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 틈 없이 몰아치는 밴드 연주, 차력쇼에 가까운 이홍기의 천둥 같은 보컬은 단숨에 심장박동수를 높였다. 열기로 가득 찬 공연장, 먹먹해진 귀, 연신 흐르는 땀은 18년째 밴드 외길을 걸어온 FT아일랜드의 '모방 불가' 실력과 저력을 증명했다.
지난 29일 저녁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마스터카드홀. 날카로운 초록색 레이저가 객석에 꽂히고 힘 있는 드럼 연주와 터져 나오면서 FT아일랜드(이홍기, 이재진, 최민환)의 단독 콘서트 '펄스(PULSE)'의 포문이 열렸다.
지난해 서울을 시작으로 마카오, 방콕, 타이베이, 쿠알라룸푸르, 홍콩 등 8개 도시를 돌며 라이브 투어 '헤이 데이(HEY DAY)'를 성공적으로 마친 FT아일랜드는 '펄스'라는 새로운 타이틀로 빠르게 다시 팬들 앞에 섰다.
맥박이 뛴다는 의미의 타이틀에 '펄스'에 걸맞게 이번 공연은 활기차고 강렬한 음악으로 FT아일랜드 표 '록 스피릿'을 만끽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시작부터 짜릿한 에너지를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첫 곡은 2015년 발매된 정규 5집 '아이 윌(I WILL)'의 타이틀곡 '프레이(PRAY)'였다. 해당 앨범은 데뷔 때부터 대중성을 기반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FT아일랜드가 본격적으로 하드록 장르를 선보이며 밴드로서의 정체성을 구축해나가기 시작한 전환점이었다. 의미 있는 오프닝 선곡이었다. '프레이'에 이어 '블랙 초콜릿(Black Chocolate)'까지 강렬한 무대가 계속되자 객석의 온도는 금세 뜨겁게 달아올랐다.
스탠딩은 물론 2층에 앉은 관객들도 상체를 앞뒤로 흔들며 열띤 호응을 보였다. 이홍기는 "여름이고, 또 스탠딩석도 있어서 노래에 힘을 줘서 준비해 봤는데 어떠냐"며 웃었고, 최민환은 "오늘을 위해 살을 10kg이나 뺐다"고 말해 환호를 끌어냈다. 이재진은 "끝까지 다치지 말고 즐겁게 놀다 가자"고 말했다.
"오늘 온 거 후회하지 않도록 최고의 무대를 보여드릴게요!"당차게 내뱉은 약속은 바로 현실이 됐다. '더 나이트(The Night)', '브로큰(Broken)' 등 밴드 사운드를 만끽할 수 있는 무대가 이어졌다. 이재진의 베이스 스트링에서 나오는 묵직하면서도 섬세한 소리는 눈 깜짝할 새 핏줄을 타고 들어왔고, 최민환의 강력한 드럼 연주는 두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여기에 이홍기의 단단한 보컬까지 어우러지니 공연 내내 강한 쾌감이 느껴졌다.
이홍기는 "지난해 '헤이 데이' 콘서트를 통해 제2의 페이지를 시작했다면, '펄스'로는 심장박동 소리처럼 우리가 아직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의 아이덴티티를 가장 짙게 반영한 콘서트"라고 말했다. '세이지(Sage)', '테이크 미 나우(Take Me Now)' 등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하고 에너지 넘치는 무대를 통해 이홍기가 말한 대로 FT아일랜드라는 팀의 정체성, 이들이 가고자 하는 길을 눈과 귀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FT아일랜드는 올해 여름 다수의 페스티벌을 통해 새로운 관객들을 만났던 바다. 처음 공연에 온 이들이라도 함께 뛰어놀고 즐길 수 있는 무대도 빼놓지 않았다. '지독하게', '사랑사랑사랑' 등 친근하게 느낄 법한 예전 곡은 물론 '새들처럼'까지 소화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흥겨운 에너지가 폭발하는 '폴링 스타(Falling Star)', '프리덤(Freedom)' 무대에서는 관객 모두가 아티스트와 하나가 되어 뛰어노는 장관이 그려지기도 했다. 이홍기는 '폴링 스타'를 부를 땐 무대 세트 뒤쪽까지 뛰어다니는 등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프리덤' 무대에서는 관객들의 열띤 반응에 "오마이갓!"이라고 감탄하기도 했다. 이어 최민환은 압도적인 실력의 드럼 솔로 무대로 관객들을 더욱 열광케 했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내달 10일 발매하는 정규 7집의 타이틀곡 및 수록곡 무대를 최초로 공개해 특별함을 안겼다. 선공개된 더블 타이틀곡 '번 잇(BUTN IT)'을 비롯해 수록곡 '인페르노(INFERNO)'와 또 다른 타이틀곡 '시리어스(Serious)'까지 베일을 벗었다.
FT아일랜드가 무대로 증명해낸 것은 비단 실력만이 아니었다. 18년 차임에도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더 공고히 자신들만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팀이라는 걸, 그래서 여전히 앞으로가 기대되는 팀이라는 걸 입증해냈다.
이홍기는 내달 공개될 신곡 '시리어스'에 대해 "우리가 얼터 장르의 곡을 좋아한다. 꼭 해보고 싶었는데 지금이 아니면 안 되겠더라. '이게 우리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도전했다. 그간 보여온 모습과는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잘 봐달라"며 기대를 당부했다.
이어 "매년 우리를 보러 와주시는 분들이 있는 걸 보면서 더 열심히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면서 "항상 자신 있게 말하는 게 어떤 장르든 FT아일랜드스럽게 만들 수 있다는 거다. 어떤 장르든 우리 걸로 만들어 보겠다.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과 여러분이 좋아하는 음악을 잘 섞어서 우리의 음악 인생을 즐겨보겠다"고 말했다.
공연은 30일까지 이어진다. 이후 FT아일랜드는 7월 10일 정규 7집 '시리어스'를 발매한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