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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대리인 무당. 만신, 샤먼, 텡그리 등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지만 이들이 주도하는 무속신앙은 지역을 막론하고 전 세계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고대문화다.

국립창극단의 ‘만신: 페이퍼샤먼’(사진)은 전 세계 무당을 한데 모은 공연으로 30일까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렸다. 신기를 갖고 태어난 주인공 ‘실’이 세계 각국의 샤먼(무당)들과 ‘한’을 풀어주기 위해 떠나는 여정. 노예로 끌려간 가나의 한 마을, 아메리카 원주민, 마지막 남은 아마존 부족 등 각 대륙에 살던 샤먼들이 아픈 역사에 고통스러워하면 실이 하나둘씩 한풀이를 해준다. 쉽게 말하면 인류를 위해 바치는 하나의 굿판이다.

발상은 신선하지만, 이야기 구조에 흡인력이 부족하다. ‘실’의 다짐 하나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강한 원동력이 없다. 구체적인 갈등과 반전도 없어 관객을 빨아들일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결말도 ‘실’이 앞으로도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겠다고 다짐하며 끝나 밋밋하다.

물론 다양한 지역의 문화를 그린 방식이 다채롭고 보는 재미가 있다. 화려한 전통 의상과 종이를 오려 붙여 만든 듯한 무대도 아름답다. 토속적인 분위기를 가미한 판소리도 매력적. 하지만 장면 사이 연결이 자연스럽지 않다. 각 대륙의 이야기가 병렬식으로 나열된다. 한 지역의 한을 풀고 막이 내리면, 바로 다음 지역으로 넘어가 또다시 한을 푸는 식이다. 장면과 그에 얽힌 이야기 간 자연스러운 전환 없이 뚝뚝 끊긴다.

인류의 역사를 우리의 소리로 한풀이한다는 발상은 재밌다. 다만 주제를 대사로 과도하게 직접 설명해 몰입을 해치는 순간이 있다. “링컨이 노예제를 폐지했다”, “아마존에서 OO새가 2011년에 멸종했다”처럼 메시지를 관객에게 직접 전달해 극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한반도 분단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풍자가 아쉽다. 사람 없는 비무장지대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야생 동물들이 “인간들아, 통일하지 말고 계속 싸우소. 우리는 여기서 알아서 잘 살 테니”라며 비꼬는 대사. 이처럼 판소리에 어울리는 풍자와 해학을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아 아쉽다.

판소리로 전 세계의 한을 풀어준다는 발상과 아름다운 무대가 반짝이는 작품. 밋밋한 이야기와 구성이 이 작품이 가진 강점을 가려 아쉽다.

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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