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길은 나로 통한다”
e스포츠의 아이콘 ‘페이커’ 이상혁(28, T1)이 자신이 뱉은 말을 또 한 번 증명해냈다.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e스포츠 월드컵(이하 EWC)에 국내 리그오브레전드(LoL) 프로 리그 LCK 대표로 출전한 이상혁의 소속팀 T1이 8일 열린 중국 리그 LPL 소속 탑 e스포츠(TES)와의 결승에서 승리하며 LoL 종목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이로써 T1은 사우디 e스포츠 월드컵 LoL 종목 초대 챔피언이라는 역사를 쓰게 됐다.
결승전 MVP로 선정된 이상혁 역시 이번 EWC LoL 종목 우승으로 라이엇게임즈 주관 국제 대회인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과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 우승에 이어 새로운 우승컵을 커리어에 추가했다. 말 그대로 LoL의 모든 기록은 그를 통하게 됐다.
T1은 사실 이번 e스포츠 월드컵의 유력한 우승후보는 아니었다. 주목할 팀으로 꼽히긴 했지만 지난 2024 MSI 우승을 차지한 LCK의 젠지 e스포츠와 중국리그 LPL에서 2024 서머 스플릿에서 무패를 이어가고 있는 탑 e스포츠(TES) 등에 비해 밀린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T1은 이 같은 평가를 뒤집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먼저 T1은 대회 첫 경기에서 LPL 소속 빌리빌리게이밍(BLG)을 세트 스코어 2 대 1로 제압하며 쾌조의 스타트를 보였다. T1은 지난 2024 MSI에서 BLG에게 패해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다. 이번에 BLG를 8강에서 탈락시키며 제대로 복수에 성공했다. 4강에 오른 T1은 북미리그 LCS의 팀 리퀴드(TL)와 맞대결을 벌였다. 손쉬운 승리가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1세트를 내주며 코너에 몰렸다. 하지만 2세트부터 반격에 나선 T1은 TL을 상대로 역전승을 거둬 결승에 올랐다.
결승 상대는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힌 TES였다. TES는 8강에서 젠지를 세트 스코어 2 대 0으로 무너트렸고 4강 상대인 유럽의 맹주 G2 e스포츠 역시 2 대 0으로 제압하며 단 한 번의 패배도 허용하지 않는 강력한 포스를 뽐내고 있었다. 실제로 결승 1세트 역시 TES가 이 같은 막강함을 뽐내며 T1을 꺾고 기선제압에 성공했다.
하지만 T1은 2세트부터 이상혁의 활약에 힘입어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2세트 아리를 선택한 이상혁은 탑 라인에 합류해 TES의 공세를 받아치며 주도권을 틀어쥐었다. 기세를 잡은 T1은 경기 시간 25분경 벌어진 한타에서 TES의 모든 선수들을 잡아내며 상대 넥서스를 파괴하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놨다.
3세트에선 정글러 ‘오너’ 문현준의 활약이 빛났다. 문현준은 빠른 정글링을 기반으로 상대 정글에 지속적으로 침투해 자이라를 선택한 TES 정글러 ‘티안’ 가오톈량의 성장을 방해했다. 경기 시간 8분경에는 이상혁과의 환상적인 호흡으로 상대 미드 라이너를 잡아내며 격차를 더욱 벌렸다. 문현준의 활약을 기반으로 성장 격차를 벌린 T1은 18분경 벌어진 용 한타에서 상대 선수 4명을 잡아내며 대승을 거뒀다. 이후 24분경 벌어진 한타에서 또다시 승리를 거둔 T1은 대형 오브젝트인 내셔 남작 사냥에 성공하며 승기를 굳혔다. 이후 TES가 격렬한 저항을 펼쳤지만 T1의 우세를 꺾을 순 없었다. 결국 경기 시간 38분경 T1은 내셔 남작을 잡아낸 후 진격, TES의 넥서스를 파괴했다.
마지막 4세트 T1은 미드 야스오라는 깜짝 카드를 선보였다. T1은 초반 탑 라인에서 탑 라이너 ‘제우스’ 최우제와 문현준이 환상적인 호흡으로 2킬을 만들어내며 앞서 나갔다. 하지만 이후 경기 시간 14분 50초경 벌어진 전령 한타에서 TES에게 다수의 킬을 내주며 경기는 다시 균형추가 맞춰졌다. 전열을 가다듬은 T1은 집중력을 살려 경기 시간 22분경 미드 라인에서 벌어진 교전에서 TES 선수들을 모두 잡아내고 내셔 남작 사냥에 성공했다. 우위를 점한 T1은 TES를 몰아붙였고 경기 시간 28분 40초경 네 번째 용 한타에서 다시 한번 상대를 전멸시키고 TES의 넥서스를 파괴하며 e스포츠 월드컵 LoL 종목 초대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한편 e스포츠 월드컵 초대 챔피언을 차지한 T1은 오는 10일 LCK 서머 시즌 정규리그에서 OK저축은행 브리온과 맞대결을 벌인다. 숨돌릴 틈 없는 일정 속에 컨디션 관리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T1이 EWC 우승으로 기세를 올린 반면 승승장구하던 젠지가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만큼 LCK 대권 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팬들의 관심이 쏠린다. EWC에 함께 출전한 젠지는 오는 11일에 광동 프릭스와 맞붙는다.
이주현 기자 2Ju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