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와인 랩소디 <23>
와인 최강국 이탈리아에서 자생하는 포도 토착품종은 1000종이 넘는다. 그중 400여 종이 포도주 양조에 사용된다. 각각의 독특한 맛과 향은 물론 토양에 적합한 생존 능력을 지닌 품종들은 전국 20개 주(레조네, Regione)에 고루 분포돼 있다.
와인 전문가들은 “이탈리아 와인을 공부하려면 먼저 지도를 펴고 지역 명칭부터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20개 주 이름부터 달달 외우고 난 후 자연스럽게 와인 품종을 접목시키면 이해가 빠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와인의 ‘양대 산맥’은 토스카나와 피에몬테 지역으로 구분된다. 그중 중부 토스카나에는 산지오베제 중심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가 있다. 반면 네비올로 100%를 사용하는 북부 피에몬테 지역에서는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를 만날 수 있다.
그 외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 무대로 잘 알려진 베로나의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와인은 늦게 수확한 포도를 볏짚 위에서 4~5개월 말린 후 양조한다. 덕분에 과일 풍미가 풍부하고 알코올 도수도 14~17도로 높다.
이들 세 종류 와인의 포도 품종 중 ‘주피터(제우스)의 피’라는 의미의 산지오베제를 먼저 살펴보자.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품종으로 조상 역시 토착품종인 칠리에졸로(Ciliegiolo)와 칼라브레제 몬테누오보(Calabrese Montenuovo)로 밝혀졌다. DNA 지문분석 기술 덕분이다.
산지오베제는 클론이 많기로 유명하다. 현재 확인된 것만 110종이 넘는다. 클론 분석은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다. 클론이란 특정 품종에 변이가 생기더라도 유전적으로 조상이 동일한 자손을 말한다. 다만 클론에 따라 포도의 맛과 향이 달라지는 등 품종의 다양성을 유지한다.
그 때문인지 산지오베제는 브루넬로(몬탈치노) 또는 모렐리노(스칸사노), 프루뇰로 젠틸레(몬테풀치아노) 등 괄호 안 지역에서처럼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국가대표 와인 산지오베제는 과연 어떤 맛과 향을 간직하고 있을까.
서울 리츠칼튼호텔 출신 은대환 소믈리에는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은 침용(marceration, 담그기) 기간이 길어 짙은 컬러를 보이지만 맛과 향에서는 부드럽고 섬세함이 느껴집니다. 초반 체리 등 복합적인 은은한 향을 잡을 수 있죠”라고 말했다.
실제 밝고 짙은 루비 컬러의 ‘로카 디 몬테그로시, 키안티 클라시코’는 산지오베제 품종의 전형적 와인. 1000년 역사를 지닌 리카솔리 가문의 36대손 마르코 리카솔리가 운영하는 와이너리에서 생산됐다. 산지오베제를 90% 이상 사용해 양조했다.
‘잘 익은 체리와 과일 풍미, 약간의 삼나무 향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 수입사의 설명이다. 마셔보면 타닌감과 신맛의 균형미가 돋보인다. 대형 오크 배럴에서 15개월간 숙성된 유기농 와인.
같은 수입사 제품 ‘카사노바 디 네리,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산지오베제 100%를 사용했다. 오크 배럴에서 42개월, 6개월 병입 숙성을 거쳤다. 잘 익은 과일 풍미가 특징. 장기 보관이 가능한 와인이다.
한편 해발고도 550~570m에 위치한 몬테로톤도 와이너리의 키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도 산지오베제 베이스의 와인. ‘초콜릿과 다크 체리 향이 느껴지는 섬세한 와인’이라고 수입사는 설명한다. 그러나 초반 강한 신맛과 쓴맛이 잡혔다. 시간이 지나면서 신맛은 다소 부드러워져 마시기 편했다.
은 소믈리에는 “요즘 키안티 클라시코 지역에서는 높은 해발고도의 와이너리가 인기를 누리고 있어요.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재배 환경도 변했기 때문”이라며 “특히 병충해 피해가 적고 바람도 좋아 유기농 농사에 매우 유리한 조건”이라고 강조한다.
김동식 와인 칼럼니스트 juju43333@naver.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