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 투자 트렌드
“펀드의 진가는 위기 때 드러난다.” 자산운용업계에서 흔히 하는 말이다. 고난도 장세라는 시험대를 통해 ‘선수(펀드매니저)’와 ‘물건(좋은 상품)’을 가려낼 수 있어서다. 너도나도 주가가 오를 땐 드러나지 않던 실력이 하락장 혹은 롤러코스터 시장 상황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물이 빠진 후에야 감춰진 바닥의 실체가 훤히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 역시 마찬가지다. 전쟁에 대한 공포, 고금리 장기화로 ESG 투자가 주춤하더니 ‘트럼프 대세론’에 한껏 쪼그라든 모양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진짜 ‘옥석’이 가려질 시점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악재투성이던 ESG 투자에서 빛을 본 고수의 비결은 무엇일까. 꿋꿋하게 수익률을 지키고 있는 투자상품을 살펴봤다.
큰 흐름은 ‘전기’로 통한다
올 들어 코스피지수는 5.28%(지난 7월 19일 기준) 상승했다. 코스피 대장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반도체 호재로 지수를 끌어올렸지만,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불확실성에 휘말린 증시는 고개를 떨궜다. 사상 최고가 행진을 이어온 미국 스탠더드앤푸어스(S&P) 500 지수는 같은 기간 16.24% 올랐다. 지수를 이끌던 기술주에 이어 경기민감주까지 상승세에 올라탄 덕이다.
국내에서 판매 중인 ESG 펀드의 연초 이후 평균 수익률은 10.77%다. 사상 최고가로 치솟은 미국 증시와 국내 증시 수익률 중간 즈음 자리를 잡았다. 이 중 도드라진 성과를 낸 상품이 있다. 신한SOL미국S&P500ESG 상장지수펀드(ETF)와 한화그린히어로, 미래에셋글로벌혁신기업ESG 펀드가 대표적이다.
신한SOL미국S&P500ESG ETF는 올해만 27.67% 수익을 냈다. 132개 ESG 펀드 중 수익률이 가장 높다. 2년 수익률도 58.44%나 된다. 신한SOL미국S&P500ESG ETF는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돼 거래되는 시가총액 상위 500개 종목인 S&P500 인덱스 중 ESG 스코어링을 반영해 종목을 선별한 S&P500ESG 지수를 추종한다. 투자 종목은 IT 비중(35.92%)이 가장 높다.
이어 금융(13.20%), 헬스케어(12.26%) 등이 포함됐다. 종목별로는 마이크로소프트(MS, 10.08%), 엔비디아(9.32%), 애플(9.22) 등이 상위권에 포진해 있다. 비만 치료제 수혜주로 꼽히는 일라이 릴리를 비롯해 JP모건 체이스 등도 높은 투자 비중을 차지한다.
신한자산운용은 “미국 주식(S&P500) 투자에 비타민(ESG)을 보강해 건강하게 장기투자하는 상품”이라고 소개했다. 미국 대표 지수인 S&P500에 ESG를 결합한 투자 방식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한화그린히어로펀드는 지수를 추종하는 SOL미국S&P500ESG ETF를 제외하고 펀드 중 올해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전 세계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특징인 상품이다. 한동안 수익률이 주춤했지만, 반등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한화자산운용 관계자는 “그린히어로 펀드를 관통하는 큰 흐름은 전기”라며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전기로 바꾸는 에너지전환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강조했다. 전기차, 2차전지 관련주들이 성장성의 한계에 봉착한 듯 수익률이 주춤한 상황에서 “일시적 이유를 제외하면 성장에 흔들림은 없다”고도 했다.
이는 인공지능(AI)이 전기 수요 증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다. 테슬라를 비롯해 미국의 태양광 패널 제조업체 퍼스트 솔라, ESS업체 플루언스 에너지, 반도체 검사장비 제조사 테크윙, 그리고 국내 상장사인 HD현대일렉트릭이 포트폴리오 상단을 채우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래에셋글로벌혁신기업ESG의 경우 SOL미국S&P500ESG ETF와 마찬가지로 미국에 상장된 IT, 헬스케어 종목에 집중돼 있다. 엔비디아, MS, 알파벳, 아마존, 일라이 릴리 등이 투자 상위 종목이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미국을 대표하는 주요 종목을 ESG 잣대로 스크리닝한 종목이 모인 상품이기에 위기에 강한 모습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美 투자, ‘이것’ 주의해라”
세계경제를 뒤흔드는 ‘트럼프 변수’는 여전히 고민거리다. 트럼프 정부는 과거 약달러와 저금리를 선호했다.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도 변수 중 하나다.
특히 반(反)ESG 정책 노선도 보다 확실해졌다. 실제 트럼프 후보가 내건 공약이나 발언 중 ▲화석연료 생산 확대 ▲전기차 의무화 및 자동차 배출량 감축 정책 폐지 ▲파리기후변화협약 재탈퇴 시사 ▲금융권 투자 ESG 규제 요건 폐지 ▲바이든 정부의 IRA 폐지 시사 등은 ESG 투자자 입장에서 우려되는 부분이다. 이예나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주요 국가를 중심으로 정권교체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정책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 유럽연합(EU)에서 우파가 약진하며 친환경 정책에 대한 속도 조절이 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홍준혁 삼성증권 연구원은 “극우파인 ‘Patriots for Europe’이 EU 의회의 세 번째 거대 정당으로 자리하는 등 우파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며 “기존 기후 정책에 대한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되나, 향후 친환경 정책은 속도 조절이 있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급진적 변화가 일어나진 않겠지만 ‘대비’는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화그린히어로펀드를 운영하고 있는 한화자산운용 측은 “트럼프가 당선되더라도 바이든 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폐기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거대한 물결이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우려도 상당하다. 이재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트럼프의 보호무역 강화를 피하기 위해서는 미국 내 직접투자가 많은 산업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면서도 “IRA 폐기를 언급하고 있어 보조금을 지원받아 미국 기업과 경쟁하던 친환경 소재(반도체와 2차전지 등), 운송, 전기차와 관련한 해외 기업은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재원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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