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가 천만 명이 넘는 인기 먹방 유튜버 쯔양이 최근 전 남자친구이자 전 소속사 대표에게 수년간 착취와 폭행 등을 당했다고 털어놨다. 전 남자친구가 불법촬영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해 유흥업소에서 강제로 일한 적이 있고 방송 수익도 빼앗겼다는 주장이다.
쯔양은 이른바 ‘사이버 레커’들이 이를 약점 잡아 돈을 요구하고 폭로전이 이어지자 이 같은 과거를 직접 고백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이버 레커는 교통사고 현장에 앞다퉈 몰려드는 견인차(레커)처럼, 논란이 되는 이슈가 생겼을 때 재빨리 이에 관한 자극적인 영상을 제작해 수익을 얻는 유튜버를 일컫는 신조어다.
○빠르고 자극적이어야 살아남아
사이버 레커와 관련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걸그룹 아이브의 장원영을 비롯해 연예인들에 대한 악의적 루머가 담긴 영상을 제작한 유튜버 ‘탈덕수용소’는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밀양 성폭행사건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한 ‘나락보관소’는 피해자의 동의 없이 영상을 올려 사적 제재 등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사이버 레커가 갈수록 몸집을 키우고 이들 간 경쟁도 치열해지는 배경엔 알고리즘이 있다. 유튜브 등 플랫폼은 콘텐츠를 추천하는 알고리즘의 구체적인 작동 방식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이용자의 체류시간을 늘리는 것이 주요 목표로 알려졌다. <유튜브, 제국의 탄생>의 저자 마크 버겐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이용자의 동영상 시청 시간을 늘려 유튜브에 머무르는 시간을 극대화하도록 설계됐다”며 “이용자의 전체 시청 시간 중 70% 이상이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용자의 체류시간을 늘리기 위해 화제가 되는 이슈와 관련된 영상을 추천 목록에 띄우는 알고리즘 구조가 사이버 레커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상을 빠르게 올려 이슈를 선점할수록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사이버 레커가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가짜뉴스 영상을 앞다퉈 제작하는 이유다. 연예인 등 유명인의 일탈 행위나 정치인에 관한 자극적인 루머는 이들의 단골 주제다.
지난 2월 한국언론진흥재단 설문조사에서 ‘사이버 레커가 사회적 문제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92%가 ‘그렇다’고 답했다. 사이버 레커가 유명인의 자살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도 응답자의 93.2%가 동의했다.
○크리에이터 수입 천차만별
사이버 레커 등 자극적인 콘텐츠가 유튜브 등 플랫폼에 넘쳐 나는 건 ‘크리에이터 경제’의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크리에이터 경제는 많은 구독자나 팔로어를 거느린 개인 창작자가 자신의 콘텐츠로 수익을 올리는 산업이다. 1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디지털 크리에이터 미디어 산업 실태조사에서 따르면 이 분야 산업 매출은 총 4조1254억원, 종사자는 3만5375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1인 크리에이터가 벌어들이는 수입은 천차만별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1인 크리에이터 상위 1%의 연간 수입은 평균 8억4800만원에 달했다. 하지만 전체 연평균 수입은 2900만원에 불과했다. 특히 하위 50%는 1년에 약 30만원을 버는 것으로 나타났다.
플랫폼이 크리에이터에게 분배하는 광고 수익 비중은 높지 않다. 유튜브는 채널 구독자 1000명, 연간 콘텐츠 시청 4000시간 이상 등 기준을 충족한 크리에이터를 대상으로 광고 수익을 분배한다. 그마저도 수수료 45%를 떼간다. 콘텐츠 제작비와 인건비 등을 고려하면 크리에이터가 실제로 손에 쥐는 수익은 많지 않다. 조회수가 수백만 회에 이르는 영상을 수십 개 갖고 있는 소수의 크리에이터만 이른바 ‘억대 연봉’이 가능한 구조다.
대다수 크리에이터는 구독자를 늘려 협찬과 공동구매, 광고영상 제작 등 방식으로 외부에서 수익을 낸다. 골드만삭스 조사에 따르면 크리에이터 수익 중 유튜브 등 플랫폼에서 배분받는 비중은 7%에 불과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광고 수익(70%)이다.
구독자 117만 명을 둔 7년차 운동 유튜버 ‘제이제이살롱드핏’은 얼마 전 영상을 통해 본인의 유튜브 수입을 공개했다. 조회수에 따른 월 수익은 370만~420만원이었다. 그는 “구독자 100만 명이 넘으면 한 달에 1억원 벌지 않냐고들 하지만 모든 채널이 그렇지는 않다”며 “주요 수입원은 조회수가 아니라 외부 협찬 광고”라고 밝혔다.
제작비는 적은데 구독자 유입과 광고 효과가 높아 가성비 좋은 ‘쇼츠’가 유행하는 건 이 같은 흐름에서다. 수십 분에 달하는 기존 영상을 1~2분 내외 분량으로 조각 편집하거나, 아예 쇼츠용 영상을 전문으로 제작하는 크리에이터도 등장했다. 기성 방송사 채널도 기존 프로그램을 짧게 잘라 쇼츠로 제작하는 추세다. 크리에이터 전문 스타트업 콜랩아시아에 따르면 지난해 시청자 10명 중 7명이 쇼츠로 채널에 유입됐고, 전체 조회수의 88%가 쇼츠에서 발생한 것으로 측정됐다.
[쇼핑도 숏폼으로] 짧고 강렬하게 홀린다.. 순식간에 쇼핑업계 점령한 '숏핑'
네이버 숏클립 매출전년 대비 12배 증가
'300초만 업계 최저가'
롯데홈쇼핑 주문 3배로
한국 스마트폰 사용자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은 유튜브다. 유튜브가 작년 말 카카오톡을 제치고 ‘국민 앱’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숏폼 덕이다. 60초 미만 동영상인 숏폼은 재생 시간이 짧아 몰입도가 높은 게 특징이다. 숏폼이 부상하며 숏폼에 커머스를 연계한 ‘숏핑’(숏폼+쇼핑) 시장도 커지고 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유튜브는 지난달 세계 최초로 한국에 쇼핑 전용 스토어 개설 기능을 추가했다. 유튜브 생태계 안에서 콘텐츠와 연관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유튜브는 특히 쇼츠와 연계한 커머스의 성장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숏폼 플랫폼인 틱톡도 온라인 쇼핑몰 ‘틱톡숍’을 내놨다. 틱톡은 동남아시아와 미국 등에 이어 한국 진출도 검토하고 있다.
동영상 플랫폼들이 숏폼과 커머스를 결합하는 이유는 그만큼 돈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 1인당 숏폼 이용 시간은 월평균 46시간29분이다. 하루에 1시간30분을 숏폼 시청에 쓰는 것이다. 소비자에게 장시간 노출될수록 시청이 소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2022년 9월 숏폼과 커머스를 결합한 서비스인 ‘숏클립’을 내놓은 네이버에 따르면 지난해 숏클립 매출은 전년 대비 1254% 늘어났다. 단일 숏클립에서 많게는 5000만원어치가 팔렸다는 게 네이버 측 설명이다.
숏폼을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곳은 홈쇼핑 업계다. TV 시청 인구가 감소하며 업계 전반이 침체기에 접어든 가운데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숏폼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전략이다. GS샵은 작년 12월 ‘숏픽’ 서비스를 출시했다. TV홈쇼핑, 라이브커머스 등 다른 채널에서 송출한 판매 영상을 1분 안팎 길이로 편집한 영상을 올려 6개월 만에 누적 페이지뷰 1억 회를 넘겼다. 롯데홈쇼핑은 지난 3월 숏폼 타임세일 방송 ‘쇼파르타 300’을 시작했다. 300초 동안 특정 상품을 업계 최저가로 판매하는 콘텐츠로, 여기서 판매한 상품은 일반 방송보다 분당 주문 건수가 세 배 많았다. CJ온스타일은 앱에 숏폼 전용 공간을 따로 마련했고, 현대홈쇼핑은 가격 협상 콘셉트의 숏폼 예능을 선보였다.
숏폼 광고도 늘어나는 추세다. 광고업계 관계자는 “이전에는 TV광고로 쓰는 15초, 30초짜리 광고에 디지털 마케팅용으로 1~3분 분량의 장초수 광고를 묶어 고객사에 제안했다”며 “최근에는 장초수 광고 대신 숏폼 광고를 끼워넣고 있다”고 설명했다.
숏폼 광고는 일반 광고 대비 ‘가성비’가 좋다. 길이가 짧고 영상이 단순해 제작비가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 수준으로 적게 들어간다. 보통 수천만원에서 수십억원이 필요한 일반 광고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적다. 같은 시간 노출할 수 있는 상품 수가 많다는 것도 장점이다.
[팬덤소비] 가격 품질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인스타 공구'의 세계
강력한 팬덤소비에가격 저렴하지도 않고
환불 불가에도 불티
팔로워 수 조작도 빈번
“15~17일 단 3일만 공구합니다. 가격은 개별 문의 주시고, 상품은 열흘 후 일괄 배송합니다.”
인스타그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동구매 ‘공지사항’이다. 공구란 말 그대로 여럿이서 한 상품을 대량 구매하는 것. 당장 인스타그램엔 #공구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265만 개에 달한다. #공구중 46만7000개, #공구예고 18만9000개, #공구마켓 71만 개 등 수십만 개의 글이 검색된다. 인스타와 유튜브 채널을 통한 공구는 화장품과 패션용품에 이어 건강보조식품, 전자제품 등으로 범위가 넓어졌다.
공구는 인플루언서의 ‘라이프 스타일’을 파는 행위로 진화하고 있다. 소비자는 닮고 싶고 전문성을 지닌 이들이 제공하는 제품에 대한 신뢰감과 쉽게 구할 수 없다는 희소성 등에 지갑을 연다.
그런데 소규모 공구는 카드 결제가 애초에 불가능한 경우가 많고, 제품에 문제가 있더라도 교환·환불받기 쉽지 않다. 공구를 진행하는 유명 인플루언서를 다룬 웹툰 제목 ‘팔이피플(82피플)’이라는 말이 수익만을 추구하는 인플루언서를 의미하는 멸칭으로 사용될 정도다.
공구를 활용한 제품 판매가 결코 저렴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18일부터 팔로어가 17만 명인 뷰티유튜버에게 의뢰해 공구를 진행한다는 화장품 업체 A대표는 “수수료를 매출의 30%로 정해 제품 가격을 온라인 쇼핑몰 할인가보다 싸게 책정하긴 어렵다”고 했다. 연예인은 인기도, 팔로어 수에 따라 정해진 금액으로 계약할 때가 많다. 어린이 식품과 주부용 뷰티 제품을 자주 판매하는 팔로어 13만 명의 리포터 겸 방송인은 인스타 제품 게시물 건당 100만원, 공구 진행 시 기본 수수료 300만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영향력을 의미하는 ‘좋아요’와 ‘팔로어’를 돈 주고 사는 행위도 빈번해지고 있다. 인플루언서 마케팅 업체인 B사는 외국인 팔로어 200명에 3500원, 500명에 8000원이라는 광고를 내걸고 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와 영국 경쟁시장청(CMA)은 팔로어 수 등을 조작하면 불법으로 규정해 처벌하고 있지만, 국내에선 감독할 근거가 없다.
이후정 한국소비자원 온라인거래조사팀장은 “인플루언서와의 유대감에 기반한 판매의 경우 소비자가 상품 정보를 제대로 필터링하지 못하고, 전자상거래법에 명시된 소비자 변심 환불 기간(7일)을 적용받지 못할 때도 많다”며 “좋아하는 인플루언서의 공구에 무턱대고 참여하기보다는 꼼꼼히 비교하고 따져보는 게 올바른 소비 태도”라고 말했다.
신연수/양지윤/김대훈/정희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