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잡지 ‘모노폴’을 창간한 독일 작가 플로리안 일리스는 12년 전 펴낸 <1913년 세기의 여름>으로 세계 지식인의 찬사를 받았다.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은 그의 신작이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 1929~1939년의 기간을 다룬다. 세계사에서 가장 불행했던 시기였다. 증시 폭락, 대공황, 나치즘과 파시즘의 부상을 겪었고 불안과 증오가 가득해 파국으로 치달았던 시대였다.
저자는 이 시기 유명인들이 남긴 다양한 방식의 사랑을 추적한다. 일기, 편지, 잡지, 신문, 그림 등 수많은 자료가 밑바탕이 됐다. 각 에피소드가 고증이 잘된 드라마처럼 느껴진다. 책 속 사랑은 낭만보다 집착이나 광기에 가깝다. 사랑을 갈구하며 쟁취하는 과정에서 상처를 입거나 상처를 입힌다. ‘전쟁 같은 사랑’이다.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망명지마다 애인을 뒀다. 애인들은 그가 나쁜 남자란 사실을 알면서도 돕는다. 사상가 장 폴 사르트르와 계약 결혼한 시몬 드 보부아르는 남편의 바람기에 괴로워한다.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아내 올가는 남편이 새로운 뮤즈를 찾고 난 뒤 자신을 괴물같이 그려내는 것에 환멸을 느낀다.
요제프 괴벨스(정치가), 한나 아렌트(철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학자) 등 다양한 인물의 사랑 이야기가 옴니버스 영화처럼 펼쳐진다. 에피소드마다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일화가 병렬적으로 나열돼 한 인물에게 과몰입하지 않게 하는 것은 장점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같은 이유로 산만함 역시 지울 수 없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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