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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째 수천만원 쓰고도 실패"…명품족 목매는 '에르메스 게임' [안혜원의 명품의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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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째 '에르메스 게임' 중이예요. 대체 이 게임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해외 명품족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종종 이 같은 질문이 올라온다. 게임 참가자들은 대부분 최소 4~5년 이상 이 게임에 시간을 들여왔다고들 한다. 비용도 많이 들어 대부분 수천만원은 썼다고 했다. 그래도 좀처럼 게임에서 이길 수 없어 실망하고 때로는 분노(?)까지 느낀다는 것이다.

“치트키도 공략집도 없어요. 게임 방법도 승리 기준도 아무도 몰라요. 그저 인내심을 갖고 노력할 수 밖에요.” 경험담도 이런 식이다. 대체 무슨 게임이길래 이런 반응이 나올까.
'에르메스 게임'이란
에르메스 게임은 실제 게임은 아니다. 에르메스 매장에서 버킨백이나 켈리백 등 인기 제품을 사기 위한 과정을 게임에 비유한 것이다. 매번 다른 제품을 구입하고 매장을 반복적으로 들러 눈도장을 찍어야 하는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만 인기 제품을 살 수 있는 흐름이, 게임에서 아이템을 수집하고 이른바 ‘레벨 노가다’를 하며 미션 클리어라는 보상을 받는 과정과 유사해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명품 초호황기를 맞으면서 버킨백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되자 해외 누리꾼 중심으로 에르메스 게임이라는 말이 나왔고 널리 퍼졌다.


에르메스 게임에서 승리하는 법은 무엇일까. ‘멜버른의 멜’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인 한 인플루언서는 미국 하와이 에르메스 매장에서 4만1800달러(약 5750만원) 짜리 켈리백을 사기 위해 다른 제품 10여개를 먼저 구입했다. 그가 켈리백을 얻기 위해 산 품목은 다이아몬드 반지, 말 모양 열쇠고리, 스카프, 벨트, 샌들 등으로 총 2000만원어치가 넘는다.

미국 유튜버 크리스티나 브랄리는 버킨백을 사기 위한 과정을 더욱 상세히 설명했다. 수년간 자신의 액세서리를 사거나 남편 넥타이를 사는 등 많은 비용을 들였다. 1000만원짜리 콘스탄스 가방도 하나 억지로 샀다. 매장 직원 눈에 들기 위한 노력까지 더해졌다. 그는 “매장을 방문할 때마다 같은 셀러를 만났다. 에르메스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나 장인 정신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으며 한 시간 반씩 시간을 보냈고 평소 안부 문자까지 보냈다”고 털어놨다.


비슷한 노력을 했지만 원했던 제품을 얻지 못한 이도 있다. 미국 뉴스레터 매거진 허슬에 따르면 웨딩살롱을 운영하는 에린 카라바지오 씨는 버킨백을 사기 위해 서른 살부터 6년간 캐나다 토론토 에르메스 매장을 방문해 1만2000달러(약 1650만원)가량 돈을 썼다. 하지만 매장에선 버킨백 구매 기준엔 못미친다는 지적을 해왔다.

국내 소비자 김모 씨(37)도 비슷한 사례를 겪었다. 그는 “강북의 한 매장에서 4000만원 정도 쓰고 켈리백을 손에 넣은 친구가 있다. 그 소식을 듣고 집 근처 강남의 한 백화점 매장을 시간이날 때마다 들락날락거리며 비슷한 비용을 썼음에도 켈리백을 사지 못했다”고 푸념했다.
매장 직원들은 왜 버킨백 잘 안팔까
버킨백과 켈리백은 국내 매장에선 약 1500만~2억6000만원 가격대에 판매된다. 업계에서는 통상 버킨백이나 켈리백을 손에 넣기 위해 소비자가 에르메스 국내 매장에서 써야 하는 돈을 5000만~1억원가량으로 본다. 다만 정확한 기준은 아무도 모른다. 대기 예약이나 선착순 구매 등의 방법도 소용없다. 에르메스의 각종 액세서리와 스카프, 그릇 등을 꾸준히 구매하며 에르메스의 충성고객이 돼야 매장 직원이 한정 수량의 버킨백이나 켈리백을 내주는 구조다.


앞서 에르메스는 이 같은 판매 전략 때문에 미국에서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올 3월 로이터 등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 주민 2명은 캘리포니아 북부 연방지방법원에 제기한 소송에서 에르메스가 버킨백을 살 수 있는 고객을 선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에르메스는 전 매장을 직영으로 운영하는데, 본사가 전 세계 매장의 버킨백과 켈리백 등 인기 제품 수량을 철저히 통제한다. 실제로 버킨백과 켈리백의 경우 공급량을 매년 12만개로 제한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세계 에르메스 매장 수가 300개가량이란 점을 참작해 단순 추산해보면, 한 매장당 1년에 각 200개씩 버킨백과 켈리백이 공급되는 셈이다.

원체 수량이 적기도 하거니와 매장 직원들이 버킨백이나 켈리백을 잘 팔지 않으려는 까닭은 따로 있다. 에르메스 본사에선 매장에 가장 큰 수익을 주는 버킨백이나 켈리백을 팔았을 때 판매 수당 가중치를 없거나 가장 낮게 설정했다.

캘리포니아 주민 소송의 원고 측 서류를 들여다보면 매장 직원들은 신발이나 스카프, 벨트, 옷 등 가방 외 제품을 팔았을 때 제품가의 3%를 커미션(중개수수료)으로 받는다. 일반 핸드백을 팔면 1.5%다. 다만 켈리백이나 버킨백을 팔았을 땐 별도 수당이 없다. 사실상 매장 직원들이 비인기 제품을 최대한 많이 팔도록 보상 체계를 설정해놓은 것이다. 본사에선 실제로 각 매장 직원들에게 버킨백을 이용해 소비자들이 매장 내 다른 제품을 최대한 구매하도록 유도하라는 지침도 내리는 것으로 전해진다. 매장 직원들이 버킨백을 잘 내주지 않는 '진짜 이유'다.
일반 고객에 문턱 높이는 명품 마케팅 전략
고객 입장에선 극도로 폐쇄적인 판매 형태인데 에르메스만 이런 것은 아니다. 일반 대중 소비자들에게 문턱을 높이는 것은 명품 업계 전반에서 활용하는 마케팅 방식이다. 사실상 명품 산업은 고객 충성도에 따라 운영된다. 고급 브랜드의 최고 쇼핑객(VIP 고객)은 할인이나 초청 행사 등 독점적인 모임나 사기 어려운 한정 제품에 대한 구매 기회를 얻는 것으로 보상을 받는다.


루이비통도 퍼렐 윌리엄스의 남성복 컬렉션에서 가장 값비싼 품목을 사려면 확보하려면 앞서 다른 품목을 몇가지 구매해야 한다. 샤넬의 경우 인기 제품 일부는 VIP 고객을 위해 창고에 따로 보관해둔다. 롤렉스는 중국 등 일부 시장에서 산하 브랜드인 '튜더' 제품을 먼저 사야 자사 시계를 살 권한을 준다. 오데마피게나 파텍필립 등의 브랜드도 롤렉스와 비슷한 전략을 구사한다.

영국 패션전문 매체 BOF는 "고객들은 폐쇄적인 명품 클럽의 일원이 되기 위해 사치를 사는 것"이라며 "클럽이 모든 사람에게 개방돼 있으면 사치의 목적이 무너진다"고 짚었다.

아무한테나 팔지 않고 매장에 전시도 잘 하지 않는 에르메스의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전략이 역설적으로 명품족들이 버킨백에 목 매게 만드는 셈이다. '에르메스 게임'이란 용어까지 나올 만큼, 아무나 갖지 못하는 것을 진정으로 갖고 싶어하는 인간 심리를 잘 활용하는 브랜드란 얘기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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