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올해의 자동차’로 선정된다는 건 영화배우가 오스카상 남녀주연상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 전 세계 29개국에서 선발된 자동차 전문기자 100명이 매년 쏟아져 나오는 수백, 수천 개 차량의 디자인, 성능, 가격, 기술력 등을 종합 평가한 뒤 MVP로 선정한 딱 한 개 차량에만 수여하기 때문이다.
올해 이 상을 받은 차는 기아의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EV9이었다. 전문가들이 인정한 기아의 기술력과 디자인 실력. 여기에 시사주간지 타임이 인정한 ‘혁신성’까지. 기아가 지난 2분기에 글로벌 자동차 업체 중 가장 높은 영업이익률을 올릴 수 있었던 배경이다.
○고수익 SUV·하이브리드 강자
기아가 올 2분기 매출이 늘어난 건 차를 더 많이 팔아서가 아니다. 기아의 2분기 판매량은 79만5183대(국내 13만8150대, 해외 65만7033대)로 작년 2분기보다 1.6% 감소했다. 그런데도 매출은 27조5679억원으로 5.0% 늘었고, 영업이익은 3조6437억원으로 7.1% 증가했다.덜 팔고도 매출과 영업이익이 늘었다는 건 그만큼 비싸게 팔았다는 걸 의미한다. 주인공은 친환경차(전기차·하이브리드카)와 SUV. 친환경차 비중은 올해 2분기 21.4%에 달했다. 글로벌 전기차 둔화에도 친환경차를 전년 대비 8.3% 늘어난 16만2000대나 팔았다. 전기차는 전년 동기보다 21.8% 증가한 5만4000대, 하이브리드카는 같은 기간 7.5% 늘어난 8만9000대가 팔렸다. 기아의 하이브리드카 판매 비중은 14.3%(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포함)에 이른다. 하이브리드카의 수익성은 전기차를 능가한다.
기아의 성장을 이끈 또 다른 키워드는 SUV를 포함한 레저용 차량(RV)이다. 기아의 RV 판매 비중은 7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아가 스포티지, 쏘렌토, 카니발 등 RV에 하이브리드를 적용하는 것도 높은 수익성의 비결로 꼽힌다.
○북미 등 선진국 매출 비중 65% 넘어
두 번째는 디자인이다. 2005년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사진)이 기아 사장으로 취임한 뒤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꼽히던 피터 슈라이어 폭스바겐 디자인총괄을 영입하면서 시작한 ‘디자인 경영’이 궤도에 오른 덕분이다. 기아는 패밀리룩인 타이거노즈(호랑이코)를 완성하는 등 디자인 혁신을 거듭하며 최근 몇 년간 세계 주요 디자인상을 휩쓸고 있다.세 번째는 원가 개선이다. 단순히 부품 단가를 낮추는 게 아니라 상품 기획 단계부터 목표 원가를 정해 설계하는 게 핵심이다. 업계에서는 신사업에 투자하는 다른 자동차업체와 달리 기아가 자동차에만 집중하는 것도 수익성 확대에 도움이 됐다고 보고 있다. 기아는 부품과 모듈을 밖에서 만들어서 가져오기 때문에 신규 공장을 지을 때도 투자금을 최소화할 수 있는 구조다. 이런 전략이 수년간 축적돼 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강달러 등 환율 효과도 기아 실적에 큰 도움이 됐다. 기아 2분기 매출원가율은 매출 확대와 재료비 감소로 전년 동기보다 1.0%포인트 개선된 75.9%로,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비싼 차가 잘 팔리는 북미와 유럽에서 질주하는 것도 수익성 개선을 이끌고 있다. 기아 매출에서 북미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44.3%, 유럽은 21.6%에 달한다. 기아 관계자는 “미국 등 선진 시장에서 수익성 높은 차를 많이 판 데다 원자재값 하락과 달러 강세가 더해지면서 수익성이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판매량이 둔화하는 건 숙제다. 2022년 5.2%이던 기아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중국 제외)은 올 상반기 4.8%로 떨어졌다. 주우정 기아 재경본부장(부사장)은 이날 콘퍼런스콜에서 “전기차 캐즘을 만회하기 위해서 무리하지 않고 내연기관차, 하이브리드카 등 대체 차량을 통해 이를 채워갈 것”이라고 말했다.
신정은/김진원 기자 newye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