서 열린 국제에이즈컨퍼런스를 통해 HIV 완치 사례를 보고했다. 세계 HIV 감염자 3900만여명 중 완치단계로 기록된 일곱번째 환자다.

'베를린 환자'로 보고된 60세 환자는 2009년 HIV 진단을 받았다. 2015년 이 환자가 급성 골수성 백혈병(AML)까지 진단 받자 의료진은 혈액을 만드는 줄기세포인 조혈모세포 이식을 결정했다.

HIV는 면역세포 표면에 있는 특정 수용체(CCR5)를 활용해 침투한다. 이렇게 많은 면역세포를 감염시켜 제 기능을 못하도록 한다.

HIV가 활용하는 CCR에 델타-32 결손 돌연변이가 있으면 HIV는 세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세포에 HIV 유전자를 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HIV 감염에 대해서도 면역이 생긴다. CCR 델타-32 돌연변이를 한쌍 보유한 기증자의 조혈모세포를 환자에게 이식하면 암과 HIV를 함께 치료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방식의 첫 완치 사례가 의학계에 정식으로 보고된 것은 2009년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을 통해서다.

'첫 베를린 환자'로 기록된 티모시 레이 브라운은 1995년 HIV 감염 후 2006년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이듬해 CCR 델타-32 돌연변이를 가진 기증자의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았다. 이후 HIV 치료제인 항레트로바이러스제도 끊었지만 HIV는 몸 속에서 사라졌다.

브라운은 2020년 백혈병이 재발해 세상을 떠났지만 첫 HIV 완치 환자로 기록됐다. 이후 영국, 미국 등에서 HIV 감염 후 백혈병이 생긴 환자들에게 비슷한 치료가 시행됐다.
돌연변이 '한쌍' 아닌 '하나'만 이식
이번에 보고된 일곱번째 완치자는 기존 환자들과는 달랐다는 게 샤리테병원 연구진의 설명이다.

기존 환자 중 5명은 CCR 델타-32 돌연변이를 한 쌍 가진 기증자의 조혈모세포를 이식 받았다. 여섯번째 환자인 '제네바 환자'는 CCR 델타-32 돌연변이가 없는 기증자의 조혈모세포를 이식 받았지만 추적기간이 20개월에 불과해 아직 HIV 완치 판정을 내리기엔 부족하다는 평가다.

일곱번째 환자는 2015년 CCR 델타-32 돌연변이를 하나만 보유한 기증자의 세포를 이식받았다. CCR 델타-32 돌연변이를 한쌍 가진 기증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 환자는 원래 CCR 델타-32 돌연변이를 하나 보유하고 있었다. 부모 중 한명에게만 CCR 델타-32 돌연변이를 물려받았다는 의미다. 환자는 2018년 HIV 약을 끊었지만 지금까지 HIV는 재발하지 않았다.

HIV에 대한 면역은 CCR 델타-32 돌연변이를 한쌍 보유할 때만 생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환자에게 조혈모세포를 기증한 사람은 물론 환자도 HIV에 대한 면역이 없었다는 의미다.

크리스티안 게이블러 베를린대 샤리테병원 교수는 "그동안 HIV 면역이 없는 기증자 세포를 이식했을 땐 몇달 뒤 HIV가 다시 활성화됐다"며 "일곱번째 환자는 기증자의 세포가 면역체계를 대체해 HIV가 숨은 곳을 모두 파괴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유전자 가위로 CCR 잘라내는 연구도
일곱번째 완치자가 어떻게 HIV에 대한 면역을 얻었는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는 게 연구진들의 설명이다. 게이블러 교수는 "이번 환자는 이식 30일 안에 기증자의 면역체계가 환자의 면역체계를 대체했다"며 "이렇게 빠른 속도가 영향을 줬을 수 있다"고 했다.

항레트로바이러스제를 투여하면 몸 속 HIV 숫자가 크게 줄어든다. 조혈모세포 이식을 위해선 환자의 몸 속 면역세포를 없앤 뒤 기증자의 세포를 넣어준다. 이 때 새로 들어간 기증자 세포가 남아있는 환자 세포를 적군으로 인식해 HIV까지 함께 죽였을 수 있다고 의학계에선 설명했다.

일곱번째 환자가 원래 CCR 델타-32 돌연변이를 하나 가지고 있었던 게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환자가 가진 CCR 델타-32 돌연변이에, 기증자의 CCR 델타-32 돌연변이까지 더해져 HIV가 세포 안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추가 장벽을 쌓았다는 것이다.

유럽인 중 CCR 델타-32 돌연변이를 한쌍 보유한 사람은 1% 정도다. 이를 하나만 보유한 사람은 16%에 이른다. CCR 델타-32 돌연변이를 하나만 보유한 기증자의 조혈모세포도 효과 있다는 게 밝혀지면 이식이 더 활발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다만 건강한 기증자의 조혈모세포를 HIV 환자에게 이식하는 치료는 상당히 부담이 크다. 시술 전 환자 몸 속 면역세포를 모두 없애야 하기 때문이다. HIV 감염 후 백혈병이 생긴 환자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시행하는 이유다.

이 때문에 최근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등을 활용해 HIV 환자의 몸 속 CCR 유전자를 잘라내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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