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월 만에 발행이 재개되는 한국전력 채권(한전채) 시중 유동성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신용등급 AAA급 우량채가 시장 투자금을 흡수하면서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회사채들은 투자 수요를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지난 14일 2년물 2500억원, 3년물 2500억원 등 총 5000억원어치 공사채를 발행했다. 수요예측에서는 2년물에 8500억원, 3년물에 1조4900억원의 매수 주문이 접수됐다. 흥행에 성공하면서 2년물은 이 회사 민평금리 대비 4.2%포인트 낮은 연 3.470%, 3년물은 7.4%포인트 낮은 3.467%에서 발행 금리가 결정됐다.
한전이 채권 발행 작업에 나선 건 지난해 9월 이후 처음이다. 그동안 한전은 한전채가 채권시장 투자수요를 빨아들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채권시장을 방문을 자제했다. 대신 단기 조달시장에서 기업어음(CP)과 전자단기사채를 적극적으로 발행하면서 유동성을 확보했다. 본드웹에 따르면 한전이 올해 순발행한 CP와 전자단기사채는 각각 7000억원, 7100억원에 달한다.
한전채 만기 물량이 줄줄이 쏟아지면서 다시 발행 작업을 재개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한전채는 총 13조5000억원 규모다. 특히 연말에 만기 도래 물량이 몰려 있다. 11월과 12월에 각각 3조4200억원, 3조2500억원의 한전채 만기를 대비해야 한다. 2022년 적자가 누적된 한국전력이 한전채 발행을 대거 늘린 후폭풍으로 풀이된다. 2020년 3조원대였던 한전채 발행 규모는 2021년 9조원대, 2022년 31조원대로 급증했다. 당시 발행된 2년물, 3년물 한전채를 차환 발행 대비가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업계에서는 한전채 발행 물량이 회사채 시장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하반기는 상반기에 비해 회사채 투자 열기가 주춤한 편이다. 여기에 13조원이 넘는 AAA급 채권이 쏟아지면 회사채 투자수요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성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하반기 공사채 전체 만기도래액의 약 40%가 한전채 물량”이라며 “다만 영업흑자 기조와 중장기 재무관리 계획 수립 등을 고려하면 한전채 발행을 급격하게 늘릴 유인은 낮다”고 말했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