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OCI홀딩스는 대체 공장을 찾을 때 전기료부터 챙겼다. OCI 말레이시아 공장이 자리잡은 사라왁주의 전기료는 밤에는 ㎾h당 41.2원, 낮에는 65.2원이다. 평균으로 따지면 한국(㎾h당 153.5원)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산업계 관계자는 “낮은 전기료에 더해 2조원에 달하는 법인세 감면 혜택과 낮은 인건비까지 감안하면 OCI홀딩스의 말레이시아 생산 원가는 한국의 절반도 안 될 것”이라며 “시간이 갈수록 한국에서 사업할 이유가 없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보다도 비싼 전기료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2021년 처음 미국보다 높아진 뒤 점점 더 격차를 벌리고 있다. 22일 미국에너지청(EIA)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전역의 연평균 전기료는 ㎾h당 112원으로 한국(153.5원)보다 37.7% 낮다. 미국 전기료는 2020년 ㎾h당 94.7원에서 지난해 112원으로 18.3% 오르는 데 그쳤지만 한국은 94원에서 153.5원으로 63.3% 상승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한국 기업이 대거 진출한 텍사스주(㎾h당 77.6원)와 조지아주(83.4원)는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낮은 전기료는 직접 보조금과 함께 미국이 해외 기업을 유치할 때 쓰는 핵심 카드가 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전기를 많이 쓰는 반도체 공장을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짓기로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배터리 업체들이 미국 조지아주에 터를 잡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태양광업체인 한화큐셀은 일부 한국 공장의 가동을 중단하고 조지아주에 새 둥지를 틀었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기업들이 한국을 떠나는 이유로 과도한 규제와 높은 법인세율 등이 주로 꼽혔지만, 요즘엔 전기료를 얘기하는 기업인이 늘고 있다”고 했다.
전기료가 기업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요인이 되자 콧대 높던 유럽도 전기료 인하에 나섰다. 독일이 대표적이다. 치솟는 전기료(㎾h 370.3원)에 제조업체들이 떠나자 독일 정부는 지난해 11월 전기료에 부과되는 세금을 97% 감면해주기로 했다. 독일 정치권은 도매 전력 가격이 ㎾h당 90.8원(6유로센트)을 넘을 경우 그 차액을 보조금으로 지원하는 요금제도 논의 중이다.
전기료로 기업 유치하는 동남아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낮은 전기료와 저렴한 인건비를 무기로 기업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 유혹에 생산원가에서 전기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30% 이상인 기업이 줄줄이 엮어들어가고 있다. 한국의 절반 이하인 ㎾h당 60~70원을 받는 말레이시아 사라왁주가 그런 곳이다. 말레이시아의 평균 산업용 전기료는 ㎾h당 100원 안팎이지만, 주정부 재량으로 추가로 낮춰준다.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국내 제조기업 ‘단골 진출국’의 산업용 전기료도 ㎾h당 100원 안팎이다. 이들 역시 지방에선 60~70원대로 전기료를 낮춰준다. 그 혜택을 누리기 위해 배터리용 동박을 제조하는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와 SK넥실리스 등이 진출했다. 이로 인해 해외에 6개나 있는 국내 기업의 동박공장은 정작 한국엔 두 곳뿐이다.
여러 업종에서 한국과 시장점유율 경쟁을 벌이는 중국 기업들은 자국의 값싼 전기료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중국의 평균 전기료는 116.6원이지만, 햇빛 좋고 물 좋은 신장위구르자치구와 내몽골, 윈난성 등지의 전기료는 60~70원에 불과하다.
국내에서 공장을 유지하고 있는 제조업체들의 전기료 부담은 매년 늘고 있다. 2020~2023년 3년 새 반도체 분야 전기료 부담은 5조7100억원에서 9조3000억원으로 3조5900억원 늘었다. 삼성전자 한 곳만 1조6800억원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석유화학 업종은 3년간 2조4400억원, 철강 등 1차 금속 업종은 2조900억원, 자동차 업종은 1조1300억원 늘었다.
성상훈/김우섭/김형규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