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반테스가 1605년 출판한 소설 <돈 키호테>만큼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 작품도 드물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돈 키호테’는 청각의 영역만으로 시각적 효과를 동반한 그 어떤 작품보다도 입체적이며 풍부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걸작이다.
지난 25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의 6월 정기연주회에서는 오케스트라 사운드의 극치와 절정의 황홀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날 공연은 월간 ‘아르떼’ 매거진 창간을 기념하는 자리로 300명 이상의 정기구독자가 참석했다.
‘돈 키호테’ 서주에서의 소란스러움은 에피타이저였다. 세 번째 변주에서 돈 키호테와 산초의 대화가 무르익으면서 오케스트라가 자아내는 극적인 분위기는 일품이었다. 국내 오케스트라에서 보기 드문 첼로와 더블베이스의 강한 저음 연주를 만끽할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다만 프레이징의 묘미를 좀 더 살리면서 각 장면을 충분히 음미했다면 더 극적인 효과를 불러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오케스트라 일원에게 저마다 솔리스트로서의 역량을 강하게 요구하는데 클라리넷, 트럼펫, 호른, 팀파니 수석의 활약은 내내 인상적이었다.
이날 공연에서 가장 두드러진 수훈갑을 꼽으라면 돈 키호테로 분한 첼리스트 심준호였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압도하며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낸 일성부터 굳건한 보잉으로 모험을 떠나는 비장한 무드를 완벽하게 조성했다. 저음현을 이끄는 장면에선 격렬한 연주로 전장에 나선 결연함을 보이며 섬세한 프레이징의 묘미로 비르투오시티를 마구 뿜어냈다. ‘산초 판자’로 분한 비올리스트 김상진의 부드럽고 아기자기한 연주는 음향적으로 차별되며 극의 전개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다채로운 음향의 매력과 함께 잘 짜인 스토리를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래밍, 흔히 듣기 힘든 관현악의 정점에 있는 명곡, 게다가 정상급 솔리스트의 협연. 이번 아르떼필 정기연주회는 훌륭한 오케스트라 콘서트의 요소를 고루 맛본 보기 드문 기회였다.
김준형 음악칼럼니스트/사진=이솔 기자 soul54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