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 추진을 당분간 보류하기로 했다. 상법 개정을 놓고 재계의 거센 반발과 함께 관계 부처 간 이견이 나오는 상황에서 섣불리 강행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기획재정부는 3일 발표한 ‘역동경제 로드맵’에 담긴 자본시장 선진화 방안에서 이사의 충실의무를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제외했다. 대신 기업 밸류업을 위한 지배구조 개선 방안으로 이사의 사업기회 유용 금지를 강화하는 조항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전자 주주총회를 도입하고, 물적분할 시 반대주주에게 주식 매수 청구권을 부여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핵심 사업부의 물적분할 후 상장에 따른 모회사 주가 하락으로 일반 소액주주가 피해를 보는 것을 막겠다는 계획이다. 전자주총과 반대주주 주식 매수 청구권은 법무부가 이미 상법 개정을 통해 도입하겠다고 밝힌 사안이다.
김병환 기재부 1차관은 사전 브리핑에서 “이사의 충실의무를 강화하는 상법 개정안과 관련해선 공론화가 진행 중”이라며 “이 과정에서 어느 시점에는 정부 입장을 정하지 않겠나 싶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발표 시점도 거론하지 않았다. 상법 개정을 놓고 법무부와 기재부 및 금융위원회 등 관계 부처 간 입장 차이가 여전히 작지 않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기재부는 이사의 충실의무를 강화하는 상법 개정을 장기 과제로 제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상법 제382조의 3은 ‘이사는 회사를 위해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소액주주들은 이를 회사에 국한할 게 아니라 ‘회사 및 주주를 위해’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지난 5월 2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법무부 및 금융위와 공청회를 거쳐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주무 부처인 법무부가 상법 개정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지 4개월 만에 입장을 번복한 것이다. 특히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연일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를 담은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반면 경제계는 기업의 경영 의사 결정이 힘들어져 중장기적으로 기업 가치가 훼손될 수 있고 주주들의 소송 및 배임죄 남발이 우려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법무부도 상법 개정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정부가 기업 밸류업 방안의 일환으로 추진한 상속세 개편 방향엔 최대주주 할증평가 폐지만 담겼다. 과세표준 구간 조정 및 세율 인하, 공제금액 상향 등의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정정훈 기재부 세제실장은 “이달 말 세법 개정안을 내놓을 때 상속세 개편 관련 세부 추가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라며 “과표 조정 및 세율 인하가 포함될지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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