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전 학전 대표가 영면에 들었다. 24일 오전 8시 고인의 빈소가 마련됐던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식이 엄수됐다.
발인을 마친 고인과 유족은 장지로 가기 전 서울 대학로 '아르코꿈밭극장'을 들렀다. 김 전 대표가 1991년 세운 후 지난 3월 폐관하기 전까지 33년간 일궈온 극장 '학전'이 있던 자리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아르코꿈밭극장 앞은 김 전 대표에게 작별 인사를 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르코꿈밭극장을 운영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정병국 위원장을 비롯해 설경구, 장현성, 황정민, 이황의, 최덕문, 방은진, 배성우, 박학기, 박승화(유리상자), 유홍준 교수 등 문화예술계 선후배들이 모여 그의 마지막 길을 눈물로 배웅했다. 직접 친분은 없어도 그를 추억하며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시민들의 모습도 보였다.
공식적인 추모 공간은 마련되지 않았지만, 극장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김 대표를 향한 그리움을 달래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었다. 극장 앞 작은 공터와 화단에는 김 대표에게 바치는 꽃다발이 줄지어 놓여있었다. 김 대표가 생전 즐겨 마셨다는 맥주를 대접하고 싶은 마음에 놓인 맥주 캔과 막걸리 병도 눈에 띄었다.
운구 차량이 도착하자 김 전 대표와 추억을 함께한 선후배들은 오열하기 시작했다. 김 대표의 유족은 고인의 영정사진을 들고 극장 내부와 앞마당을 돌며 김 전 대표가 30년간 일군 극장에 짧은 작별 인사를 마쳤다. 고인의 선후배들이 울먹이며 부르는 김민기의 대표곡 <아침이슬>과 “사랑합니다, 선배님!”을 외치는 목소리가 대학로 골목을 울렸다.
운구 차량이 떠난 후 빈자리는 고인의 음악으로 채워졌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라이브 밴드에서 색소포니스트로 활동했던 이인권이 김민기의 곡 <아름다운 사람>을 연주하자 조문객들은 참았던 눈물을 또 한 번 터트렸다.
고인이 떠난 뒤에도 조문객들은 아쉬운 마음에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서로를 부둥켜 안고 눈물을 훔치며 위로하며 한동안 극장 앞을 지켰다. 한 조문객은 학전이 아르코꿈밭극장으로 재개관하며 걸린 새로운 간판을 보고 "이제 학전이라는 이름도 붙어있지 않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자리를 뜨지 못하는 선후배들 앞에 선 배우 장현성은 "마지막 가시는 길은 가족장으로 하기로 결정했다"며 "여기서 선생님을 보내드리겠습니다"며 울음을 참으며 말했다.
1951년생인 고인은 서울대 미대 재학 시절 고교 동창인 김영세 이노디자인 대표와 함께 포크 듀오를 결성해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아침이슬>, <상록수>, <봉우리> 등의 곡을 발표하며 1970년대와 1980년대 청년 문화를 이끈 인물로 평가받았다. 1990년대에는 극단 ‘학전’을 창단해 학전블루(2024년 폐관)와 학전그린(2013년 폐관) 소극장을 운영했다. 연극, 대중음악, 클래식, 국악, 무용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소극장 문화를 일궜다.
김 전 대표는 위암이 간으로 전이돼 항암치료를 받던 중 폐렴으로 지난 21일 별세했다. 향년 73세. 고인은 천안공원묘원에서 영면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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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범준 기자/연합뉴스/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