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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극우의 부상, 경제 시스템 흔들다[선거, G7흔들다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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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G7흔들다②]
“지단이냐, 르펜이냐 결정해라.”

해외축구 팬이라면 2002년 세계를 휩쓴 정치 슬로건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장마리 르펜 국민연합(RN) 초대 대표는 4월 대선에 출마하면서 이 슬로건을 내세웠다. 백인우월주의자이자 인종주의로 악명을 떨친 그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에도 “프랑스 국가대표팀은 백인이 주도해야 한다”며 대표팀에서 백인이 아니면 빼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축구의 영웅이자 알제리 출신 이민자 지네딘 지단이 “르펜이 대통령이 된다면 나는 더 이상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뛰지 않겠다”고 분노할 정도였다. 2002년 ‘지단 대 르펜’의 민심은 지단의 승리로 끝이 났다. 르펜에 대한 국민적 분노도 일었다. 이민자를 포용하는 프랑스의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2024년 ‘지단 대 르펜’ 슬로건이 다시 걸린다면 어떨까. 지금 프랑스는 비주류로 취급받았던 ‘극우’ 돌풍이 불고 있다. 프랑스의 극우정당인 국민연합이 유럽의회 선거에서 집권 여당인 르네상스당에 완승을 거둔 후 지난 1,2차 조기총선에서 의원 수를 크게 늘리며 세를 불리고 있는 것(1차 투표에서 다수당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던 국민연합은 2차 총선에서 좌파 연합과 범여권 후보들이 RN 후보 당선을 저지하기 위해 대거 후보 단일화를 이루면서 다시 3위에 자리했으나, 의원 수를 115석에서 150석으로 늘렸다. 절반의 성공이다)

10여 년 새 유럽의 경제난이 가중하고, 우크라이나·중동·아프리카 난민 대거 유입으로 이민자에 대한 반감이 확대하면서 비주류였던 극우가 난세의 대안으로 취급받고 있다.
주요 이슈① 난민·이민자
“우리는 나라를 재건할 준비가 되어 있고, 프랑스 국민의 이익을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대규모 이주를 종식시킬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지난 6월 10일 프랑스 극우 정당인 RN을 이끄는 지도자이자 장마리 르펜의 막내딸 마린 르펜 의원은 유럽의회 선거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 후 이같이 말했다. RN이 권력을 잡으면 프랑스에서 난민문제를 끝내겠다는 선언이었다.

이날 RN은 31.5%를 득표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집권여당 르네상스(14.6%)를 더블 스코어로 눌렀다. 충격적인 결과였다.

프랑스 근현대 정치사에서 극우 세력의 승리는 좀처럼 보기드문 일이었다. 불과 2년 전인 2022년 대선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마린 르펜 후보가 맞붙었을 때 프랑스인들은 ‘극우 르펜만은 안 된다’는 공감대로 결집했다.

그러나 마크롱 대통령의 재집권 2년 만에 극우 르펜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유럽의회 선거에서 집권 여당인 르네상스당에 완승을 거둔 후 지난 1,2차 조기총선에서 의원 수를 크게 늘리며 세를 불린 것이다. 1차 투표에서 다수당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던 국민연합은 2차 총선에서 좌파 연합과 범여권 후보들이 RN 후보 당선을 저지하기 위해 대거 후보 단일화를 이루면서 다시 3위에 자리했으나, 의원 수를 115석에서 150석으로 늘렸다. 르펜 조차 TF1 방송을 통해 "마크롱 대통령과 극좌의 부자연스러운 동맹이 아니었다면 국민연합이 절대 과반이었을 것"이라며 "(극우의) 조수는 계속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합이 프랑스에서 세를 불린 주된 요인은 난민이었다.

난민은 유럽, 미국 등 G7 국가 대부분의 주요 문제다. 특히 포용적 정책으로 난민을 대거 받아들인 유럽은 그 수만큼 전대미문의 위기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100만 명의 난민이 유럽으로 몰려든 2015~2016년 ‘시리아 위기’ 이후 불법 난민이 다시 급증하면서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극우 정당의 지지율 역시 급등, 비주류에서 주류로 세를 확대하고 있다.

유럽의 난민 역사는 유구하다. 1951년 난민 협약은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발생한 난민의 긴급한 요구에 대한 대응으로 제정됐다. 그 이후로 유럽은 갈등, 박해 및 인권침해를 피해 도망치는 사람들을 받아들였다. 2023년 말까지 터키를 포함한 유럽은 전 세계 모든 난민의 약 3분의 1을 수용했다. 유럽 국가의 난민 수는 2022년 말 1240만 명에서 2023년 말 1300만 명으로 증가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온 난민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전쟁 발발 당시만 해도 난민에 대한 시선은 포용적 정책답게 온정적이었다.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고 했던가. 겨울 유럽 전역에서 에너지 비용이 급등하는 등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면서, 또 침체된 경제로 경제난이 심화하면서 극우 정당들은 일자리와 주택 부족 문제를 이민자와 결부시켜 반이민 정서를 자극했다. 자국 내 범죄율 상승으로 이어지는 등 치안 악화에 대한 우려도 반(反)난민파를 키웠다.

이에 유럽연합(EU)은 지난해 ‘신 이민·난민협정’을 잠정 합의했다. 난민 신청자를 회원국 인구와 경제 규모에 따라 나눠 수용하게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수용을 거부하는 국가는 난민 1인당 2만 유로(약 2800만원)의 기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보수성향 집권여당이 이끄는 폴란드와 헝가리가 공동성명 채택에 반대하면서 합의는 무산됐다. 당시 폴란드 의회는 난민정책 반대 결의안에서 “폴란드가 다른 EU 회원국의 잘못된 결정으로 인한 사회적, 재정적 비용을 부담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난민에 우호적인 국가들에도 균열이 일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스웨덴이다. 스테판 뢰벤 전 총리가 “나의 유럽엔 벽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인구 대비 최다 난민을 수용했다가 강력 범죄가 급증하며 몸살을 앓고 있다. 이미 스웨덴은 2022년 9월 총선에서 난민 문제 등으로 우파 연합이 정권을 장악했다.

‘반난민’ 구호를 외치는 극우 정당은 EU 내에서 점점 더 세를 불리고 있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주요국에서 극우 정당이 1, 2위를 한 이번 유럽의회 선거가 그 증거다.

특히 터키에 이어 가장 많은 난민을 받아들인 독일은 지난해 국내총생산(GPD)이 0.3% 감소했다. 3년 만의 역성장이다. 독일, 프랑스마저 돌아선 유럽의 난민 정책은 극우 정당이 세를 강화하며 점점 더 우경화할 전망이다.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의 핸스 쿤드나니 선임연구원은 “EU집행위원회의 기본 임무는 이제 이주민을 억제하는 것이 됐다”고 지적했다.
주요 이슈② 정부 재정
‘포퓰리스트 정부’.

최근 극우가 승기를 잡자 시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재정적자가 더 확대되면서 채권시장이 약세를 보이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승기를 잡은 미국도, 극우 정당이 1차 조기총선에서 승리한 프랑스도 동일한 상황을 연출했다.

그런데 이론대로라면 의구심이 하나 깃든다. 보수라면 건전 재정(재정건전성)이 아닌가. 재정보수주의는 재정 정책에 있어서 정부가 지출과 부채에 신중해야 한다는 정치적·경제적 보수주의 철학의 일종이다. 탄생도 그렇다. 1930년대 복지국가를 옹호하는 사회자유주의로 흘러갈 때 그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것이 보수주의자들의 건전 재정이었다.

이들은 대개 규제완화, 민영화, 재산권 보호 등을 옹호한다. 대신 정부지출의 감소와 정부부채의 감소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정부 수입과 지출이 균형을 이루는 균형재정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파적 포퓰리즘은 여기에서 한참을 벗어난다. 감세가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는 방향 내에서 이루어진다면 문제되지 않지만 불균형을 이루는 경우가 대다수다.

트럼프도 이를 의식한 듯 부자 감세와 규제완화를 정책으로 펼치면서도 관세를 통해 재정건전성을 증가시키겠다는 계획이다. 감세로 인한 재정악화는 보편적 기본 관세와 상호무역법 제정, 대중국 관세 부과 등을 통한 무역흑자로 해결한다는 주장이다.

실제 재정적자를 더 늘리기엔 미국 살림도 심각한 상황이다. 올해 재정적자 규모는 미국 GDP의 7%에 달한다. 막대한 재정적자 규모에 국제통화기금(IMF)이 나서 두 대선후보를 향해 “늘어나는 재정부담부터 시급히 해결하라”고 지적할 정도다.

IMF는 미국과 연례 협의를 마친 뒤 성명을 내고 두 후보가 공약으로 내놓은 여러 세금 인하책에 대해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하더라도 연 40만 달러(약 5억5504만원) 미만 소득자에 대해선 세금을 동결하겠다고 밝혔고, 트럼프 전 대통령 집권 1기(2017~2021년 대통령 당시) 때 시행한 감세 정책을 영구화하려는 공약을 내놓았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런 세금 계획은 향후 10년 동안 미국 적자를 4조~5조 달러(약 5549조~6937조원) 늘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프랑스도 재정적자다. EU집행위원회는 최근 프랑스가 GDP의 5.5%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함에 따라 ‘초과 재정적자 시정 절차(EDP)’ 개시를 EU 이사회에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이 상황에서 강경 우파가 정권을 잡으면 포퓰리즘 정책으로 2012년 남유럽 재정위기 당시처럼 프랑스 국채금리가 폭등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까지 나왔으나, 6월 30 이후 급변하는 정치지형에 프랑스의 금융시장은 일단 안정을 찾았다.

국제결제은행(BIS)도 조기 진화에 나섰다. 각국의 성급한 금리인하가 인플레이션을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고 비용이 많이 드는 정책의 역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성급한 금리인하를 피할 것을 권고하고 나선 것.

BIS가 각국 정부에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공공 부채를 책임감 있게 관리하고 잠재적으로 금리가 높아질 수 있는 미래에 대비해 안정적인 경제 기반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요 이슈③ ESG
극우가 이끄는 세계에서는 ESG도 주요 관심사다. ‘Anti-ESG’ 움직임이 확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미국 공화당이 세를 잡고 있는 텍사스주는 2022년 8월 ESG를 옹호하고 에너지 산업을 ‘보이콧’하는 금융회사와 함께 일하는 것을 금지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미국 자산운용사 중 유일하게 철회 리스트에 포함된 블랙록은 ‘Anti-ESG’에 학을 뗀 대표기업이다.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매년 기업 CEO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ESG를 지각변동이라고 말할 정도로 강조해 왔으나 지난 2023년 7월 돌연 “ESG라는 말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극좌와 극우에서 (블랙록을 비판하는) 무기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변이었다.

미국의 우파는 블랙록이 사회적 가치에 대해 의견을 밝히도록 기업을 압박해 좌파 사상과 행동을 강화한다고 공격했고, 좌파는 블랙록이 ESG를 더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는 주장이었다. 핑크는 단어만 사용하지 않을 뿐이라고 강조했으나 올해 발표한 2024 기업관여보고서는 ESG 대신에 ‘금융 탄력성(financial resilience)’이 전면에 등장했다. 시장에서는 ESG의 색깔이 옅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ESG 트렌드를 만든 블랙록이 ESG란 용어를 쓰지 않을진대 ESG의 앞날도 위태롭다. 미국 로펌 롭스앤그레이(Ropes & Gray)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에만 미국 전역에서 최소 49개의 Anti-ESG 법안이 제안된 것으로 나타났다.

텍사스와 플로리다를 포함한 30여 개 주에서 투자정책에 ESG 요소 활용을 제한하거나, 특정 산업을 배제하는 투자상품에 대해 철회 조치를 단행하거나, ESG 점수에 근거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거나 제안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의 재선으로 공화당이 다시 정권을 잡는다면 Anti-ESG 운동은 더 거세질 전망이다.

안예하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11월 대선에서 공화당이 우세할 경우 공화당의 Anti-ESG 목소리가 더욱 강화되면서 그간의 기후 관련 정책이 모두 회귀할 수 있다”며 “전반적인 ESG 정책 추진이 저조해져 투자 모멘텀이 이전보다 약화할 우려는 상존한다”고 덧붙였다.

ESG의 유구한 역사가 깃든 유럽도 상황은 여의치 않다. 지난 6월 EU 의회 선거에서 극우 성향 정당이 득세하면서 친환경·지역중심 정파는 참패를 기록했다. 녹색당-유럽자유동맹(Greens/EFA)의 예상 의석수는 53석(7.36%)으로 현재 71석에서 18석이나 줄어들 전망이다. 역성장과 저성장, 고물가의 늪에 빠진 유럽 내부에서 기후변화 대응, 소수자의 인권 문제 등에 목소리를 내줄 친환경·지역중심 정파는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게 됐다.
주요 이슈④ 보호무역

우경화가 가져올 최대 변수 중 하나는 보호무역주의 그리고 전쟁이다.

G7 의장국인 이탈리아의 잔카를로 조르제티 경제장관은 지난 5월 14일 “유럽도 미국처럼 중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매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대중 관세를 높이면서 중국의 과잉 생산 제품이 유럽으로 더 많이 몰려들 것이란 이유에서다.

이미 유럽 항구는 중국의 값싼 전기차가 밀려들면서 ‘주차장’으로 변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유럽의 가장 중요한 제조업 분야이자 글로벌 시장에서 우위를 갖추고 있던 분야였으나 최근 그 우위를 중국에 빼앗기고 있다.

자동차 부문은 EU 내 일자리의 6% 이상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런 고임금 일자리가 대거 중국으로 이전한다는 것은 EU의 정치적, 사회적 안정성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독일에서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lternative for Germany)’이 큰 지지를 얻으며 부상하는 것도 무관하지 않다. 중국 BYD가 독일 BMW를 대체하면서 독일 자동차산업이 무너질 경우 그 후폭풍은 훨씬 더 커질 전망이다.

프랑스에서 세를 불리고 있는 극우정당의 대표 마린 르펜 의원 역시 2017년 대선후보 시절부터 세계화의 종언을 선언하고 보호무역과 국가의 경제주권 회복을 강조하고 있다.

당시 그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중국의 시진핑, 영국의 테리사 메이에 이르기까지 경제 애국주의가 승리하고 있다”며 “얼굴 없는, 국경 없는 경제를 종식해야 할 때다. (외국에 있던) 수만 개의 일자리가 자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자유무역과 순진한 세계주의의 환상은 이제 끝났다”고 말했다.

그는 당을 창당한 아버지 장마리 르펜의 극우·인종혐오 발언과는 거리를 두지만 자유무역과 세계화에 대해서는 적대적인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의 발언과 관련 정책은 저성장, 고물가의 늪에 빠진 프랑스 국민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마치 트럼프가 쇠락한 공업지역인 러스트벨트의 노동자들을 팬으로 돌렸듯이.

유럽의 보호무역주의가 도미노처럼 퍼지면 한국에는 치명타다. 한국은 2023년 기준으로 실질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35.7%다. 이 중 EU가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중국에 이어 셋째로 크다. 대EU 수출 품목 1위는 자동차, 최근엔 전기차와 2차전지가 호실적을 거두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유럽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고 나선 것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중국과의 경쟁이 유럽 산업 기반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안정성을 약화시킨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분명한 현실은 미국과 EU 양쪽에서 모두 산업 정책과 보호주의가 힘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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