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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7억짜리?" 외국인도 '절레절레'…강남 길거리 부스의 정체 [혈세 누수 탐지기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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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학생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스트레스가 많은 것 같긴 합니다."

강남구가 지난해 4월 대치동 학원가 일대에 개관한 '스트레스 프리존'을 지나던 미국인 관광객 마이클(34)은 의아하다는 듯 이곳을 구경했습니다. 그는 만들어진 목적을 듣더니 "공감 간다. 흥미롭고, 슬프면서, 돈 낭비 같다"면서도 7억짜리라는 설명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학생들의 스트레스를 줄여주기 위해 5제곱미터 크기로 이곳에 만든 부스가 5개. 이곳과 유아용 공간 등 기타 휴게시설까지 약 7억원의 세금이 투입됐습니다. 운동기구가 있는 '피트니스존', 소리를 내질러 데시벨을 측정할 수 있는 '사운드테라피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리프레시존' 등 테마도 제각각입니다. 지난 6월 강남구는 아트 전시회사 '갤러리 오'와 업무협약을 맺고 이곳에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방과 후 아지트'를 진행했습니다. 강남구는 이 전시를 위해 내부 체험용 비품 마련 목적으로 연간 500만원의 예산을 집행했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곳은 "혈세 낭비", "탁상행정"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곳입니다. 1년 반 동안 분위기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한경 혈세 누수 탐지기(혈누탐)팀이 현장으로 달려가 봤습니다.
학생들 위한 공간인데…
학생들은 잘 안 보이는 곳
강남구 스트레스 프리존의 운영시간은 오전 10시부터 밤 11시까지입니다. 본래는 12시에 시작하고 인증받은 학생만 들어갈 수 있었으나,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운영시간도 앞당기고 출입증을 앞에 비치해 누구나 쉽게 들어갈 수 있는 형식으로 바뀌었습니다.


16일 '혈누탐'팀이 찾은 이곳은 썰렁했습니다. 평상시에서도 대체로 파리만 날린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였습니다. 관계자 A씨는 "초반이라 아직 동네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다"고 표현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5개 부스는 오전 10시부터 천장에 설치된 시스템 에어컨이 18~20도 수준으로 '풀가동'됐습니다.

현장을 지키던 '혈누탐'팀 앞에 오후 1시경 중등 자녀를 둔 학부모 4명이 한 부스를 찾았습니다. 이들은 손에 1000원대 저가형 커피를 들고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이곳에서 담소를 나눴습니다. 일주일에 1~2번 아이들의 하교를 기다리면서 이곳을 찾는다는 이들은 스스로 '단골'이라 표현했습니다.


이 중 40대 김모씨는 "아무나 출입할 수 있게 해주면서 학부모도 사용할 수 있어 좋아요"라며 "아이들 학교 시간에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데 아깝지 않나요. 돌아다녀 봐도 아는 사람 거의 없어요"라고 설명했습니다. 원칙적으로 학생들 스트레스 관리를 위해 만들어진 곳인데, '학부모' 스트레스 프리존으로 사용되는 셈입니다.

김씨는 "세금 7억원을 생각하면…이런 책상 있는 스트레스 프리존은 좋은데, 맞은편 피트니스 존, 사운드테라피존(소리 지르는 곳)은 아이들에게도 유명무실한 느낌이에요"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여기) 너무 많이 알려지면 우리 못 쓰는 거 아냐?"라고 우려 섞인 농담도 건넸습니다.

오후 6시경 저녁 시간이 되자 학생들이 학원에서 쏟아져 나왔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대체로 친구들과 인근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학원 앞에서 친구들과 서서 잡담하는 게 소화에도 좋고 더 편하다는 것입니다. 한 고등학생 박모군(17)은 "학원 앞에 있어서 존재는 알았지만, 갈 일이 없어요"라며 "쓰더라도 부모님 기다릴 때나, 비나 눈 피할 때 써요"라고 말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정모양도 "하교 때나 학원 마치고 10~11시에 부모님 기다릴때 잠깐 써요"라고 설명했습니다. 밤 8시에 이곳에서 만난 백모군(9)도 "학원 끝나고 엄마 기다리려고 앉아있어요. 요즘 너무 더운데 여기는 남극같이 시원해서 너무 좋아요"라고 밝혔습니다.

이곳 학생들은 너무나 예의가 발랐지만, 취재에 응해주기에는 사회인인 기자보다도 바빠 보였습니다. 걸어 다니면서 단어책을 읽는 친구도 종종 보였는데, '이런 학생들이 스트레스 프리존에 들어갈 시간이 언제 있을까'라는 의문이 남는 하루였습니다.
강남구는 "이용률 증가" 기대감

결국 이렇게 '학부모 사랑방'과 '학생들 차량 대기용'으로 전락한 강남구의 스트레스 프리존. 지표만 보면 작년보다 올해가 확실히 이용이 많아진 것처럼 보입니다. 강남구에 따르면 지난해 5월까지만 해도 1부스당 일평균 이용자 수가 10~22명 수준이었는데, 최근에는 이 수치가 80명 수준으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앞선 시민들의 반응과 출입 가능 대상이 넓어진 점을 미루어볼 때, 진짜 '스트레스 프리존' 취지에 걸맞게 이곳을 찾는 학생들은 극소수에 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만 이곳에서 만난 몇몇 시민들은 주말에 이용률이 다소 높아진다고 설명했습니다. 김씨도 "주말에는 이곳 인기가 많은 편이에요. 지난 주말 중학생 아이들이 숙제하는 것을 봤어요. 학원과 학원 사이 빈틈마다 카페에 갈 수도 없는데 취지는 좋은 것 같아요"라고 전했습니다.

강남구는 '혈누탐'팀에 "지속적인 이용률 증가가 예상된다"며 기대감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면서 "현재 운영방식 변경 없이 동일하게 운영 예정"이라면서 "갤러리와 협업하여 연말까지 총 4회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예술 체험 전시 추진 중이며, 회차별 전시 내용에 따라 시설 2~3개소 선정하여 진행하겠다"고 전했습니다.
전문가들 "취지는 좋지만…"

강남구는 시민들의 이용 빈도를 높이기 위해 운영 시간도 앞당겼으나 실제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이 이곳을 찾을만한 시간대는 대체로 학교나 학원 수업이 끝나는 오후 4~7시, 혹은 밤 9~11시 정도입니다. 아침 10시부터 밤 11시까지 13시간 동안 운영되는 점을 생각해보면, 사실상 절반에 가까운 시간은 방치되고 있는 것입니다.

강남 맘카페에서는 스트레스 프리존을 '예술 놀이터'로 탈바꿈하려는 강남구의 시도에 대해 "또 이상한 것 한다", "예술품 좀 들어간다고 학생들이 스트레스 풀겠냐", "차라리 게임 한 판을 더 하는 게 낫겠다", "탁상행정 그 자체" 등 날 선 비판이 나왔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학생들을 위해서라는 수사를 이제는 버리고 학부모와 학생들 모두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구조라 청소년들이 이용을 꺼릴 수 있다"며 "시설물 하단부는 선팅을 더 짙게 처리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프리존 내 무인 자판기나 쓰레기통 등 편의시설을 비치한다면 시설물의 이용률이 높아질 것"이라면서 "특정 시민이 오랫동안 시설물을 점거하지 않게끔 내부에 시간제한을 둘 수 있는 타이머가 있다면 더 많은 사람이 시설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제안했습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청소년 스트레스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시도는 좋지만, 개관 후 1년 3개월이 지난 시점에도 이용률이 활발하지 않다는 건 애초에 시설물을 설치하기 전 잠재적 이용자층에 대한 사전 조사나 면밀한 전문가 자문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의미"라며 "특히 이용층이 정보 접근성이 빠른 청소년인 만큼 이들이 시설에 대해 만족했다면 별다른 홍보 없이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으로 삽시간에 소문이 났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실제 SNS나 유튜브에는 이곳에 대한 비판과 조롱 섞인 글을 찾기는 쉬워도, "잘 만들었다"는 칭찬 글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빅데이터 플랫폼 썸트렌드에 따르면 '스트레스 프리존'에 대한 소셜(인스타·블로그·X) 언급량은 총 54건에 그칠 정도로 관심이 없습니다.

최 교수는 "이 공간을 예술 전시 창구로 활용하고 일반 시민에게도 출입구를 상시 개방해둔 건 이용률을 높이는 방안이 되겠으나 본 취지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용도 변경"이라며 "지자체에서 세금을 집행할 때는 단순히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실질 이용 대상에 대한 수요 파악과 면밀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당부했습니다.

신현보/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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