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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이고 새기고 뿌린다…저마다 신비로운 '칠기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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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예술.’ 옻나무 수액을 기물에 발라 제작한 공예품인 칠기를 일컫는 말이다. 옻나무에서 수액을 채취하고 정제하는 과정만 수개월. 옻칠을 할 때도 칠하고 건조하기를 반복하며 인고의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나전칠기의 제작 과정은 더 길고 고되다. 전복 껍데기나 거북 등 껍데기 등을 오리고 갈아 작게는 1㎜ 미만 조각을 수천~수만 개 만들고, 이를 일일이 붙여 원하는 문양을 이루는 ‘극한 작업’이 필요하다. 하지만 결과물은 이 모든 수고를 잊을 만큼 아름답고 오래간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삼국삼색(三國三色)-동아시아의 칠기’는 나전칠기를 비롯한 다양한 칠기를 만날 수 있는 전시다. 전시장에서는 12~19세기 제작된 한·중·일의 칠기 46점을 통해 각국 칠기 장식의 차이점을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다. 김재홍 국립중앙박물관장은 “2014년 시작해 2년에 한 번씩 열고 있는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중국 국가박물관 공동특별전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붙이고 뿌리고 새기다
세계에서 칠기를 만들고 사용한 지역은 동아시아뿐이다. 한·중·일 세 나라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칠기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칠기를 장식하는 방식은 세 나라가 판이했다. 전인지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이번 전시는 삼국 칠기의 ‘장식 기법’ 차이를 집중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차이의 핵심은 ‘붙이고(한국) 뿌리고(일본) 새겼다(중국)’는 말로 요약된다. 한국 나전칠기는 진줏빛이 영롱한 자개로 꾸몄다. 나전이란 조개 등을 붙여서 장식하는 공예기법이다. 전시장에 나온 고려시대 나전칠기들은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13~14세기 고려시대 제작된 보물 ‘나전 칠 모란·넝쿨무늬 경전 상자’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경전함에 쓰인 나전의 두께는 0.3~0.8㎜, 조각 수는 2만5000여 개에 이른다.

부드러운 형태의 나무에 옻칠을 한 뒤 자개를 0.5㎜ 두께로 오려 국화와 넝쿨무늬를 정교하게 표현한 12세기 작품 ‘나전 대모 칠 국화·넝쿨무늬 합’도 눈길을 끈다. 화장품 용기로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화려한 고려 나전칠기는 중국에서도 세밀가귀(細密可貴·세밀해 귀하다)라는 찬사를 받으며 최고급 사치품으로 취급됐다.



조선시대 나전칠기는 유교 사상의 영향으로 고려시대에 비해 화려함이 덜한 편이다. 상공업이 발달하고 부유층이 등장한 18세기 이후에는 고려시대 못지않게 화려한 작품이 제작됐다. 탁월한 현대적 미감이 돋보이는 19세기~20세기 초 작품 ‘나전 칠 연상’이 대표적이다. 같은 시기 작품인 ‘나전 칠 십장생무늬 이층 농’도 눈길을 끈다. 붉은 옻칠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기증한 유물이다.
중·일 박물관들의 명품 칠기
한·중·일 칠기 중 가장 역사가 깊고 종류가 다양한 건 중국 칠기다. 이번 전시는 수많은 종류의 중국 칠기 중 ‘새기는 방식’으로 만든 유물을 집중 조명했다. 청나라 때 작품인 ‘조칠 산수·인물 무늬 운반 상자’는 겹겹이 옻칠한 뒤 이를 파내 문양을 표현하는 조칠 기법을 사용한 작품이다. 선명하고 아름다운 색채, 산수인물도를 비롯한 정교하고 다양한 무늬들이 돋보인다.



일본의 칠기는 ‘뿌려서’ 만든 작품들이 나왔다. 일본 칠기를 대표하는 기법인 마키에는 옻칠로 무늬를 그리고 굳기 전에 금이나 은 가루 등을 뿌려 칠기 표면에 붙이는 기법이다. 가루를 사용해 마치 회화처럼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하다는 게 장점이다. 15세기 유물인 ‘마키에 칠 연못무늬 경전 상자’가 대표적인 예다. 연꽃과 잎맥의 정교한 표현, 고급스러운 질감이 돋보인다.





이렇게 만들어진 일본 칠기는 서양으로 수출되기도 했다. ‘기독교 성인이 새겨진 수출용 상자’는 16~17세기 포르투갈과 스페인에 수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주문 제작’ 작품이다. 김 관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동아시아 삼국이 서로의 문화를 더 잘 이해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9월 22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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