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 특유의 승부 근성을 발휘해 세계 5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인도에서 “역사를 만들어 보자”고 주문했다. 이 회장은 인도 재벌 암바니 가문의 결혼식 행사에서 휴렛팩커드(HP), 어도비 등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만나는 등 사업 네트워크도 다졌다. 갈수록 격화하는 ‘칩 워’와 노동조합 파업 등 삼성을 둘러싼 내우외환을 이겨낼 돌파구를 이 회장이 글로벌 경영을 통해 찾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도에서 일내자”
삼성전자는 이 회장이 13일(현지시간) 인도 뭄바이를 찾아 현지 정보기술(IT) 시장을 살펴보고 임직원들을 격려했다고 14일 발표했다. 이 회장은 지난 11일 인도로 출국해 3박4일 일정을 소화하고 이날 귀국했다.이 회장은 출장 기간 현지 법인 임직원들과 만나 “치열한 승부 근성과 절박함으로 역사를 만들자”고 당부했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이 10년 뒤, 20년 뒤에도 성장곡선을 그리려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인도 시장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세계 최대 인구 대국(14억4000만 명)인 인도는 평균 연령이 29세에 불과해 향후 경제 성장 가능성이 가장 큰 나라로 꼽힌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3조7000억달러로 세계 5위에 올랐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전망한 올해 경제성장률은 6.1%로 주요국 중 가장 높다.
삼성전자는 인도를 핵심 생산·판매 거점으로 선정하고 투자를 늘리고 있다. 노이다 스마트폰 공장, 첸나이 가전 공장 등 대규모 생산시설과 소매판매점 20만 곳을 운영하고 있다. 임직원은 1만8000명에 달한다. 노이다·벵갈루루·델리 연구소는 한국 본사와 협업해 주력 제품을 공동 개발하고 있다. 인도인 약 6억 명이 사용하는 대표 언어 힌디어를 ‘갤럭시 인공지능(AI)’에 접목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인도 맞춤형 제품으로 승부
1995년 인도에 진출한 삼성전자는 현지 최대 전자기업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10여 년 전부터 본격화된 샤오미, 오포, 비보 등 중국 기업들의 도전으로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2017년 인도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내줬다가 지난해 6년 만에 가까스로 탈환했을 정도로 격전지다.인도 IT 시장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417억달러(약 57조원)이던 인도 스마트폰 시장은 올해 447억달러로 7.2%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인도 특화 제품을 출시하며 인도 소비자를 공략하고 있다. 커드(수제 요구르트)를 만들 수 있는 냉장고, 힌디어로 조작이 가능한 AI 세탁기, 난(인도 전통 빵)과 피클을 만들 수 있는 전자레인지 등이 그런 제품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프리미엄 시장 공략을 강화해 중국 업체들의 도전을 뿌리칠 것”이라고 했다.
글로벌 네트워크 강화한 이 회장
삼성은 이 회장의 인도 출장 성과로 ‘글로벌 네트워크 강화’를 꼽는다. 이 회장은 13일 뭄바이에서 열린 인도 최대 기업 릴라이언스인더스트리의 무케시 암바니 회장 막내아들(아난트 암바니) 결혼식에 참석했다. 암바니 회장은 4월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9위(순자산 1160억달러) 갑부다.암바니가의 결혼식은 글로벌 기업인과 유력 정치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네트워킹의 장으로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이번 결혼식에는 샨터누 너라연 어도비 CEO, 제임스 타이클릿 록히드마틴 CEO, 엔리케 로레스 HP CEO,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 등이 참석했다. 산업계 관계자는 “이 회장의 넓고 깊은 글로벌 네트워크는 삼성의 핵심 자산 중 하나”라며 “이 회장이 이번 결혼식 행사에서 글로벌 유력 기업인들과 여러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